아빠의 인형놀이 - 방송국 장난감의 행복
“여보, 나 장난감 좀 살게.”
“응. 지유 장난감 벌써 사게? 얜 아직 장난감이 뭔지도 모를텐데?”
“아니. 그게 아니라 내꺼...”
“응????”
나를 닮은 따님이 태어나신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한 침대를 쓰는 여자사람과 나눈 대화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닮은 무언가를 또 찾기 시작했다. 둘째를 갖기엔 너무 일러서 였을까. 이번엔 나를 닮은 장난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내가 든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있었던 부인님과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집 안 어딘가에 세워두고 싶었다.
어떤 종류의 장난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아이를 막론하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L사의 블록 장난감을 시작으로 그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O사의 블록 장난감, 실제 사람과 거의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각종 크기의 피규어까지. 어렸을 적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본 기억은 많지 않은 아빠의 인형놀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든 인형과 마이크를 든 인형이 세트로 있는 것이 1순위였다. 국내외 장난감 관련 홈페이지며 동호회 사이트들을 며칠동안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찾은 장난감들은 잊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저장해뒀다. 일단 마트에 가서 당장 살 수 있는 것들은 제쳐두고,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이나 국내에 있더라도 단종되어서 쉽게 구하기 힘든 제품을 위주로 구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국산 장난감 O사의 블록 제품.
‘ENG카메라를 든 인형이 있고, 마이크를 든 여자 인형도 있고, 세트, 조명, 중계카메라, 주조정실에 중계차까지...우와...이거다...O사에서 만든 방송국 장난감이라 이름도 OBS다...내 운명의 장난감이야...’
하지만 이미 10년 전에 단종된 상품이란걸 알게 됐고, 중고물품을 잔뜩 모아놓은 그 인터넷 카페를 며칠간 지켜보던 어느날!
‘방송국 장난감 팝니다.’
곧장 연락을 취하고 대구에 있다는 판매자와 가격을 협상한 뒤 받아본 장난감은 정말 대만족이었다. 방송국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모습이며, 카메라를 든 남자 인형과 마이크를 든 여자 인형까지. 부인님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장난감! 조립하는 내내 10년이 넘은 장난감 블록의 부품이 온전히 남아있을까 하는 걱정은 점점 사라져 갔다. 오히려 완성 후에도 남은 블록 몇 개.. 오랜 시간 잘 보관해 준 판매자에게도 감사했다. 그리고 내 장난감의 전시를 위해 테이블의 한 쪽을 내어준 부인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나의 다음 워너비 장난감은 ENG카메라를 들쳐 매고 전쟁터를 헤집고 다니는 종군기자 피규어다. 크기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한국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10년 전 장난감도 뿅 나타났듯이 내 손에 언젠가 들어오리라. 아빠의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며 즐거워 할 꼬맹이 따님의 모습도 상상해 본다.
정형민 / OBS 보도영상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