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산불 현장에서

by 안양수 posted May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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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눈물 젖은 이재민”이란 아이템을 받고 양양 산불 현장을 가던 취재팀은 라디오를 통해 산불이 거의 진화되었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반신반의했다. 동해안 산불은 오전에 완전 진화가 되지 않으면 오후에는 거센 강풍을 타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과거의 경험으로 봐서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는 검은 연기가 이곳저곳에서 솟구치며 강풍을 타고 거대한 불길로 변해갔다. 차의 방향을 낙산사로 향해 가는 도중 운전기사와 취재기자가 비명을 지른다. 도로변의 양 옆 숲이 동시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불꽃 터널이 되어버렸다.
불길을 헤치고 낙산사로 진입한 기자의 눈에 보이는 산불은 쓰나미로 밀려오던 거대한 파도, 바로 것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불길이 두 서 너 번 울렁울렁 하다 바로 낙산사 건물로 옮겨 붙으니 피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소방대원과 스님 그리고 일부 신도들은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문화재 피신과 화재 진화에 여념이 없었다. 산짐승들도 모두 경내로 피신해왔다.
제일 먼저 홍예문에 불이 붙고, 원통보전, 요사채 순으로 붙어갔다. 정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헬기는 검은 연기로 인해 뜨지 조차 못했고, 모든 건물이 다 탄 후에는 날아온 헬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매운 연기 속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촬영을 겨우 다 마친 기자 눈에 띄는 것은 화재 진화를 지휘하던 소방대장의 허탈한 표정뿐이었다. 주변엔 어떤 언론 매체도 보이지 않는다. 급히 중계차로 와서 영상을 전송하려 하는데 안 된단다. 앵커와 기자가 토킹으로 생방송 중이라 서, 우물쭈물 20여분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송출할 수가 있었다.
20여 년간 강원도 영동지역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산불을 자주 겪은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산불진화방식은 종합적 진화 전략 부재였다. 불이 붙은 지역을 헬기로 1차, 2차, 3차에 걸쳐 물을 뿌려 잔불까지 진화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 번 뿌리고는 다른 곳에 뿌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쌓여있는 낙엽 속의 불이 계속 되살아나는 것이다.
불이 집 뒤까지 와도 소방차와 진화대원만 기다리며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관광객은 길 막고 기념 촬영하기 바쁘고, 외지에서 온 소방차량은 샛길을 모르니 큰 도로변에만 모여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종합적인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또한 이번 산불을 취재하는 거의 모든 기자들이 마스크도, 안경도 없이 수건만 뒤집어 쓴 채 현장을 다니고 있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각 언론사는 사고 예방을 위해 취재 기자가 갖추어야할 안전장비에 대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KBS강릉방송국 이준하 기자
[카메라기자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