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영상기자를 위험에 빠뜨리지 마라
점점 더 열악해지는 영상취재 환경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경영 상황이 다국적 OTT의 공세로 인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도 독립적인 재정으로 운영하지 못했던 일부 지역 방송사들에는 더 큰 타격이 되고 있다. 문제는 방송사들이 경영난을 타개하는 제일 쉬운 수단으로 비정규직을 감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오디오맨을 줄이는 현상은 우리 영상기자의 영상취재 환경의 질을 떨어뜨림은 물론 산재의 위험도 증가시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영상기자가 데일리 취재에 필요한 장비를 계측해 보았다. KBS 본사의 사회팀 기준으로 카메라 8.7 kg, 트라이포드 7.3 kg, 장비가방 6.1 kg, 사다리 4.3 kg, MNG(LTE) 3 kg으로 도합 29.4 kg에 달했다. 추가로 배터리나 조명, 마이크 라인 등의 장비를 가져나갈 경우 쉽게 30 kg를 넘기게 된다. 이런 무게는 혼자서 일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넘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조항들이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2024년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제3절 ’중량물을 인력으로 들어올리는 작업에 관한 특별조치‘에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중량물을 인력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에 과도한 무게로 인하여 근로자의 목ㆍ허리 등 근골격계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법과 규칙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2인 1조로 이루어지던 영상취재 업무를 1인이 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노동 환경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것이며 관계 법령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작업 시 근골격계에 부담을 주는 작업도 고시로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영상취재 근로조건은 고시의 제3조 9항 ‘하루에 25회 이상 10kg 이상의 물체를 무릎 아래에서 들거나, 어깨 위에서 들거나, 팔을 뻗은 상태에서 드는 작업‘에 해당한다. 영상기자가 기본적으로 휴대하는 카메라가 9kg에 달하고 사다리나 MNG를 함께 드는 경우 쉽게 10kg을 넘긴다. 가장 흔한 영상취재 형태인 트라이포드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촬영하는 경우 무게는 16kg에 달해 근골격계에 부담을 주는 작업의 요건을 크게 넘어선다. 이를 넘어 30kg에 달하는 장비를 혼자 운용하라는 것은 영상기자의 노동조건을 더더욱 악화시키는 부당 노동 행위이다.
일부 지역방송국에서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가정용 소형 캠코더로 영상취재를 시키는 꼼수를 부리거나 아예 운전기사도 없이 1인 취재를 내보낸다는 보고도 있어 개탄할 노릇이다. 방송 사업자는 공공재인 주파수 할당으로 배타적 사업권을 부여받은 대신 시청자에게 최고의 프로그램을 서비스할 의무가 있다. 방송 사업자가 가정용 장비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행위는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이런 상황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 사업자 면허를 반납해야 할 것이다.
이미 영상기자들 대다수가 목, 어깨, 허리, 다리 등에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다. 그중에는 심각한 사고도 여러 차례 있었다. 재난 취재 중 오디오맨 없이 취재하다가 영상기자가 순직하는 최악의 사태도 벌어진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영상취재 여건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 정부가 산업재해의 심각성에 대해 분명히 경고하고 사업주에게 책임을 강력하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해 심각한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 소속사의 재정난은 직원으로서 외면할 수 없고 적극 함께 타개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재정난을 이유로 필수적인 자원을 걷어내고 직원을 위험에 몰아넣는 도를 넘는 경영 행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뉴스 질 저하, 영상기자의 산재 위험성 증가, 경영진의 처벌 등 모두에게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상황인데 쉽게 간과되는 현실은 영상기자 스스로도 그리고 경영진들도 분명히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임이 틀림없다.
협회는 오디오맨 문제 등 악화하는 영상취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칠 예정이다. 회원들이 소속된 전국 방송국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조치를 요구할 것이며 지속적으로 점검하여 나아질 때까지 개선 조치를 요청할 것이다. 이를 끝까지 외면하거나 꼼수를 통해 회피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회사들은 노동 당국에 신고하여 법적 조치를 받게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국회 과방위 등 유관 단체에도 전달하여 정부의 정책 지원도 요청할 계획이다. 아울러 협회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를 법률 자문으로 위촉하고 오디오맨 문제 외에 불법적 업무 전환 배치 등 영상기자 업무 전반의 위법적 노동 행태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최연송 한국영상기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