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by 윤희진 posted Nov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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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그 후, 평양을 가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지금 압록강을 건너 공화국 영토 위를 날고 있습니다.

 중국 선양공항을 출발한 고려항공 비행기가 40분을 날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한 순안공항 주변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왔다.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찾는 평양, 급변하는 정세 때문인가 왠지 모를 막연한 긴장과 흥분으로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에 오르자 우리를 감시할 북측 안내원 3명이 올라탔다. 민족화해협의회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들은 3박4일 내내 우리를 감시했다.  차창 밖의 평양시내를 촬영하자 대뜸 하는 말이 "윤선생 우리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도록 허락하는 곳만 찍읍시다. 이동하는 차에서의 촬영은 금지입니다."  

 핵실험 이후 북한 거리에는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기정사실화하는 붉은색 구호들이 넘쳐 났다.

 ‘세계적인 핵보유국을 일떠세워 주신 절세의 령장 김정일 장군 만세??핵보유국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당당히 거부하자?, ?핵보유국이 된 5000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자? 등 10여 종의 구호를 볼 수 있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안내원에게 핵실험을 한 이후의 분위기를 물었다. 그는 대뜸 술을 한번에 들이키는 제스처를 취하며 “ 모두들 기분이 좋아 밤 새워 술 마셨다. 그동안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이젠 우리도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모두들 안심하는 분위기다.” 또 “우리가 핵실험을 하니까 미국과 일본이 벌벌 떨고 북한과 미국의 일대일 대화를 주장하는 미국 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력 사정은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했다. 순안공항을 통해 입국한 1일 밤, 평양 시내 거리 전역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90% 이상의 가구에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북한 안내원은 중국에 수출하는 석탄 가운데 많은 양을 내수로 돌렸다고 말했다.  평양은 각각 5만 킬로와트 급 화력발전소(동평양화력발전소,서평양 화력발전소)로 전기를 공급한다. 두 화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이면 평양은 충분하다고 한다.

 을밀대와 묘향산에서 만난 시민들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소리 높여 웃는 모습은 우리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어린 학생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아이 부끄러워...”하며 우리를 피해 달아나는 수줍은 여학생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결혼식을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러 나온 신랑,신부와 그늘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복장만 아니라면 이곳이 북한이라는 생각을 잊을 정도였다.

 감시가 엄격해서 취재가 매우 어려웠다. 북측 안내원이 피곤해서 졸기라도 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마음껏 차창밖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취재기자는 혹시 안내원이 깰가봐 온몸으로 차창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막았다.

 문제는 기자 스탠드 업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동트는 새벽에 몰래 나와서 양각도 호텔 주변 대동강변에서 주체탑을 배경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양각도 호텔을 나섰다. 미리 점찍어 놓은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민화협 안내원들이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모두 체육복 차림이었다. “선생들 좋게 말할 때 들어갑시다.” 무조건 촬영은 안된다는 자세였다.

그들의 험악해진 표정을 보고 순순히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우리를 감시하던 안내원으로부터 검열을 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윤 선생 만찬 끝나고 한 번 봅시다. 우리도 뭘 찍었는지 알아야 하잖소.”

다행히 우리는 매일 찍은 화면을 노트북과 외장하드에 저장시켜 놓았다. 노트북에 카메라를 연결해서 마지막 테잎의 내용을 캡쳐시켜 놓고 만찬장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북한군인들, 남루한 주민들, 초라한 들녘의 풍경, 중요 건물들, 평양부감(양각도호텔 전망대 식당에서 찍은 부감이 나가면 대공 방어시설의 위치가 파악될 수도 있다고 한다) 등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캡쳐된 화면이 있던 나는 실랑이 하는 척 하며 적당히 삭제해 주었다.

 평양을 수년간 오간 기업인들은 평양이 중국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금지하지만 돈이 된다면 묵인하는 자세를 말한 것이다. 평양시내에 외국인(특히 한국인)을 위한 안마시술소가 있고 성도 판다고 한다. 또 가라오케에서 전에는 종업원 손도 못잡게 했는데, 요즘은 먼저 달라붙는다고 한다.

북한이 변화의 길을 접어든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이 개방이 아닌 외화벌이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아 씁슬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방송이 나간 후, NHK, 후지TV, TV아사히 등 일본의 여러 방송사에서 전화가 왔다. 평양 그림을 사겠다는 것이다. 특히 NHK는 핵실험 구호와 평양의 남루한 모습만 집중적으로 복사해 갔다.  일본의 관심이 반갑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KBS 영상취재팀 기자 윤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