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카불에서의 7시간

by 안양수 posted Jan 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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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했던 카불에서의 7시간


카불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프간 피랍자들이 풀려난다는 소식에 갑작스럽게 가게된 두바이 출장. 하지만 그들이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올지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출발 할 때만 해도 두바이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정부가 카불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고 지난번 김경자, 김지나 씨의 경우처럼 두바이를 거치지 않고 뉴델리를 거쳐 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별다른 소득없이 돌아오는 출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공동취재단이 구성되면 카불 취재를 허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나절 동안 카불에 들어간다 만다를 반복하다 결국 내가 방송 6사(SBS KBS MBC YTN MBN KTV)의 영상풀 대표로 카불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것이다. 급하게 두바이의 아프간 영사관으로 향해 카불에 들어가는 타사 기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비자를 받았다. 현지시간 8월 31일 새벽 3시 두바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공동취재단 7명은 6시 40분카불로 향하는 아프간 국적기 ariana afghan arines를 타고 두시간여 만에 카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 국가의 수도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황량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도시,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공항에서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느낌이 더했을 것이다. 급하게 차를 몰아 석방된 인질들이 머물고 있는 카불 중심가의 serena 호텔에 도착했다. 카불에 도착하기 전에는 석방된 19명 전체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공동취재단에 끼지 못한 타 언론사의 압력으로 결국 피랍자 대표인 유경식씨와 서명화씨 두명만 인터뷰하는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11시 쯤 시작된 기자간담회는 기자단의 예상보다 훨씬 밀도가 높았다. 유경식씨는 납치 경위와 피랍 후 생활 등을 조근조근 이야기해 그 동안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서명화씨는 납치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흰 바지 안쪽에 몰래 기록한 일지를 공개하는 등 기사꺼리를 쏟아냈다.


 덕분에 테입을 예상보다 긴 50분이나 돌렸고 그만큼 영상송출에 압박을 받게 되었다. 송출시간이 현지시간으로 오후 1시부터 2시(한국시간 오후 5시30분에서 6시30분)까지로 잡혀있었는데 12시 반이 넘어서야 3사 기자 스탠드업과 오디오를 마무리 지었다.게다가 외교부가 석방 모습을 찍었다는 6mm테입을 바로 찾지 못해 호텔에서 조금 더 지체하게 되었다.


 1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서 송출포인트인 터키 통신사 IHA(Ihlas News Agency)로 출발했는데 카불은 주소가 체계적으로 되어있지 못해 위치를 찾는데 약간 애를 먹어야만 했다. 간판하나 없는 허름한 건물에 위치한 IHA 통신사, 사무실 안의 장비들을 봤을 때는 과연 송출을 제대할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1시가 조금 넘어서야 겨우 송출을 시작했다. 보내야할 영상은 내가 찍은 원본과 외교부의 6mm를 포함해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고, 송출시간은 제한되어있어 마음은 점점 다급해져만 갔다. 게다가 기자 오디오에 채널1이 빠졌다는 연락이 오고 기자단의 KBS 두바이 특파원이 기사가 바뀌었다며 스탠드업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할때는 긴장감에 혀가 바싹 마를 정도였다. 급하게 송출시간을 30분 늘려 2시 30분(한국시간 오후 7시)에야 가까스로 송출을 완료했다.


 잠시 한 숨을 돌리는가 싶었으나 카불에서의 정말 위급한 상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호텔로 돌아가 석방된 인질들이 버스에 탑승하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리고 뒤를 따라 가려하는데 호텔에 우리를 태울 차량이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오디오맨만 남겨놓고 모두 출발해버린 것이었다. 당황해서 호텔 밖으로 뛰어 나가니 때마침 카불의 수많은 외신들이 석방된 인질들을 태운 버스를 쫓아 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눈앞에 보이는 외신차량을 세워 에어포트를 외쳤다. 다행히 승차를 허락받아 뒷자리에 타고 버스를 따라 공항으로 달려갔다.


 외신들의 취재열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버스를 쫓기 위해 과속에 급커브 그리고 역주행까지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공항앞에 도착만하면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것은 오판이었다. 두바이행 비행기가 UN기여서 UN 관할구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허가된 차량만 출입이 가능했던 것이다. 외신차량에서 내려 기자단에 합류하려 했으나 달랑 ENG카메라만 들고 있는 나는 정문에서 경찰들에 의해 출입을 제지당했다. 한국 기자라고 외쳤지만 아무소용 없었다. 여러명의 경찰들이 나를 둘러싸고 총으로 위협하면서 뒤로 물러설 것을 요구했다. 여권도 비행기 티켓 때문에 외교부 직원에게 넘겨준데다 지갑마져 없는 상황, 그순간 두바이로 돌아가지 못하고 카불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코리안 풀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낭패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우리를 발견한 정부관계자가 버스에서 내려 경찰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전화 통화를 하고 10분 정도 경찰과 실랑이를 한 후 가까스로 관문 통과를 허락받았다. 물리적 시간의 수백배에 달하는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 UN비행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하고서야 나는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카불 취재는 위험한 곳에 들어간다는 걱정보다 공동취재단으로서 방송 6사의 영상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컸다. 정부에서 미리 카불 취재를 허가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려졌을 것이다. 아찔했던 순간을 여러번 넘기며 별 탈 없이 취재를 마무지 지을 수 있어 다행이다.


주용진 / SBS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