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by 안양수 posted Apr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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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취재기 Ⅰ>

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우리가 하는 일,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어야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대형 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장에서도, 또 사건 유가족 취재와 같은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픈 현장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일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커다란 사건사고의 현장을 정신없이 취재하는 동안 마음에 슬그머니 떠오르는 생각, 내가 저 사람들의 슬픔을 이렇게 한 발 물러나서 카메라에 담고, 저렇게 안타까운 사건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내가 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도 매순간 떠오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너무 큰 비약이지만, 항상 터지는 일들과 각종 사연들 속에서 냉정하고 공정하게 영상취재를 함으로써 우리의 존재가치를 종종 느끼게 되곤 하니 마음이 굳세지 않고는 자칫 회의감에 상습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일이 바로 우리의 일이다.

 설 명절의 끝자락에 주간 근무와 야근이었다. 다행히 연휴 중간에는 근무가 없었기에 고향에 다녀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근무를 섰다. 연휴 마지막에 큰 사건이야 있겠냐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급히 장비를 챙겨서 나가는 동안에도 숭례문 일대 어딘가에서 그리 크지 않은 불이 났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향해 올라가는데 정말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어.. 하는 동시에 차에서 내려 현장을 영상취재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래도 그나마 연기만 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스케치를 했다. 수많은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이 쉬지 않고 물을 뿌렸다. 연기가 잠잠해질 즈음 숭례문 안쪽으로 소방관들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진화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얼어서 미끄러운 계단을 올라가서 내부 모습을 잠시 스케치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현장이 흘러가더니 이제 불이 곧 잡힐 듯 보였다. 연기도 잦아들고 있었다. 내심 그래도 정말 이만하기를 다행이라며 이후 어떤 그림을 취재해야 좋을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근근이 끊이지 않던 연기가 점점 심해지고 결국 크레인에 올라탄 소방관들이 숭례문 현판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지붕 내부에 있던 불을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숭례문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을 보존하기 위해 떼어내기로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작업하는 소방관들과 현판을 주시했다. 크레인이 좌우로 움직이며 작업한 지 오래지 않아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숭례문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인들의 현장 접근을 막던 의경들도 깜짝 놀라 떨어진 현판을 쳐다봤다. 나 역시 레코딩 불빛이 들어온 뷰파인더를 보면서도 아- 하는 소리를 낮게나마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얼마 후부터 시뻘건 불길이 2층 누각 틈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낼름거리는 뱀의 혀에 비유한 불길의 모습 그대로였다. 흰 연기가 아니라 짙은 회색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외곽에서 취재를 하면서 정확한 진화 상황을 그때그때 알 수 는 없었지만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숭례문 지붕의 구조를 당시 자세히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많은 물을 뿌려대는데도 안쪽의 불길을 잡지 못하는 모습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 많은 소방관들의 노력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과 마음 졸이며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센 불길은 숭례문 2층 누각을 집어삼켰다.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이게 정말 현실에서,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한참을 타던 숭례문은 결국 한 귀퉁이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기의 얼굴 같은 현판을 떼어낸 숭례문이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없던 화재현장에서 숭례문 현판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덕분에 회사에 입사한 이 후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많은 선배, 후배들이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다. 운이 좋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받았음에도 현장에서 화재를 취재할 때도 회사에 들어와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움이 조금 남아 있었다. 숭례문이 전소되는 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뉴스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그 아픈 현장을 마음속으로만 걱정하며 지켜봐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밤 내내 나는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직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단단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허무함 또한 그 안에 함께 있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슬프고 아쉽고 힘든 현장들을 취재하는 일들이 있기에 항상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숭례문은 그렇게 아쉽게 보냈지만 그 마지막 모습을 내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줬다는 뿌듯한 마음 때문이다. 숭례문의 현판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비통한 모습을 나의 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동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