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의 사투, 72시간...

by SBS 김태훈 posted Jan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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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과의 사투, 72시간...


# 반갑다, 눈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산업수도 울산은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도시이다. 변변한 패딩조차 없던 내게, 눈이라는 존재는 신기하고 반가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번 1월 4일에 내린  25.8cm의 기록적인 폭설은 카메라기자에게 눈(雪)이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 1일차,

이불을 거푸집 삼아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는 월요일 새벽, 핸드폰이 울렸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으니 출근을 서둘러달라는 선배의 다급한 전화였다.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니 세상은 온통 눈 천지였고, 뻥튀기같은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은 이미 10cm정도의 눈이 신발을 집어삼킬 기세로 쌓여 있었다.

장비를 챙겨 나간 곳은 회사와 멀지 않은 목동 일대 이면도로였다. 미처 제설이 되지 못한 골목길에서 낙상이나 차량사고를 커버하기로 했다. 가파른 골목길 아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길 1시간 째, 사람들의 통행은 많았지만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손발은 얼고 온몸에 눈이 쌓여 내 모습은 마치 눈사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출근길 스케치를 위해 간선도로로 나갔다. 제설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온 차량들이 미끄러지고 느림보 걸음을 하면서 왕복 6차선 도로는 주차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느 강설 때처럼 눈이 내리다 그칠 것으로 생각한 시민들이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 출근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 2일차, 봉천동 대량 낙상.

6시 30분, 비장한 각오로 회사를 나섰다. 전날 찍지 못한 그림을 반드시 찍으리라 다짐하고 캡이 지시한 목동일대가 아닌 봉천동으로 향했다. 최준식 선배가 찍은 자동차 미끄러지는 모습, 그 곳이 바로 봉천동이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통행이 늘어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니 넘어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소지품을 들고 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중년 남성,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와서 넘어지는 젊은 여성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빙판길에서는 약자였다. 발길이 뜸해져 버스정류장 근처로 장소를 옮겼다. 인도 저편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모습이 보이자 달려가 얼른 자리를 잡는다. 이럴 때는 꼭 굶주린 야수같다. 그늘진 상가 앞 인도, 미끄러울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행인들이 그대로 넘어진다. 어떤 할머니는 얼굴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뉴스를 보면서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일이지만 낙상을 당한 당사자에게는 아픔이며 수치일 수 있다. 오전 내내 봉천동 일대에서만 8명의 낙상자를 촬영했다. 눈이 오면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바로 봉천동임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 3일차, 지하철 No, 지옥철 Yes.

눈이 그친지 이틀이 지났지만, 계속된 강추위에 눈은 녹지 않고 미끄러운 도로를 피해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로 몰렸다. 그런데 그 눈이 지하철 출입문에 들어가 얼면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사고 등이 늘어났다. 문제는 영상취재였다. 사고 상황을 알고 현장을 가더라도 이미 상황이 종료돼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구로역에서 뻗치기를 시도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계속된 연착으로 탑승구는 만원이었다. 인터뷰를 시도하자 시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다. 취재도중 만난 서울메트로 노조원은 이 사태가 정리해고에서 출발한 인원 감축-정비시간 지연으로 인해 발행한 인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고장난 출입문을 어떻게 촬영하느냐였다. 고장난 출입문을 보더라도 그냥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 취재기자와 상의해 전동차에 직접 타기로 했다. 맨땅에 헤딩, 아니 언땅에 헤딩이었다.

천안행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10량 이상의 전동차 중 고장난 출입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마와리’를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머리에 이고, 인파속을 뚫으며 찾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4번째 칸에서 한 여성을 만났는데 우리를 보더니 다급한 목소리를 옆 칸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열릴 것 같던 출입문은 2~3cm 정도 열리다 말고 그런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안 열리자 옆 칸으로 가는 승객들, 플랫홈에서 열차를 타지 못한 승객들, 승하차가 가장 우선인 그들에게 ‘당황’은 사치였다. 취재를 마치고 안내방송을 들으니 수원역이었다. 다른 아이템의 사례 취재를 위해 현장에 왔었는데 의외의 성과였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멀었지만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3일간의 눈 취재, 손발이 얼고 몸은 고생스러웠지만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기회가 된 것 같다.

김태훈/SBS영상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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