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칠레 취재기 - 무역 1조원시대 취재기
1월 9일 저녁 19시, 몸이 안 좋았던 나는 퇴근길 버스에 올라 아내에게 오늘 저녁은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약 10분이 지난 후 부장으로부터 현 위치와 전자 여권이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다급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정확한 상황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여권만 들고 1시간 안에 인천공항으로 넘어가라는 황당한 상황. 필요한 옷가지는 모두 현지에서 구입해 주기로 했으니,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무조건 빨리 인천공항에 도착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촬영기자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지금껏 수많은 해외출장을 다녔지만, 이토록 황당한 출장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목적지도 모르는 상황이 나를 더 당황하게 했지만, 그만큼 다급하다는 현실을 직시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묻지마 출장’을 시작했다.
브라질 상파울로행 밤9시35분 대한항공편 이륙시간을 40여분 남겨놓고서야 헐레벌떡 인천공항 국제선 로비로 뛰어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답답할 따름이었지만, 나를 애타게 기다렸던 출장팀들과 급속으로 출국수속을 처리한 뒤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브라질 상파울로행 비행기가 천사들의 고장 미국‘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최종 목적지 상파울로에 도착했지만, 미국에서
E-Star(트렌지션비자)가 따로 필요하다는 사전정보를 알고 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회사의 모든 해외출장 항공편은 특정 여행사와 거래를 하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항공편 예약을 책임지는데, 이렇게 중요한 사항을 여행사에서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로 낭패였다. 다행히 담당 기자와 PD는 전자여권으로 공항에서 바로 E-Star를 신청해서 승인을 받을 수 있었지만, 카메라기자는 일반여권이여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확인 차 수속중인 항공사 직원에게 재차 물어봤지만, 취재비자로는 절대로 브라질에 갈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전자여권을 소지한 내가 공항에서 출장예정이었던 촬영기자에게 모든 촬영장비를 인수받고 11박12일의 남미 출장길에 올랐다.
첫 취재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2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LG의 공장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에 도착해 점심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짬밥을 먹었다.
서울을 떠난 후 3일 만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브라질은 치안만 좋으면 정말 낙원 같은 곳이다. 상파울로나리오 등 대도시가 위험하지만 흔히들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하지는 못한다. 오래 거주한 분들도 강도한번 안 당한 분들은 조심만 하면 된다고 하고 여러 차례 당하신 분들은 치를 떨었다.
지금은 치안부재가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상이다. 브라질 상파울로는 1차선과 2차선 사이를 주로 오토바이들이 헤집고 다닌다. 대낮 큰길에서 차가 막혀 있으면 특히 남자 2명이 탄 오토바이가 다가와 권총을 들이대거나 유리창을 깨고 가방, 노트북, 카메라 등을 강탈해 간다.
지금껏 출장 와서 잘 보고 여행 잘 다녔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건 그냥 당신 재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브라질 상파울로 인구가 1천1백 만 명인데 모두 다 강도당하는 건 아니니 가급적 뭉쳐 다니는 게 좋다.
상파울로에서는 강도용 지갑을 따로 준비하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년부터 오토바이도 2명이 타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특히 길 한복판에서 오토바이 서치(몸 수색하는 것)를 보았는데 10명중에 3~4명은 총이 있다고 한다. 한국식당에 가면 방탄차량 판매 안내문구가 있곤 했다. 얼마나 치안이 안 좋으면 방탄차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판매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취재팀은 그래도 강도한번 안 당하고 취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의 취재는 비교적 순조롭게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한국타이어, LG공장, 코트라사무실 썬스타 공장 및 현지 법인 사무실, 브라질 상파울로 시내 스케치 등 해외 취재 오면 당연이 하는 일들을 마치고 우리 팀은 칠레 산티아고로 떠났다.
칠레 도착부터 마음이 놓였다. 치안도 아주 좋고 공원에 사람들도 어딘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길에는 현대 그렌져, 스타렉스, 기아차 모하비, 쏘렌토 등 우리나라 차량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마음부터 편안해졌다.
칠레는 3W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우먼, 와인, 웨더. 그런데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날씨와 와인은 비교적 괜찮았다. 날씨는 한참 여름이다. 저녁 9시 넘어야 해가 지기 시작했다. 취재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 좋았다. 와인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맛나고 향도 좋았다.
그런데 길을 아무리 보아도 어여쁜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포스코의 발전소는 칠레 싼티아고에서 2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에 있었다. 한국 분들이 정말 고생하고 계셨다. 인터뷰와 발전소 내부 취재를 마치고 싼티아고에 도착해 시내 스케치와 전망대에서 취재를 마쳤다.
그렇게 11박12일의 일정이 흘러 또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시간과 트렌지션 시간을 합하여 32시간의 거리. 브라질과 칠레가 먼 거리였다. 서울 도착 후 또다시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나른하니 정신이 없었다.
비록 황당함으로 시작되었던 남미출장이었지만, 10년 만에 다시 찾은 브라질과 칠레는 현지인들의 보다 자세한 일상생활들을 오픈해주었고, 반가움으로 문을 더 넓게 열어준 기억을 남겨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더 큰 반가움으로 만날 남미를 기약하며... 가정에 행복과 건강 챙기는 2012년 보내세요.
이성모 / YTN 보도국 영상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