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연평도

by TVNEWS posted Jun 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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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은 연평도                  

3월 8일 오후, 연평도를 향하는 여객선. 배 안 곳곳에 세워져있는 트라이포드와 장비가방들, 그리고 좌석에 놓여있는 타사 카메라들. 익숙한 풍경이었다.
2년 4개월 전, 연평도에 들어가기 위해 해경경비정에 올랐던 때와 유사한 풍경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늘어난 매체와 새로운 장비들. 아직 익숙지 않은 종편의 취재진들과 무겁디무거운 MNG 장비.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때를 생각하고 있자니 당시 내 옆에서 멀미 때문에 고생하던 홍병국 선배의 말이 기억났다.
저기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면 넌 들어갈 수 있겠냐고 선배가 물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본인은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당장 들어가겠다고 하셨다. 그땐 아이가 없던 나에게, 이젠 아내 뱃속의 태아까지 생각하면 벌써 두 애가 생긴 지금, 만약 내 옆에 다른 후배가 있다면 그때의 홍선배처럼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저기 불바다로 나는 바로 뛰어들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2010년에 도착했던 그 부두로 내가 탄 여객선은 다가서고 있었다.
2010년도엔 언론사 중 가장 먼저 연평도에 입도한 김대원 선배가 1톤 트럭을 끌고 와 날 반갑게 맞아줬듯이 이번에도 전날 미리 들어와 취재 중이던 이상원 선배가 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연평도를 열 번을 넘게 드나들었다는 이상원 선배의 안내에도 난 그저 낯설 뿐이었다. 그때의 연평도는 주민도 다 떠나고 없었고 식당이든 민박이든 문 연 곳이 없었다. 당시 우리 취재진은 연평도에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주민들의 집 열쇠와 차키를 얻어 겨우 잘 곳과 이동수단을 얻었을 뿐이었다. 정전으로 인해 썩어가는 편의점의 유제품들을 조승연 선배가 공짜로 얻어 와서 다 같이 행복에 겨워하며 실컷 먹고 난 다음날 단체로 설사를 해야 했고, 적십자사에서 주민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주겠다며 운영하는 ‘밥차’에는 식사 시간만 되면 기자들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나타나서 끼니를 때웠던, 기자들만 가득하고 주민하나 없는 그 때의 연평도와는 무척이나 달랐다.
이미 모든 주택이 재건축되었고 안보교육장에서만 피폭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축구장 같은 주민 체육시설과 편의시설도 눈에 띄고 부두에선 농어 잡이 배들이 열심히 드나드는, 나에게는 낯선, 평화로운 연평도였다. 그땐 접근도 할 수 없던 섬의 북쪽도 모두 개방돼 있어 망향전망대에선 많은 기자들이 쉽게 북한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 모든 카메라에는 망원렌즈가 장착되어 있었고 카메라기자들 등에는 MNG장비가 매달려있었다. 매 시간마다 현장 중계를 해야 해서 정작 취재할 시간이 부족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 선배들이 어렵게 촬영해 특종했던 북한 땅의 갱도와 포를 누구나 쉽게 포착할 수 있는 현재는 우리에게도 더없이 평화로운 연평도였다.
그러나 내가 느낀 그 평화로움은 단순히 멋모르는 내 착각이었다는 걸 며칠 지나지 않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육지에서 먹기 힘든 맛있는 회를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추억 운운하며 소주 한잔 기울일 때도 그 곳 주민들은 옷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언제든 북한의 타격이 가해지면 바로 방공호로 뛰어가기 위해 주민들은 평소에도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잔다는 사실. 연평도 포격 당시 내가 연평도를 돌아다니며 봤던 수많은 포탄 파편들은 내겐 그저 추억이었지만 사고 당일 그들이 느꼈던 그 공포는 이틀 뒤에서나 나타나 사후 현장을 누비며 느꼈던 내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2년 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에게는 큰 변화가 있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2010년을 살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들려오는 포격훈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는 그들이다.

지금도 북한은 연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언론사 해킹과는 차원이 다른 그때의 그런 공포를 연평도 주민들이나 아니면 다른 곳 주민들이 또다시 겪을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의 대남 위협에 따라 많은 취재진이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여전히 취재 중인 이 시기에 우리는 천안함 피격 3주기를 맞이해야 했다.
언제 또 이런 비극이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지 모르나 다만 정부가 나서서 또 다른 비극을 낳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기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곳 주민들이 맘편히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그들에게도 평화로운 연평도가 되길 희망해본다.

KBS 임태호

사진 캡션 <MNG로 LIVE 현장 중계 중인 KBS 이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