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베트남 쓸개즙 관광

by TVNEWS posted Mar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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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지 마세요.”

 
마취된 채 끌려온 곰 앞에서 농장 주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 망했다. 어떡하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옷을 잔뜩 껴입고 출근한 어느 날.
“따뜻한 동남아. 좋겠네. 잘 다녀와.”
영문을 몰라 멍하게 있으니 선배가 출장이 잡혔다고 설명해주신다. 베트남 곰 사육농장에서  패키지관광객들에게 불법으로 곰 쓸개즙을 판매하고 있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웅담을 채취해 구매자들의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저는 관광객인가요?”


선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며칠 후 청주공항. 취재기자와 나는 편한 복장과 소품들로 관광객처럼 위장했다. 그런데 아뿔싸. 패키지 관광객들 대부분이 부모님 연배였다. 난감했다. 인솔자나 가이드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정체를 눈치채면 취재가 엎어질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까?’

 

일단 넉살좋은 이미지로 인솔자와 가이드는 물론 관광객들과도 친해지기로 했다. 짐도 들어드리고 식사시간에 반주도 같이 하면서 낯을 익혔다.
“근데 젊은이들 둘이 어쩐 일이래? 뭐하는 청년들이랴?”
“저는 사표내고 사업하려고 준비 중이고 이 친구는 국회 공무원이에요.”


취재기자는 그렇게 건실한 청년이 되어가고 나는 일개 백수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로인해 의심의 눈초리를 많이 걷어낼 수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베트남 하롱베이에 도착한 우리들은 취재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단 한 번밖에 없는 곰 쓸개즙 쇼핑을 준비했다. 사진촬영 정도는 가능하다는 취재원의 얘기를 듣고 준비한 DSLR, 몰래카메라, 휴대폰 등 의심을 사지 않고 취재할 수 있는 것을 고화질 순서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취재기자와 상황에 맞게 위치를 나눠 다양한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어두워. 하나도 안 보여. 클로즈업을 못 찍겠어.”


곰 농장에 들어서니 줄지어 늘어선 쇠창살들이 보였다. 희미한 백열등에 곰이라는 형체만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곰 눈과 손을 아주 큼지막하게 찍으려고 노력했지만 DSLR LCD와 뷰파인더엔 거무스름한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농장 주인은 우리를 허름한 건물로 끌고 들어갔다.

관광객들을 의자에 앉힌 농장 주인은 곰 쓸개의 효능을 온갖 의학용어들을 동원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 아시죠? 고엽제도 아시겠네요? 베트남에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을 치료하는 아주 특효약이 바로 곰 쓸개즙입니다. 웅담의 주성분인 우루소데옥시콜린 산이라는 성분은 골수에 쌓인 약기운을 제거하고....”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몰입해서 듣고 계셨다.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마취된 곰이 들어왔다. 키가 2미터가 족히 넘을 듯한 곰이 수레에 누워 가냘픈 숨만 쉬고 있었다. 그 때 바로 옆에 앉아계시던 아저씨의 카메라에서 스트로보가 번쩍 터졌다.


“찍지 마세요. 사진기 뺏길 수도 있어요. 한국 가서 인터넷에 올려서 보신 관광이 어떠니...”


신경질적인 농장주인의 반응에 농장 직원들도 덩달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목에 걸고 있던 DSLR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며 주의를 주고 휴대폰을 만지는 것도 유심히 쳐다봤다.

 

취재기자와 나는 눈으로 대화하며 DSLR을 목에 걸고 촬영하는 일과 가지고 간 몰래카메라로 효과음과 곰 쓸개즙 채취 장면을 취재하는 일로 역할을 나눴다. 농장 직원들은 이런 방식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주사바늘을 찔러 쓸개즙을 뽑아내고 있었다. 쓸개즙을 뽑아내는 장면, 채취한 쓸개즙을 나눠 마시는 장면, 판매하는 장면 등을 모두 취재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사히 취재를 마치고나서 출장 장비들을 정리하며 느낀 몇 가지를 노트에 기록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해서 취재장비를 구성하고 우발 상황에 대한 플랜B를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DSLR과 휴대폰을 WI-FI로 연동하는 방법으로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DSLR의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휴대폰 화면만 보면서 촬영할 수 있었기에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 이와 같은 취재현장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트를 덮으며 다음엔 또 어떤 흥미진진한 출장이 기다리고 있을 지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비록 지금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가이드와 농장주의 협박전화는 달갑지 않지만......

 

 

 

 

김경락 / MBC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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