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죽음, 음악인 신해철 ..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by TVNEWS posted Dec 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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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던 그래서 천재 뮤지션이라 불리던 신해철. 하지만 고인이 된 지금 그에게 따라 붙는 말들은 의료과실, 부검…….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들인 만큼 그의 삶의 마지막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10월 31일 이른 아침 고인과 고인의 영정사진이 들어오며 발인미사가 시작 되었다. 미사는 차분한 분위기속에 진행되었다. 미사 중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영결식장 가운데 세워진 고인의 생전 사진. 평소에 거리낌 없이 행동했던 성격대로 도도하게 앞을 응시하고 위풍당당한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이 반어적으로 더욱 슬프게 보였다. 본인도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기에, 가족과 이별을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헤어짐을 맞이한 그이기에, 그 사진 속 신해철의 당당한 모습이 더욱 눈에 밟혔다. 고인을 운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나오고 운구가 시작되자 차분했던 영결식장 안은 흐느낌과울음의 바다로 변했다. 고인의 아내는 ‘왜 당신이어야 하는 거야 , 왜 나를 두고 가느냐’ 라고말하듯 서럽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본 순간 내 가슴이 뜨거워 졌다. 

하지만 난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발인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운구차량 옆으로 이중 삼중 세워진 취재 성벽이 꿈틀거리기 시작 했고 앞을 비켜달라는 취재진과 안으로 더 들어가라는 안전요원들의 고함과 예민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운구행렬이 발인장입구에 나타나면서 고함소리가 있던 자리는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소리로 채워지고 꿈틀거리던 움직임은 운구행렬 쪽으로 카메라 렌즈 방향을 가리키는 통일된 움직임으로 변하였다. 고인의 가족과 동료들은 시신이 운구차량에 옮겨지는 동안 고인과의 이별을 울음과 흐느낌으로 표현할수록 플래시 세례는 더 많아 지고 카메라를 잡고 있던 나의 손도 그 모습을 담기위해 더 빨라졌다. 운구차량이 떠나고 취재진으로 세워진 성벽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인이 된 신해철. 그에 대한 추억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신해철은 전주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환호하고 온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국민응원가 ‘그대에게’를 부른 가수 이자, 라디오 프로 ‘고스티네이션’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신과 철학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이야기하는 논객이자 밤 시간대를 장악한 DJ이자 마왕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과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는 주변의 이야기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수술을 했고 수술하고 10일 뒤에 사망을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그가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의문과 울분은 고인의 발인 날에 그의 동료들이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겠다는 기자회견으로 나타났다. 그로 인해 발인장을 떠났던 그의 시신은 화장되지 않고 국과수로 옮겨가게 되었고 신해철에 대한 나의 취재도 발인 장에서가 끝이 아니었다. 부검을 받고 5일 뒤 다시 고인은 가족, 지인들과의 두 번째 발인으로 아픈 이별을 했다.

천재 뮤지션 신해철은 떠났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과 가족들이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싸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의료과실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병원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생전에도 사회의 부조리나 부당함에 대해서 거침없이 이야기 했던 신해철. 그런 그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회문제에 마지막으로 화두를 던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가 남기는 이 종착역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내가 취재한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임무이자 역할이니깐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범수 / MBN 영상취재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