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5.18 지난 시간의 이야기
깊게 팬 주름 곁으로 맺히지도 않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침나절부터 서서히 끌어 오른 대리석 바닥 위로는 흰 치맛자락이 물결일 듯 내려앉아 있었고, 목에 두른 검정 스카프는 어머니들의 푸념과 한숨으로
들썩 거렸다. 2013년 5월 18일의 이야기다.
민주의 문을 지나 몇 걸음 가지 않은 길 언저리에 어머니들이 앉아 계신다.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 5.18민주묘역 주변에서 취재를 이어가던 기자들도 어머니들이 앉아 계시던 자리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카메라 셔터 소리도 분주히 울려댄다. 이어 취재진들이 질문을 하려던 찰나 주저앉아 계시던 어머니 한 분이
분통 터지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있었고 깊은 한숨은 김 서릴 정도로 차가웠다. 노래 한 곡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때문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야 한다는 빗발치는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서른 세 번째를 맞는 기념식,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5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못내 아파 보였다. 아니 정확히 함께하지 않았다. 5·18 기념식의 유족들과 관련 단체 구성원들은 기념식에 불참하고 민주의 문 앞에 모여들었다. 기념식장 안은 바람 길이 난 듯 휑했다.
민주의 문 앞에 모여든 어머니들은 한 손에는 태극기를 붙잡고 또 한 손에는 목에 걸린 검정 스카프로 눈물을 닦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한 줄 한 줄 불러 내려갔다.
혼잣말 같았다. 혼자 하는 말! 들어주지 않아도 난 이러하니 괜찮다며 애써 어루만지고, 언젠가는 알겠지
아니 같이 해주겠지 언젠가 내 말 듣고 같이 이야기하겠지 하는 그런 혼잣말 같았다. 혼잣말 같은 노래는
그렇게 시간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서른 네 번째, 서른 다섯...여섯.....외면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일곱, 서른일곱 번째 그날!
날이 참 좋다. 날이 지나치게 좋은 건지 5월 햇살치고는 따가웠지만 웃는 얼굴들이 참 많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들고 있다. 2017년 오월의 풍경이다.
서른일곱 번째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기념식장 주위 잔디밭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고 기념식장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예년과는 달리 통제는 없었다. 간단한 확인 절차만 걸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고 기념식장 안은 행사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취재는 자유로이 이뤄졌다. 경호원들과 은근한 신경전도 없이 서로 눈인사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참을 취재를 이어가던 도중에 순간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소했다.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그렇게 당연한 느낌을 받으며 잠시 앉아 있던 때 노래가 불러졌다.
혼잣말 같은 노래가 아니었다. 다 같이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이 모든 게 변화라고 해야 할까.....노래는 하나였고 단지 하나의 노래였을 뿐인데 말이다.
지난 온 시간, 단지 날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을 뿐 인인데 이런 단순한 변화가 이렇게 다름을 보여주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화를 갈망하던 혼잣말이 모여 시대의 의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외면당하고 가슴 두드리던 그때 그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 시간 속에서 상처받고 살아가던 이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5년간의 5월은 단지 이곳 광주의 5월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5월이었다. 하지만 강요와 제재 그리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 이들의 의지로 멀어졌을 수도 혹은 잊혀 지려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닌 같이 부르는 노래. 혼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 우리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어스름한 새벽 피어오르듯 들가에 고개를 내미는 새싹은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우리들의 결실일까”
최양규 / MBN(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