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은 무슨 보존입니까. 일주일 뒤면 사라질 텐데…. 우리는 힘이 없어요.”
큰 가치가 있다며 전 매체가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대 유적(신라 산상 도로)이었지만 향후 보존 계획에 대한 질문에 발굴 책임자가 내놓은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치 있는 유적이라도 충북도지사가 공약으로 추진하는 산업단지 개발 예정지인 데다 이미 주변은 부지 개발이 끝나 보존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는 얘기였다. 현장 공개도 개발 사업시행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것이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학술 자문 위원들 역시 훼손이 심하다며 기록만 남기고 없애자는 의견을 내 결국 문화재청도 보존 결정을 하긴 힘들다고 했다.
매장문화재법은 분명 개발 전에 의무적으로 문화재의 존재 여부를 먼저 확인하도록 규정했고, 중요 문화재가 나오면 경우에 따라 사업 자체를 무산시킬수 있다고 돼있는데 어째서 발굴 조사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부지 대부분이 개발됐는지, 또 그 섣부른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주변 훼손이 어떻게 유적의 보존 가치를 떨어뜨리는 근거가 되는 건지 납득할수 없었다. 발굴 문화재의 가치가 개발의 당위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개발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취재를 결심했지만, 개발에 앞서 발굴됐다면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할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 중요 문화재라는 데 이견이 없는지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우선 신라 도로가 개발을 이유로 보존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내용을 보도한 뒤 현장 조사를 벌인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들은 회의를 열고“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아 원형 보존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대 신라 도로가 발견됐다는 문화재청의 발표로 우선순위가 바뀐 문화재 발굴제도의 허점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흔한 문화재 발굴 현장으로 보였다. 우선 발굴 현장을 자세히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준
비해 간 드론을 띄웠다.
하늘에서 바라본 발굴 현장은 지상에서 본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신라시대에 이런 도로가 존재했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드론을 통해 바라본 현장은 주변 산업단지와 발굴현장이 공존하며, 개발되는 산업단지로 인해서 고대 신라 도로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신라 도로 현장 촬영 후 충청북도 도내에 산재해 있는 발굴 문화재들의 실태 파악에 나섰고, 문화재청은 보존 결정만 할 뿐 관리는 지자체가 맡다 보니 대부분 유적이 유지가 제대로 안되는데 이런 문제점에 신라 도로처럼 산업단지의 한가운데라는 지리적 특수성까지 더해지면 관리가 까다로울 것이 뻔해 더더욱 보존 결정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지 보존 조치가 내려진 충북도 내주요 유적지 7곳(특히 신라 도로처럼 산업단지에 위치해 공장들 사이에 끼어있는 청주 소로리 볍씨 유적지를 중심으로)을 직접 찾아 드론을 동원해 이틀동안 뒤졌는데 안내판조차 없이 방치돼 주민들조차 위치를 모를 정도로 관리가 엉망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생생한 화면을 통해 보존 관리 실태가 어떤지 시청자에게 전달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MBC충북의 관련 보도들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부분 완료 등 발굴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4번째 보도가 있었던 직후 내부 회의를 하고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고시)에 대한 개정안 마련에 착수했다.
문화재청은 이례적으로 보도 취지에 공감한다며 개선 의지에 대한 인터뷰에도 응했다‘. 부분 완료’에 대해서는 횟수 제한을 다시 부활시키거나 승인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수정할 예정이며‘ 사업자 비용 부담’과‘ 지정 관리 이원화’에 대해서도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 지원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문화재청은 MBC충북의 방송이 이어지자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보존 문화재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당부하는 공문을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에 보냈다. 특히 보도에서 지적한 부실 관리 당사자인 충청북도와 청주시에는 유적을 전수 점검한 뒤 조치 결과를 보고하라고 별도의 공문을 추가로 보냈다.
MBC충북의 보도와 문화재청의 지시가 잇따르면서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방치 보존 유적에 대한 전수점검에 착수했다. 청주시는 연말까지 정비를 끝낸뒤 관내 모든 유적지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고 충청북도 역시 도내 보존 유적 현황을 재집계하고 문화재 돌봄 사업에 보존 유적을 포함시켜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후속 조치를 내놨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드론을 날리고 현장을 취재하여, 생생한 현장 그림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또 이를 통해 제도개선이라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병수 / MBC충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