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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자

by KVJA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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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자

 

 

 

 (중략) 점점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원류를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이나 그 기록의 힘과 속기 성을 따라갈 매체가 아직 없지만 대상을 관찰해서 특성을 파악해 다시 재현한다는 관점, 즉 재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사진과 영상은 분명 그림에 뒤쳐진다. 굳이 사진과 영상에서 재해석의 과정을 찾자면 극도의 클로즈업이나, 왜곡, 리터칭, 편집 정도일 텐데 뭔가 허무하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재해석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다. 그래서 예술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 같다. (과거 어느 시점에 SNS에 올렸던 글 中 일부 발췌)
 

 그림 그리기. 어느 날 우연히 석양을 보고 저 석양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나의 취미입니다. 나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스스로 미술을 공부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어떤 깨달음을 느낄 수 있기에 미술이 제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림 그리기는 나를‘ 반복적인’ 관찰의 길로 이끈다.

 

 영상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관찰일 것이다. 관찰이 끝나면 비로소 카메라에 기록을 시작한다. 영상기자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은 그렇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왜 우리는 가장 먼저 대상을 관찰하게 될까?

 

  우연일지는 몰라도 그림의 첫 번째 과정 역시‘ 대상에 대한 관찰’이다. 하지만 영상기자의 관찰과 화가의 관찰 사이에는 차이가 한가지 있다. 전자가 기록(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의 기록)을 위한 첫 번째 과정에 국한된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단순히 하나의 과정으로 끝나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에서 관찰은 기록과 함께 무한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장미꽃을 영상으로 기록한다고 하자. 일반적으로는 빛의 색과 세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이즈, 앵글로 촬영을 한다. 그 장미는 촬영되는 순간의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록된다. 하지만 이 장미라는 동일 대상을 그림으로 기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가의 손으로 종이 위에 표현되는 장미는 카메라를 통해 한순간 박제되는 영상기록과는 완전히 다른 물성을 지니게 된다.

 

 

noname01.jpg

드로잉 연습1

 

noname02.jpg

드로잉 연습2

 

 화가가 장미를 종이 위에 그릴 때 그것은 순간의 기록이 아니라 의미의 기록으로 확장된다. 장미와 인간의 눈(EYE) 사이에는 렌즈가 없다.
 

 화가는 렌즈를 거치지 않고 수시로 장미와 눈을 마주친다. 그 시선의 마주침은 한 번에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완성될때까지 반복된다. 그러므로 그림 속 장미는 순간포착의 결과물이 아니라 켜켜이 쌓이는 과정의 산물에 가깝다. 장미를 완성하는 긴 과정 속에서 화가는 지속적으로 대상에 시선을 던지게 되고 장미는 자기의 겉만이 아니라 안까지도 화가에게 내어준다. 화가는 반복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비로소 장미의 복잡한 내면과 장미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림의 장미는 오랜 과정의 결과, 긴 시간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다. 전자의 장미보다는 후자의 장미가 나(화가)에게 더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 순간에 흘러가버린 관찰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진 관찰이 만든 힘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는 재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영상기록이든 그림이든, 문제는 그 장미가 어떤 장미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장미가‘ 애인에게 선물할 5월에만 피는 독특한 향기의 특수한 품종’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상기록에서는 편집과 자막, 내레이션 등 부가정보(과정)가 동원된다. 순간의 연속적 기록물인 영상만으로는‘ 5월에만 핀다’, ‘독특한 향기’‘, 특수한 품종’ 등의 심층 의미, 복합적 의미를 전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 장미에 대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물론 다층적, 복합적 의미를 지닌 장미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전자에 비해서 더욱 까다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켜켜이 쌓이고 무한 반복되는 그림 제작의 특성은 한 사물이 지닌 역사, 내면, 복합성 등을 표현해 낼 때 마법을 발휘한다. 화가는 그 마법을 위해 장미를 보고 또 본다. 냄새를 맡고 머릿속으로 그 장미를 수십번, 수백 번 재창조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화가 개인의 주관성이 예술과 결합하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화폭 속의 장미 한 송이가 창조될 수 있다.
 

 

그림 그리기는 휴식을 준다.


 그림은 나의 취미였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그리고 싶을 때만 그림을 그려 왔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것이 내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명제였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도 나는 되도록 그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주로 심상을 색을 통해 면 위에 표현하는 그림(추상화)을 그렸다. 이것은 작업 자체가 추상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어 (어찌보면) 난해하지만 오직 그 작업을 통해 나는 큰 위로와 안정감, 그리고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속에서 나아가 완성된 그림을 스스로 감상하면서도 말이다.

 

 

noname03.jpg

종이에 유채 아크릴 혼합

 

noname04.jpg

<파란하늘 푸른바다> 나무합판에 유채

 

 

 그러나 그림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휴식이 아닌가 싶다. (물론 영상을 다뤄야 하는 나에게 직업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그림이 주는 또 다른 프리미엄이다.) 여러분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눈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 뭐든지 시작이 어려운 법이죠.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혹시 마음 속으로만,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일단 한번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떤지 권유해 본다. 아주 심플하게 드로잉(Drawing)부터 말이다.

 

 

 

유병철 / OBS    유병철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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