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史)의 이정표…윤리적 다짐 넘어 실질적 지침이 될 것”

by KVJA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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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사(史)의 이정표…윤리적 다짐 넘어 실질적 지침이 될 것”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연구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인터뷰

 

 

이승선 사진 1 ㅍㅈ.jpg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취재원에 대한 인격권 침해 문제를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는 각성을 들 수 있다. 현장에서 영상기자들이 취재 대상의 초상권이나 사생활을 침해하게 되고, 이 때문에‘ 명예훼손’ 이라는 법적 책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는 현실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두 번째는 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영상기자를 비롯한 언론인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취재원에 대한 인격권을 지키지 않으면 언론이 배겨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학계와 법조계에 몸담고 있던 연구진들이 목소리를 많이 냈던 부분인데, 영상기자의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표면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현장에서 느꼈던 영상기자의 체감도 있지만, 밖에서 볼 때조차도 기자들의 안전 문제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방향을 정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언론사나 언론유관단체에서 발간한 보도 가이드라인이 이미 존재하는데.
 

 “언론 기관이나 단체들도 취재와 관련한 강령이나 실천 요강, 준칙들이 있다. 인권이나 재난, 자살 등 구체적인 영역별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기존의 강령이나 준칙들은 언론인의 의지와다짐을 보여주는 데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구체적인 지침을 주기엔 한계가 있다. 또, 이러한 강령들은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서 사건 직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지속해서 현장의 규범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방송사들은 각자 제작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것 역시 방송사의 전반적 영역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지침의 역할이 미흡한 것 같다. 또한, 방송사에 따라서는 책자 형태로 펴내 공유하기도 하지만, 구성원들이 접근하여 실제로 이용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기존의 가이드라인과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은 △사적 공간 △공개 공간 △위험·전시·재난·범죄 상황 △비즈니스·외부 이해관계 등 영상보도 영역을 크게 네가지로 나누어 해당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95개의 질문 형태로 지침을 정했다. 각 질문에 대한 행동 지침을 제공하고, 해당 지침과 관련한 한국 법원의 판례도 함께 실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사례, 외국의 주목할 만한 사례, 필요하다면 법률 이론도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기관이나 단체의 각종 지침과는 차별점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말 발간된 <영상보도가이드라인>이 언론계 안팎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어떤 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는가?
 

 “가장 큰 의의는 한국 언론사(史)에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다. 국내를 통틀어 영상기자들이 취재보도 현장에서 취재원의 인격권을 보호하고, 동시에 기자들의 안전을 확보할 방법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과거를 성찰함과 동시에 미래 지향성을 고려했다.
 

 두 번째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윤리적 다짐을 넘어 구체적인 법률적 해석과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취재 보도현장에서 실질적인 가이드라인, 즉 지침이 될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했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선진적인 외국 언론의 규범을 현 단계에서 반영하여 지침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BBC, NHK가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때 어떻게 하는지를 방향성으로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언론 분쟁에 있어서 법적 판단의근거 자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도 큰 의의다. ”
 

영상보도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이번 가이드라인이 법적 판단에 영향을줄 거라는 뜻인가.
 

 “그렇다. 언론 분쟁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기자들은 이제는 관행을 이유로 취재원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사생활 침해, 실정법 위반, 나아가 언론인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것을 관행으로 치부하기 어렵게 됐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고, 이걸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이 언론인으로서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법원은 법적인 판단에 있어‘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인 형태(책자)로 나와 있는데, 왜 이걸 지키지 않았느냐’고 추궁할 것이다. 더는 관행이라고 변명할 수 없는상황이 됐다.”
 

범죄나 수사, 재판 보도에서 피의자 신상공개를 할 때 기자들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법적·윤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은 개별 언론인 수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언론인이 오히려 시민들의 인권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취재원 어떤점을 존중해 주어야 할지, 어떤 점을 존중해주지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언론사 내 데스크나 임원진의 시각이다. 지난 수년 동안 데스크와 임원들에게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기본적인 기조들을 말씀드려왔는데, 개인적으로 좌절감을 느꼈다. 관행적으로 위법 행위를 하고, 윤리수준을 지키지 않고, 취재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 일선 기자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것을‘ 기자정신’이라고 생각하는 남성 우월주의적인 인식이 강하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언론사 경영진은 자기 언론인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널리즘의 질을 확보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언론인도 알고 있고 데스크도 알고 있는데, 경쟁이라는 이유로 이런 다짐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두 가지가 해결되면 서서히 해결될 것으로 본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서 개선하고자 하는 영상기자의 어려움이 있다면?
 

 “가이드라인에는 두 가지가 담겨 있다. 언론사는 현장 취재 인력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과 언론인 스스로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에 대한 취재 지시가 내려졌을 때, 언론사는 메르스 현장의 안전성이 확보되었는지 확인해서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취재 지시를 하면 안 된다. 또한, 기자에게 안전 장비를 갖춰 주고, 취재 전·후에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인 역시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취재 지시를 받으면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맞다.”
 

취재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영상기자들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재난보도에 있어 영상기자들은 생명을 담보로 현장에 뛰어든다. 지난 2010년엔 지역 민영방송 영상 제작팀 기자가 태풍 뎬무를 취재하다 사망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방송사 경영진들은 기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소극적인 게 사실이다.
 

 “경영진의 태도가 바뀌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인의 안전을 확보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언론 내부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경영진의 사고방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을 경우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는 걸 경영진이 느낀다면 변화가 올 것이다. 소송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두려워지면 이런 관행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분쟁에 대한 언론의 배상 책임(손해배상액)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언론사 입장에서 감당할 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사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임원진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데스크의 부당한 취재 지시, 위법한 지시에 복종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회사의 취재 지시를 현장의 기자가 불복할 수 있을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기자협회와 같은 언론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또 경영진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 언론사 내부의 격렬한 토론을 통해 언론 문화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집필 과정에서도 늘 제기됐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현장 기자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 법원이 언론 분쟁을 해결하려고 할 때 <가이드라인>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급격하게 현장에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준수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영상기자들이 스스로 돌아보고 달라져야 하는 점도 있을 것 같다.
 

 “먼저 언론인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기 안전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권리이니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법적 책임 추궁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몰래카메라의 경우 <가이드라인>은 다른 대안이 있는데도 검토해 보지 않고 관행처럼 혹은 다른 특별한 보도 욕심에 몰카를 사용했다면, 기자에게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관행적인 몰카 사용과 관련해 법원이 방송사 내 윤리강령을 들어 불법성을 추궁한 판결이 있다. 영상과 관련한 법적 분쟁에서 <가이드라인>은 관행과 기준을 판단해 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기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영상기자는 취재원의 인권 침해에 대한 고민, 데스크에 대한 보고 등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연구팀은 학계, 법조계 인사와 취재현장을 뛰는 영상기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평소의 고민과 취재의 방향성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면서 학자로서 어떤 점이 도움이 되었나?
 

 “현장 기자들은 내 친구이자 선배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하다. 특히 많은 기자가 제자라는점에서 안전 확보에 가장 마음이 쓰였는데, 그런 부분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이번 연구는 영상기자들의 고충을 많이 접할 기회이기도 했다. 알고 있었던 것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사례와 고민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여서 보람있게 생각한다.”
 

<가이드라인>이 나오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제작 마지막 과정에서 인쇄된 책을 모두 폐기처분을 한 일이 있었다. 바로잡아야 할 곳이 있어 부분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었는데, 전량 폐기하고 새로 교정을 해 재제작했다. 한국영상기자협회 한원상 회장의 특별한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회장이 일본 자료를 꾸준히 번역해 연구 모임에 제공하는 등 <가이드라인> 작업에 상당한 열정을 갖고 있었는데, 책에 발간사도 넣지 않고 사양하더라.

 

 하지만 어려움보다는 좋은 기억이 많다. 지난 몇 년 동안 방송사에서 영상기자들의 크레딧이 삭제된 시절도 있었는데, 글을 쓸 기회가 별로없는 영상기자들의 어려움을 밖으로 드러낼 기회라고 생각해 이번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를 포함해 학자들은 현장의 경험을 들을수 있어 좋았고, 현장에 계신 분들과 판례나 이론에 관해 토론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끼리 소통이 좋아서 보람이 컸던 작업이었다. 이 자리를 통해 열정, 사명감, 헌신의 자세로 함께 작업했던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흡하고 부족하지만, 이것이 현장에 침투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법원 판결문에서 <가이드라인>을 자꾸 언급해 주는 것이다. 취재 보도에 있어 불법적인,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의 개선을 위한‘ 법적 책임의 기준’으로 적용한다고 드러 내 준다면 빠른 속도로 현장에 침투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기자협회와 경찰청, 검찰청 간의 협업도 중요하다. 취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포토라인이나 피의자 신상 공개, 범죄사실 공표 등에 있어 검·경과의 <가이드라인> 공유가 중요하다.
 

 언론사 내부의 적극적인 교육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현장에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고민을 수정, 보완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영상기자협회나 언론유관기관, 시민사회단체에서 상을 줄 때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평가 항목으로 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침투 방법일 것이다.”

 

 

안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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