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몇 달 된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지난 2월 1일, 수도권 상공에 헬기 2대가 떴습니다. 매년 한다는‘ 경찰청 설 명절 고속도로 교통상황 및 귀성길 장면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상황이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시죠?) 매년 연례 행사(?)처럼 치르는 것이기도 하고, 또 2월 1일이면 아직 연휴 전이라 아직은 본격적인 정체가 이어지기 전이라 짐작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현장에 갔습니다. 올해 설 연휴는 (2일부터 6일까지) 예년보다 비교적 긴 편이어서 귀성 차량이 좀 더 분산되리라 생각도 했습니다.
오후 2시쯤 노들섬 헬기장(집결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현장에서 담당 경찰들이 기자들을 상대로 간단한 신원조회를 했습니다. 어느 경찰관이 말하더군요.“ 매년 그렇지만 우리 경찰 헬기 잘 좀 찍어주셔야 합니다.” (그 소리에 갑자기 혈압이 확 오르더군요. 내가 명절에 경찰 헬기나 찍으러 다니는 사람인가?)
2시가 훌쩍 넘어가는데 정작 우릴 태울 헬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이런저런 상념이 들더군요. 헬기가 문제없이 잘 뜰 수 있으려나? 하늘 위에서 별일 없겠지... ?
이윽고 헬기가 도착했습니다. 영상기자(종편포함) 7명과 사진기자 8명은 각각 2대의 헬기에 나뉘어 탑승했습니다. 최근 해병대 헬기 등 몇몇 사고들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 긴장감을 가졌습니다. 프로펠러가 돌고 헬기가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며 상공에 올라가니 바람이 심하게 불더군요. 기체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착석한 상태였지만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에서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30분쯤을 날아 드디어 저 아래로 기다란 용의 몸체와 같은 서해대교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내 7명의 기자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 뛰어다니는 경쟁이 좁은 헬기 안에서도 벌어질 줄이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입니다.
뷰파인더에 얼굴을 묻고 정신없이 일하는 동안 불안도 상념도 모두 잊었습니다. 웃픈 일입니다. 헬기에 탄 것만으로도 피로도가 높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일 텐데 정작 일할 때만큼은 머릿속이 아주 깨끗해지니.
취재를 마치고 헬기가 다시 노들섬을 향해 복귀하는데 멀리 고속도로에 긴 병목현상이 발생했더군요. 신갈 JC 부근에. 차들이 벌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채 서행하고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 퇴근 차량 행렬에 더해 긴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습니다. 마침 옆을 보니 우리가 탄 헬기 오른쪽에 다른 헬기 한 대가 우리와 동일한 높이로 떠 있더군요. 아마도 사진기자 헬기에서 우리 취재진 헬기 모습을 담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도 상대 헬기 모습을 물론 담았죠.) 뜻하지 않게 취재진이 홍보에 동원된 듯해 약간 씁쓸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
설날(구정) 귀성 풍경 스케치, 고속도로 정체 소식. 그림도 비슷하고 내용(말)도 비슷합니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뉴스, 이런 방식의 취재 노동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년 경찰 헬기에 올라타 그 안에서 행하는 위험한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좋은 정보, 유익한 뉴스인가?
물론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 귀경길 현재 교통상황 등이 어떤 시청자들에게는 중요한 뉴스일 수도 있습니다. 와, 많이 막혔네. 지루하겠어. 그런 생각을 들게 하고,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에 금과옥조가 따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상기자들이 매년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헬기 촬영을 감행하는 풍경이 어떤 측면에서는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의 첨단 기술로 미뤄볼 때, 또 대형 TV 화면으로 비칠 영상의 미적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은 여러모로 불완전합니다. 그 영상이 정 필요하면 경찰청 화면 협조를 따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내용의 핵심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어느 구간의 차가 막힌다’ 에 있습니다. 관행에 의한 행위의 반복, 고민 없이 그저 ‘으레 했으니까 그냥 해’ 식의 워크플로우.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젠 이러한 관행적 촬영에 관해 이야기 좀 나눠 보고 싶습니다. 과연 이것 말고 다른 방식은 없는가? 또 이런 식의 뉴스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영길 / O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