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순간이 라이브로 전파를 탔다. 이전 라이브 영상처럼 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TV 화면이 보는 이에게 불안감을 줬다. 생중계를 하던 뉴스 앵커는 당황해 하며 라이브 화면이 고르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사과했다. 생경한 풍경이다.
방송 이후, 판문점에서의 북미회담이라는 세기적 이벤트를 깔끔하게 전달하지 못한 데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현업자들에게는 뼈아프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념 전파의 도구로, 국가주도의 선전 선동 도구로 기록영화를 적극 활용한다. 이번 북미회담에서도 북한은 영상 기록에 꽤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여러 대의 북측 영상 카메라가 자유의 집 옥상 등 주요 동선마다 미리 배치되었고 2팀 이상의 ENG 촬영팀이 근접 경호라인 안에서 통제 없이 밀착 촬영을 했다. 촬영은 판문점 북미회담을 준비하는 북측에게는 경호와 의전에 버금가게 중요한 우선 사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잘 기록되어야 할 순간이었을 테니까. 이벤트 자체의 가치도 가치이지만, 그들 입장에서 인민들에게 보여줄 무엇이 필요했으리라.
미국 측 백악관 취재단의 입장은 또 달랐을 것이다. 물론 싱가포르나 하노이처럼 공식적이고 중요한 행사에서는 으레 사전에 언론과 협의하고 생중계를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백악관 공보관이 지정하는 포토라인이 있고 대통령이 지나가면 큰소리로 질문하고 먼발치서 쓸 만한 컷을 잡는다. 아주 나쁘게 말한다면 정돈되지 않은 시장판이다. 백악관과 미디어는 견제하고 감시하는 관계다. 프랜들리하지 않고 미디어를 위해 편의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알아서 취재해야 하는 환경이다.
회담 후, 우리는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두 가지 버전의 영상기록을 보았다. 사회주의 선전영화 한 편과 반대로 카메라가 흔들리고 뒤집어지는 급박한 현장 라이브.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준비와 미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북한의 미디어는 영도자 김정은 보여주기가 중요했던 것이고 미국의 언론은 역사적 순간의 실시간 보도가 중요했다. 결국 이날 북미회담에 대한 두 풍경은 상이한 체제 하의 상이한 기록, 상이한 언론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의 경우는 어땠는가? 회담 당시 북한과 미국 측 취재단이 아닌 한국 취재단은 접근 자체가 원천 불허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혈혈단신으로 현장을 뚫고 들어가 라이브 백팩을 짊어지고 고군분투한 YTN 박진수 기자의 현장 연결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역사적인 <판문점 북미회담>의 순간을 ‘북한 조선중앙 TV’와 ‘미국 방송사’ 제공의 영상으로만 역사에 기록하는 수모를 당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후대에 기록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건 현장에서 자국 취재단과 기록에 관한 협의가 제대로 없었던 부분은 매우 아쉽다. 언론이 얼마나 제기능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최소한의 성의가 없었던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최경순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