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록이 넘쳐나는 시대, 편리해진 기억력 덕택에 개개인의 온갖 흑역사를 어렵지 않게 불러오게 되면서 탄생한, 일종의 기본권입니다. 확실히 요즘은 잘 기억되기보다는, 잘 잊혀지는 것이 더 절실한 시대입니다.
또,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좋은 것만 남기고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망각하지 못하면 세월은 독이 됩니다. 찬란한 추억들이야 질리도록 곱씹겠지만, 구질구질한 페이지는 과감히 찢어버리면서 살아가기를 모두가 바라고 희망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론의 소명은 잊는 것보다는 기억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잊혀질 권리로 주장될지 모를 사실을, 잊지 않고 다시금 떠올려 평가받게 만드는 것이 망각의 시대 언론의 책임감입니다. 미국에서 잘 살고 있던, 소위 ‘노무현 대통령 논두렁시계 사건’ 담당 검사인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이런 이유로 저희의 취재 목록에 소환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목록의 두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미국 출장길에 오르기 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추적하고자 했던 또 다른 누군가도 있었습니다. 이 전 중수부장 사건이 이처럼 취재진의 원픽(?)에서 밀려난 건, 사안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취재의 용이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워싱턴 모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되어 있었고, 최근에 음식점에서 찍힌 사진도 나돌았던 터라, 그냥 찾아가기만 해도 대충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앞 사람은 놓쳐도 이인규는 만나겠지’ 하는, 일종의 보험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취재가 그렇듯,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상황은 모두 바뀌어 있었고, 워싱턴 바닥에서 이 서방 찾기 버전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뜩이나 프라이버시 개념이 철저한 미국 사회에서, ‘혹시 이 사람 보셨나요’를 남발하며 동네를 휘젓는 건 누가 봐도 한계가 명확했지만, 구역을 나눠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취재진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어수룩한 말투로 옛 친구를 찾고 있다는 뻔한 거짓말을 남발함과 동시에, 구글링을 통해 ‘인규 리’의 행적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절실함이 닿았는지 몇 차례의 헛발질과 뻗치기, 온/오프라인 탐문을 반복한 끝에 워싱턴 외곽의 고급 빌라촌 헬스장에서 체력관리에 열중이던 이인규 씨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주말 아침 골프장에서 굿샷을 외치던 그에게, 결코 굿 하지 않았을 인터뷰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논두렁’ 검사는 다시금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소환되었습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이래저래 꽤 시끄럽습니다. 여기에는 검찰발이라면 무조건 맹신하고 받아썼던 기자들의 책임도 분명 한몫하고 있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 때가 절정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논바닥의 시계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촌극을 벌였습니다. 저 역시 봉하마을 뒷산에서 노 대통령 사저에 카메라를 겨누고, 취재라는 미명 하에 살인극에 가담했던 1인의 기레기입니다.
검찰의 장단에 놀아나며, 허망한 REC 버튼을 마구 눌러댔던 오욕의 순간들이 이번 보도로 지워지진 않겠지만, 참회록의 첫 줄을 이렇게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백과사전 분량이 나올지도 모를 이 고해성사가, 무겁고도 절실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까먹지 않고,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기록하겠습니다.
박주일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