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역사회 전파로 영상기자 안전 '빨간 불'
현장 기자들 “아침에 일어나는 게 겁나”…“청도대남병원 등 위험 현장 통제선 설치해야” 목소리도
▲ 지난 2월 24일, 청도 대남병원에서 구급차로 환자 이송 중에 일부 언론들이 근접 취재하고 있다<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면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안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국내 코로나19 확진환자는 지난 1월 20일 처음 확인된 뒤 38일 만인 26일 확진자는 모두 1261명,사망자는 12명으로 집계됐다(오전 4시 기준). 특히 대구 지역 확진자가 710명, 경북 지역이 317명 등 대구·경북 지역의 확진자가 전체 확진자 수의 81.4%를 차지하면서 이 지역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의 감염 위협이 높아지고 있다.
▶ 코로나19 초기, 일부 언론 근접 취재
대구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첫 확진자이자, 국내 신천지 신도 첫 확진자인 31번 환자로 지역 사회 감염이 현실화하면서 언론사들은 대구·경북 지역에 취재진을 파견했다. 이 당시만 해도 일부 언론은 감염 의심 증세를 보여 병원에 실려오는 환자를 근접 취재하거나, 코로나 19 검사를 위해 선별 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을 1m 거리에서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안전 확보, 기자가 감염원이 돼선 안 된다는 판단,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사옥이 폐쇄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원거리 취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각 언론사는 원거리 취재에 돌입했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와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안주영)도 지난 21일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협회 회원들의 건강이 우려될 뿐 아니라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취재진이 코로나19의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병원과 검진소 취재 시 필히 마스크와 고글 등 보호장비를 착용한 후 최대한 원거리에서 취재해 줄 것”을 협회 회원들에게 당부한 상태다.
대구 지역 취재를 다녀온 한 방송사 기자는 “확진자 인터뷰는 아예 안 되고, 의심 환자라 하더라도 가까이서 촬영하는 건 못 하게 하고 있어서 조심은 하는 데, 초반에는 이러한 전달이나 교육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며 “현장에서 대기 중일 때는 모두들 조심하는 모습인데, 누구 하나가 달려들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뛰어들게 된다.”고 털어놨다.
▶ 청도대남병원, ‘통제선’도 없어…“해당 기관이 ‘포토라인’ 만들어야”
기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감염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해당 기관이 출입 통제선을 설치하거나, 기자들과 협의해 포토라인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경북 지역을 취재한 한 방송사 기자는 “선별 진료소는 의심 환자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몰려들어 제일 붐비는 곳인데, 일부 기자들이 의심 환자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등 위험해 보이는 취재를 하기도 한다.”며 “여러 지역에서 온 취재진들 수가 많은 데다 각 사마다 사정이 다르다 보니 ‘원거리 취재를 하라’는 권고만으로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영상 기자도 “경북대병원의 경우 매뉴얼에 따라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일반인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청도대남병원의 경우 출입 통제선조차 없다.”며“ 기자들의 현장 접근도 문제지만, 확진 환자나 의심 환자를 이송하거나 방역을 할 때 기본적인 통제선조차 치지 않는 당국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 마스크·손소독제 등 물품 수급 ‘비상’…“손 소독 스프레이 직접 만들어 써”
현장 취재 시 반드시 필요한 마스크, 손소독제, 일회용 장갑, 고글 등 기본적인 안전 보호 물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마스크는 국내에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직후 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언론사도 구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구·경북 취재를 다녀온 한 방송사 기자는 “현장 취재를 할 때 취재 기자, 영상 기자, 오디오맨, 보도차량 기사 등 네 명이 한 팀을 이루는데,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상황을 취재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장의 마스크가 필요하다.”며 “그동안 그럭저럭 지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번주에 들리는 소식으로는 마스크 공급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고 전했다.
대구 지역 한 언론사 기자는 “에탄올과 물을 7:3으로 섞으면 소독 스프레이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기자들이 에탄올을 구해 소독용 스프레이를 직접 만들었다.”며 “현장에 나가는 게 불안한 상황인데 안전 물품조차 제대로 지급이 안 되고 있어 기자들이 알아서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마스크 물량이 모두 관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총무팀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그나마 대구·경북 지역에 있는 기자들은 서울의 보도국과 노동조합에서 긴급하게 물량을 구해 내려 보내준 상황”이라고 밝혔다.
▶ 방송사, 대구 출장 다녀온 기자 자가 격리…취재팀 철수도 강행
방송사들은 대구·경북 지역에 출장을 다녀온 기자들을 자가 격리시키고, 이상 증상이 있는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일부 언론사는 이 지역에 보냈던 취재팀을 아예 철수시키는 한편 사내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셧 다운’에 대비한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KBS는 확진자 접근 금지, 원거리 취재를 원칙으로 현장 기자들에게 마스크, 장갑, 고글을 지급했다. 또, KBS 내 확진자 발생에 대비해 사무실을 본관, 신관, 연구동으로 분산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출입처 인력은 현지로 출·퇴근하도록 했다. KBS는 지역 네트워크가 있어 대구·경북에 다녀온 기자는 없는 상태다.
MBC도 마스크, 손소독제 등 위생 용품을 지급했고, 확진자가 나왔을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안을 만든 상태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단계로 격상된 23일부터는 취재를 다녀온 사람들은 발열 체크를 하고 소독을 한 뒤 사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SBS는 지난 주말 대구 지역의 출장팀을 철수하고, 가능한 한 지역 현장 취재를 자제하기로 했다.현재 출장을 다녀온 기자들은 5일간 재택 근무에 들어가 일종의 ‘자가 격리’ 상태다. SBS는 또 팀장 재량으로 기자들이 혼잡한 시간을 피해 출·퇴근할 수 있게 조정하고, 외근이 많은 현장 기자는 출입처나 현장으로 바로 출·퇴근하도록 했다. 외부인은 사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도록 하고, 출입구에서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실시한 지는 오래다. 사내 피트니스 센터도 폐쇄하고, 회식도 금지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오늘 회사로부터 현장 기자들이 회사 출입을 금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메르스 때부터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이제 와서 열심히 현장을 뛴 기자들을 감염 전파자로만 보고 분리할 생각만 하는 걸 보고 상당히 씁쓸했다.”고 말했다.
안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