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외주화와 영상의 공공성

by KVJA posted Jul 17,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기억의 외주화와 영상의 공공성





 미국 911 이후 쌍둥이 빌딩의 폐허 자리에 지하 공간을 유지해 참사를 기억하자고 했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의 제안보다 그 인근에 고만고만한 건물들을 건설하자는 계획은 시민들의 더 큰 반발을 샀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만큼 대중들은 미국의 상징성을 복원시킬 시각적인 스펙터클 (Spectacle)의 복원을 원했다.


  시각적 표현과 상징은 현대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핵심이고, 사람들의 기억과 상상력에 영향을 미친다. 분명 우리는 영상 매체 중심의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50억 개 이상의 영상이 시청되고 분당 500시간의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있다. 특히, 학교 안에서 보자면 현재 젊은 세대는 확실히 일기장을 쓰는 것보다 브이로그(vlog)가 편해 보인다. 영상은 뉴미디어의 핵심이고, 하루하루의 일상과 의미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시각문화 연구자 미첼 교수(W.J.T. MITCHELL)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지에 불과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영상 중심의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에서 사실과 정보를 기록하고 가공하는 영상저널리즘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아마추어와 프로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고, 시민의 카메라가 사회 감시 기능을 하고, 또 언론과 유사 언론이 무한 경쟁을 펼치는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는 감당하기에 벅찬 수준의 정보와 사건들이 시 각화되고 공유된다. 디지털 아카이브와 기억의 관계를 연구하는 럼지(Rumsey) 교수의 표현대로 우리는 점점 더 기억을 미디어에 외주화하고 있고, 이런 새로운 방식은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 문화를 바꾸고 있다.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와 섞어 놓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의 기억을 확인했더니 가짜 뉴스도 사실로 인식했다는 미국 슬레이트지(Slate)의 연구는 생물학적인 기억의 한계는 명확하고, 그만큼 미디어가 생산 하는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영상저널리즘의 자리가 점점 더 위축되어 간다는 점이다. 기자 사회 밖에서 보면 미디어 학부 안에서조차 영상저널리 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동시에 취재 시스템 안에서는 기관의 통제가 더욱 심해지고, 영상 제작이 대중화되고, 아카이브 영상들이 범람하면서 사실을 담보할 수 있는 기록으로서의 영상의 가치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탈맥락화된 아카이브 영상에 의도와 자막을 입혀 메시지가 가공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고, 더 심한 경우 영상은 맥락을 잃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의 포장지처럼 쓰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훼손시키며 분열과 혐오 같은 사회적 비용도 발생시킨다. 미디어를 공유하며 사람들이 소속감과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앤더슨(Anderson)의 설명보다 더 직접 적으로 우리는 응당히 보여야 할 영상이 없거나 왜곡되었던 참담한 시대를 경험해 왔다.


 그래서 전문인으로서의 영상기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수적인 직종이다. 문제는 현재의 영상저널리즘이 ‘영상은 사실이다’ 란 전통적인 낡은 가치에 사로잡혀서 변화된 시각 문화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토샵 아티스트인 에릭 요한슨 (Eric Johansson)의 성공이 보여주듯 현대의 영상은 점점 회화를 닮아가고 있고, 사람들의 관심은‘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가’란 질문에서 ‘그림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의 제작 방식은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인력 부족과 운영의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텍스트(sync) 중심의 하향식(top-down) 취재 관행 속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역할, 사회적 함의를 창조하는 커뮤니케이터로의 역할 등을 종종 놓쳐 왔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는 게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 모델이라면 영상저널리즘은 특정한 단어와 싱크를 따는 역할이 아닌 맥락을 기록하는 독립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사실의 기록’ 이라는 전통적인 믿음과 가치와는 별개로 적극적인 기획과 표현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선례를 보아 왔고, 우수한 콘텐츠는 언제든 폭발적으로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시청자들은 수동적 역할이 아니라 뉴스를 자신의 소셜 관계망을 통해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댓글을 다는 행위를 통해 ‘제2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


 관심이 공유되고 또한 수익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영상저널리 즘은 현장의 맥락을 보여주고, 또 팩트를 사회적 의미로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표현력이 뛰어난 영상기자들에게 아이디어와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모델이 필요하다. 하루 일상에서 여러 미디어를 넘나드는 트랜스 미디어 환경에서 영상저널리즘은 하나의 쇼트(shot)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맥락(context)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하는 기획과 프로그램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다시 미첼(W.J.T Mitchell)의 말속에 있다. “우리는 매체의 이미지 에, 매체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김우철 /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사진) 김우철 증명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