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국회, 멈춘 영상기자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유튜버들이 민경욱 전의원 취재하는 모습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서울지역), 후보 영상 연설모습
일반적으로 변화에 가장 둔감한 조직은 국회, 변화에 가장 둔감한 이들은 정치인이라고 한다.
#1. 2020년 하반기, 국회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셧다운이 반복되면서 ‘비대면 회의’와 ‘원격 표결’가능성이 제시되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비대면 원격 영상회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장은 작년 12월 입장문을 통해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엄중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는 이미 지난 3차 추경을 바탕으로 상임위 화상회의 및 원격 표결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했다. 걸림돌은 국회법이다. 현행에는 원격 회의와 비대면 투표에 대한 규정이 없는 데다, 국회법은 회의장에 있지 않은 의원은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조승래 의원과 고민정 의원이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권에서는 다수결 독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주요 국가들은 원격 의회를 상당수 도입한 상태이다. 영국은 코로나 확산 후 2달여 만에 원격 시스템을 갖췄다.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유럽연합 의회, 프랑스, 독일, 러시아 하원도 원격 표결을 실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결국 시간 문제로 보인다.
#2. 더불어민주당은 ‘온택트’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온라인’과 ‘언택트(비대면)’의 합성어로 작년부터 당대표 전당대회와 주요 당 회의를 온택트 컨셉으로 진행하고 있다. 인원 동원을 통해 세 과시를 하던 전당대회는 옛말이다.
각 후보들은 스마트폰 영상을 통해서 당원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원총회 및 종무식, 시무식까지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당대표 기자회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이 공식 유튜브 채널인 '씀TV'를 방송국으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코로나 상황과는 별개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자체 제작한 영상·텍스트 콘텐츠를 상시적으로 보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당 수석대변인은 "당 혁신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영상이든 텍스트든 다양하게 (제작할 것이다)" 라며 "유튜브를 주로 하겠지만, 소셜미디어를 전반적으로 이용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힘은 한때 국회 출입기자보다 정치 유튜버들을 우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보수 유튜버에 더 힘을 실어서 입장을 밝히겠다는 의도였지만,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가 더 이상 우월한 위치를 점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3. 작년 말에는 한 방송사에서 상임위원회의 의사 중계시스템을 중계로 바로 송출했다. 의사 중계 시스템은 각 위원회 전체 회의장에 배치된 CCTV로 실시간 촬영되는 영상이다. 사용 목적은 1차로 회의 진행을 위해 회의장 내 모니터 출력이고, 최근에는 인터넷, 모바일용으로 상시 볼 수 있다. 화질이나 구도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시청자들은 그 현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것들은 전부 2년 동안 국회를 출입하며 발생한 일이다. 한때, 영상기자 풀단이 취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역사’이던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 국회 영상기자 풀단이 커버하지 않아도 종편 풀단, 수많은 인터넷 매체, 유튜버, 당 소속 영상팀, 국회 CCTV까지 사방에서 여의도를 기록한다. 국회의원들은 의원실에 조명까지 설치해놓고, 실시간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당 대표 전당대회 연설을 하던 후보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본인들의 스마트폰이다. 회의실 내 보좌관, 비서관들의 스마트폰에 밀려 자리조차 잡지 못 할 땐 서럽기까지 하다. 현장은 실종되어 가고, 국회 내 카메라는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회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SBS 미디어기술연구소에서는 AI 딥러닝 기반 영상을 축약(클립화)하는 편집을 시행한 바 있다. 중요한 장면을 판단해 편집하면 사람과 인공지능이 해당 편집 콘텐츠의 품질을 결정한다. 네이버에서도 스포츠 하이라이트 영상을 분석, 편집, 업로드까지 일련의 작업을 모두 AI에게 맡긴 적이 있다. 해당 영상은 득점 하이라이트 형태로 이용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경기후 3~4시간이 걸리던 작업을 인공지능은 5분 만에 해냈다. 나이키에서는 AI가 학습을 통해서 새로운 광고를 제작했다. 다큐멘터리·예능에서 360도 대상을 따라다니면서 무인 촬영하던 고가의 카메라 장비는 이제 저렴한 가격에 유튜버들이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19 1년 남짓 동안 원래 있던 기술들이 현실 속으로 더욱 강하게 파고들고 있다. 또, 대체재라고 생각했던 기술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주류의 세계로 손쉽게 진입했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하며,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얘긴 이제 너무 뻔하다. 이 기술들은 이미 대중화되어 가고,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상기자 직군이 기술을 향해서만 가서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수첩도 쓰고, 볼펜도 쓰고, 키보드도 쓴다고 해서 능력 있는 취재기자라고 하진 않는다.
‘사라진 직업의 역사(이승원저)’를 보면 한 직업은 없어져도 그 욕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형태는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지만, 욕망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은 전화 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 등 조선 근대 초기에 생성되었다가 현대에는 사라진 직업들의 흥망을 소개하고 있다. 인력거꾼은 자동차 엔진으로 대체되었다. 우리가 21세기 인력거꾼이라면 ‘이동’이라는 근본적인 욕망에 집중해야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 영상기자의 근본적인 욕망. 기자의 가장 큰 목적은 사실을 취재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영상이라는 도구에 집착하기보다는 좀 더 확장적으로 취재 역할에 들어갈 필요성이 있다. 영상취재부 자체에서 발제와 기획, 그리고 큐시트 편성의 권한을 갖는 노력이 필요하다.
취재 현장 역시 세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구획 별로 최소한의 출입처를 대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영상취재부의 정체는 여전히 직종이 영상 촬영에만 집착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영상기자의 발제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출입처를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현장은 그곳에서만 취재하는 인터넷뉴스 영상팀에 장악력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취재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은 (동행한) 취재기자뿐이다. 자연히 우리 업무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자신의 경험으로 모든 걸 판단해야 하는 비이성적 취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이런 형태의 직종은 언제든 대체되기 쉽다. 취재가 완벽하지 않은 기사나 영상을 방구석에서 출고하는 건 ‘우라까이’나 큰 차이가 없다. 깊이가 있어야 한다.
취재 환경은 급변했지만 국회 내 취재 방식, 풀단 운영 방식엔 변화가 없는 듯하다. 영상기자의 역할이 제일 많은 국회 출입처에서 이런 경험은 상당한 좌절을 가져왔다. 비단 국회만이 아니라 각 언론사, 우리 직종이 봉착한 문제이다. 10년뒤, 우리의 욕망이 이 사회 어디쯤 위치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하륭/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