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임무를 마치면서
2017년 1월 한국영상기자협회장 임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 2개월이 흘렀습니다. 돌이켜보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협회의 재정 상태가 적자이고 여건과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가 시작되어 어려움도 적잖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치 풍파가 몰아치는 한 가운데 놓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련이 이어졌지만, 도전과 인내로 회원들과 소통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회원들과 약속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협회는 지난 4년 2개월 동안 ‘혁신’의 이름으로 조직의 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특히 취임 초기 적자에서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협회의 명칭을 ‘한국영상기자협회’로 바꾸고 직종도 ‘영상기자’로 호칭을 바꿨습니다. 낡은 것을 모두 버리고 현재와 미래에 맞는 혁신을 했습니다. 이후 협회는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아울러 영상기자가 사회적 의무와 언론 보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시상제도도 바꿨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집착하느라 사회 안전에 소홀했다는 점이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협회도 이에 발맞춰 기존의 특종 중심으로 시상하던 것을 인권, 환경, 국제, 문화보도부문 등으로 확대하여 시상하게 했습니다.
또 취재현장에서 취재원 인격권 보호와 영상기자들의 생명과 안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취재원에 대한 인격권 침해로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에 소홀해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영상기자들의 생명과 안전, 권리보호도 외면받았습니다. 협회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3년간 불철주야(不撤晝夜)로 노력해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달의 영상기자상’과 ‘한국영상기자상’ 심사 기준에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적용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방송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영상기자 저널리즘의 수준을 한층 높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영상기자상은 명실상부하게 영상기자에게 주는 최고의 권위 있는 언론상이 됐다고 자부합니다.
협회가 일군 또 하나의 업적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賞)> 제정입니다. 독일 출신의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당시 언론통제로 인해 국내에서 보도될 수 없던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한국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공헌한 영상기자입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제정하기까지 4년 넘게 걸렸습니다. 인내와 도전으로 광주시와 광주시의회를 설득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독재정권과 싸워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전쟁에서 패해 미국의 힘으로 민주화를 일군 이웃 일본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세계 곳곳에서 독재정권과 싸우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화를 위해 취재하는 언론인을 선정할 것입니다. 이는 <5·18광주 민주항쟁>의 의미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역할도 할 것입니다.
협회는 또 영상물 창작자에 대한 저작인격권 보호도 노력해 왔습니다. 창작자가 만든 영상이 사실과 다르게 훼손되거나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면 영상물에 대한 질서에도 혼란이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국회에 창작자 보호를 위한 성명표시권을 발의했지만, 독일처럼 저작 인격권에 대한 보호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저는 4년 2개월 동안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앞으로 역사에 맡기겠습니다. 협회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나씩 결실을 이룰 때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에서 시작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저는 보람을 느끼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 협회 회원 여러분이 차기 회장과 함께 협회를 잘 이끌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그동안 회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원상 / 25대·26대한국영상기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