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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4년전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택시운전사>.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록하여 세계에 알린 독일인 영상기자 힌츠페터를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를 볼 당시에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기록하는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그의 이름을 딴 ‘힌츠페터 국제 보도상’이 우리의 손으로 세상에 나올 지 상상하지 못했다. 518재단과 함께 한 이번 시상식은 전세계 영상기자들을 위한 첫 국제보도상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 그 뜻에 동참한 협회 선후배들 및 외부 전문가분들과 3월 중순 첫 회의를 시작하면서 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영상기자들을 발굴하고 그 정신을 공유하자는 곧은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진행이 될 수록 무수한 한계가 쏟아져 내렸다. 전업 상근 조직위를 구성할 수 없었던 구조적 한계, 부족한 예산의 한계, 해외 네트워크의 부재, 부족한 인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처음 준비해 보는 영상보도 부문의 국제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레퍼런스가 전무했다. 그 많은 위기마다 조직위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의 취지에 호소하고, 그 선의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분쟁지역 취재를 오래해 온 김영미PD도 그렇게 합류하였고,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AP의 마샤 멘도자(Martha Mendaza) 기자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쟁지역 전문 기자이자 제작자인 쥴리아니 루흐프스(Juliani Ruhfus) 같은 저명한 분들도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기자들의 정신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라는 절실한 마음이 닿아서 우리 상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아무도 시상식의 존재를 모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직위원회 선후배들이 개인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돌아보면 결국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이 순간에도 사선을 넘나들며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기자들을 보듬고 그 가치를 공유하자는 연대와 순수한 정신에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준비과정은 어려웠지만 상을 준비하면서 각별한 순간들도 또한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가치가 세상 속에서 저평가된다고 늘 생각을 해왔는데 이런 상을 준비해줘서 감사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격려의 말과 동시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공감,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희생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고, 그 순간을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그 옆에 있다라는 사실은 점점 위축되어 가는 현장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여러 위기와 감정이 촘촘히 엮인 시간들을 지나서 마침내 대륙과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국내와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다양한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우리 손에 도착하였다. 이들 작품들은 서로 다른 맥락이지만 작품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 유학생의 아버지가 자신은 위험하지만 딸은 안전한 나라에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애틋한 사연 속에도, 우리의 평범한 모든 일상이 부럽다는 미얀마 유학생의 눈물 속에도, 험난한 길을 뚫고 필사적으로 이동하는 난민과 동행하며 그 힘든 과정을 체감시켜 주려는 영상기자의 치열한 노력 속에도, 총성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용기 속에도, 또한 낯선 벨라루스와 에스와티니처럼 우리에게 생경한 곳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도, 그리고 서방의 프레임 밖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던 팔레스타인의 나직한 목소리 속에도 지구 곳곳에서 카메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영상기자들의 열망과 치열함이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518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힌츠페터 기자는 죽어서도 광주에 묻히고 싶다라는 얘기를 종종 했었고, 그런 유지에 따라 그의 신체의 일부가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었다. 현장에서 치열한 삶과 참상을 기록해 본 경험이 있는 영상기자라면 개인을 압도하는 그 말로 하기 힘든 거대한 순간들의 강도와 의미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정신은 다시 이렇게 망월동을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싸우는 전세계 영상기자들과, 또 그 가치를 이해하는 분들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국내외 많은 현안들이 넘쳐나고, 또한 소셜미디어가 저널리즘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국제시상식의 맥락이 원경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상식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직업의 가치를 세계의 영상기자들과 나누고 서로 연대하고, 카메라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쓰이는 순간을 서로 공유하고 응원하는 것. 그 기록들은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 가졌던 모두의 초심에 가까울 것 같다. 그래서 심사 보다는 응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이 상에 영상기자들의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김 우 철 

전 MBC 영상기자

캐나다 Simon Fraser 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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