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cs, Enjoy the Moment!
‘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만큼 ‘전례 없는’ 올림픽. 그리고 영상기자로서 ‘첫’ 종합대회 출장. 평소 같으면 기대가 앞섰을 출장이지만 이번엔 출발 전부터 각종 악재와 우려로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방사능과 코로나에 대한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부터 올림픽 조직위가 승인한 ‘Activity Plan’에 따라 철저히 제한된 동선까지. ‘기껏 불러놓고 취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 ‘얼마나 잘 치르는지 한 번 보자’는 다소 삐딱한 시선을 카메라에 장착하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향했다.
‘원칙’만 있고 ‘효율’은 없는 운영
우선 악명 높았던 ‘입국절차.’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시간 30분이 걸렸다. “언론인들은 일본의 적(敵)이 아니다.”라는 국제스포츠기자협회(AIPS) 회장의 일갈이 내 입에도 맴돌았다. 현장에 배치된 일본의 자원봉사자들은 보안 검색대를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를 네다섯 번씩 연발할 만큼 친절했지만, 그것이 결코 취재를 수월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원칙주의’와 ‘꼼꼼함’은 종종 취재를 어렵게 만들었다. 20kg이 넘는 장비를 든 취재진에게 코앞에 있는 입구를 두고 굳이 건물을 빙 돌아 들어가라고 하는 건 애교. 자원봉사자들은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대여섯 명이 하기 일쑤였고 - 한 명만 거치면 될 일을 대여섯 명 거쳐야 가능했다 - 그나마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Mixed Zone에서의 선수 인터뷰 시간을 90초로 제한해놓고 시간을 넘기면 카메라 옆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 있는 선수 앞에서) 촬영을 중단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이도 있었다. “올림픽 취재는 원래 이런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혼자서 영상, 음향, 송출, 장비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챙겨야 했던 영상취재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효율성이야말로 적(敵)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더 어려웠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을, 함께 출장 온 영상기자 선배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장비와 짐을 최소화·간소화해 부담을 줄이는 것부터 취재 시간의 효율적 사용 및 이동 동선의 관리까지, 역시 ‘경험자’의 내공은 달랐다. BIO, ENG Zone, Mixed Zone등 ‘올림픽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을 두루 할 수 있었던 것, 자주 해보지 못했던 ‘스포츠 영상취재’의 촬영 기법 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올림픽 출장의 가장 큰 성과였다.
‘엄격’한 듯 ‘허술’했던 버블 방역
출국 전 두 번을 포함, 일본에 머물렀던 23일간 모두 12번의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매일 체온을 비롯한 몸 상태를 ‘OCHA’(온라인 체크인 건강관리 앱)를 통해 올림픽 조직위에 보고했고, 동선과 접촉자 파악을 위한 위치추적 앱도 설치했다. 입국 후 14일 간은 숙소, IBC, 경기장을 제외한 어떠한 곳의 출입도 불가했고 동선도 철저히 제한됐다. 숙소 로비에는 조직위에서 보낸 ‘감시원’이 상주했고, 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 및 음주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취재진에게 유독 엄격했던 방역수칙이었지만, 정작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일본 자국민에 대한 통제는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숙소가 위치했던 신주쿠의 유흥가는 밤만 되면 노 마스크인 채로 모여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본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미리 백신을 맞은 게 천만다행이면서도, ‘이 정도면 백신이 효과가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입국 14일 이후로는 격리가 풀려 자유로운 이동과 외출이 가능해졌지만 숙소 근처의 식당을 가는 것조차 불안했다. 개인적으로 첫 일본 방문이었지만, 식도락(食道樂)은 포기한 채 3주 내내 거의 모든 식사를 도시락과 컵라면, 즉석식품으로 해결했다.
‘성적’보다 ‘성장’이 중요해진 올림픽
그럼에도 불편하고 힘들기만 했던 올림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올림픽의 주인공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을 무엇에 비교하랴.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순간만은 언제나 설렘 가득이었다. 5년 동안 올림픽을 위해 피땀 흘려온 선수들의 열정으로 타오르는 눈빛은, 바닥난 체력에 숯이 되어 있던 나의 정신력에도 불을 지펴주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내 가슴을 유독 뜨겁게 해주었던 몇몇 선수들이 기억에 남는다. 출전을 위해 온몸의 수분을 다 빼낸 것도 모자라 삭발까지 감행한 강유정(유도, ‘선수’ 생략), 자신을 가로막는 벽은 물론 스스로의 한계까지 뛰어넘어버린 우상혁(육상), 귀화까지 해 가며 ‘한국의 아이들이 단 몇 명이라도 럭비를 알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실천했던 코퀴야드 안드레 진(럭비), 세계 최강자들과 겨루며 투혼을 발휘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한 뒤에도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진윤성(역도). 메달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나에게, 또 우리 국민에게 이미 챔피언이었고, 선수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한국 관객)들도 더 이상 메달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축제 그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한 뼘 더, 성장했다.
ARIGATO, Team Korea
‘유래 없이’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쿄올림픽은 3년 후 파리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고, 나의 첫 올림픽 출장도 무사히 끝났다. ‘무사함’에 그저 감사한 출장이었다. 폐막식에서 올림픽 스타디움 전광판에 펼쳐진 ‘ARIGATO’라는 감사 인사를 우리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다시 시작된 3년이라는 그들의 기다림이 희망으로 가득하길 응원한다.
그리고 끝내 ‘미생(未生)’이었던 이번 올림픽 또한 파리에서는 ‘완생(完生)’으로 치러질 수 있기를 바라며, さようなら、東京(사요나라, 도쿄).
김동세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