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를 다 보지는 않았다. 처음 본 영화는 2001년에 개봉한 ‘원더풀 라이프’이고 이후 ‘환상의 빛’(1995), ‘아무도 모른다’(2004), ‘하나’(2005)를 봤다. 그 사이 만든 그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 ‘공기인형’(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은 꼭 볼려고 마음먹었지만 놓치고 말았다. 놓쳐버린 영화 중 ‘걸어도 걸어도’는 이후 DVD를 사놓고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숭배하듯, 이동진이 홍상수를 짝사랑하듯, 정성일이 임권택을 신전에 모셔두듯 그렇게 내 마음속을 깊이 지배하지 않더라도, 이 감독은 필자가 언제나 그의 영화가 나올까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는 그런 작가이다.
그의 첫 장편영화인 ‘환상의 빛’은 죽음이 남겨놓은 상처를 치유하는 여성을 따라 걸어가고, 한국에 처음 소개된 영화인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 이후 이승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 말하는 영화이다. 칸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어린 배우에게 선사한 ‘아무도 모른다’는 무심한 어른과 차가운 현실을 마주한 어린이가 지나가야만 하는 이별의 짧은 순간을 보여주며 사회와 어른들이 만든 소년의 생채기를 드러낸다. 시대극 ‘하나’는 일본 막부 봉건시대의 고루한 이데올로기인 ‘복수’에 대한 반성을 소재로 그것을 극복하는 ‘삶의 편린’들을 통해 화해의 진실한 얼굴을 관객들이 맞이하도록 초대한다.
감독은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큰 이야기로 시작해 현재는 생활의 최소 단위인 가족과 개인으로 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죽음과 사후 세계라는 거대한 소재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현대의 개인의 생존을 이야기 한다. ‘공기인형’에서 도시의 ‘개인’을 치유하는 조건을 언급하고, ‘걸어도 걸어도’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현대 사회에서 해체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가족’의 존재 이유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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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개인과 가족에 대한 감독의 문제의식에 자신의 딸과의 관계에서 생긴 고민을 투영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되면서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스타뉴스, 『고레에다 감독 “가족의 양면성 그리고 싶어”(인터뷰)』, 2013년 10월 10일)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오랫동안 집에 못가고 한 달 만에 들어갔더니 아이의 기억이 리셋되어서 다음 날 아침에 현관에서 ‘또 와주세요’하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충격이었죠.”
“그런 경험을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을 잇는 것은 핏줄인지 함께 보낸 시간인지 생각했죠. 그것이 출발점이었어요.”
감독이 생각한 가족의 구성요소인 ‘핏줄’에 대한 고민은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경험으로 극적인 치환이 된다. 성공한 건축회사의 전문직 회사원인 료타는 6년 동안 기른 ‘케이타’라는 아들이 ‘류세이’라는 소년과 병원 신생아실에서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이 구축한 이상적인 가족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며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이 노력 속에서 료타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인 엄격함과 완고함은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인 ‘관조’와 맞물려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영화 속 인물들의 태도와 그들의 건조하거나 수다스럽거나 짧거나 긴 대사와 정 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가족이 그려내는 미묘한 불협화음은 이 작품을 대하는 관객에게 감정적인 동화를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은 한 남자가 공고하게 쌓아올려 그 틀에 맞춰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조금씩 해체되는 과정을 따라다니면서 가정을 유지시키는 심리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조건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경험에 이르게 된다.
료타는 케이타의 거짓말 인터뷰에 만족하고, 아이가 실력이 향상되지 않지만 끈기있게 피아노 앞에 앉으려고 노력을 기특하게 여기고, 가정과 회사 모두에서 완전한 모습을 유지시키기 위해 재혼한 아버지를 부인하고자 하는 노력이 자유분방한 친아들과 그를 기른 다른 부모의 모습에서 흔들리고, 자신이 버린 케이타가 수줍게 보내왔던 친밀감의 신호를 뒤늦게 알아챈 이후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에서 가족을 완성시키는 기본 조건을 알게 된다.
하지만, 감독은 끝까지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힘겹게 화해한 료타와 케이타가 원래 류세이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물러나 마을을 비추며 암전된다. 해피엔드를 말하지 않으며 이후 과정에 대한 관객 각자의 상상으로 결말을 양보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필자가 감독에 대한 호기심을 나타냈는데,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결심한 데는 주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몫도 반쯤 있다. 일본드라마 ‘갈릴레오’ 시리즈나 ‘용의자 X의 헌신’,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과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