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VIEW] ‘공공기록’으로서 보도영상의 가치, 영상기자가 끌어올려야 할 때
최근 방송·영상 산업 분야 안팎에서 ‘아카이브(우리말로는 ’기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요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자사 영상자료를 비교적 높은 비중으로 편집하여 이른바 ‘회상 콘텐츠’를 제작한다. 또한,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 ‘옛날 콘텐츠’ 또는 ‘클래식 콘텐츠’라 불리는 과거에 촬영된 방송·영상물을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클립 형태로 편집하여 업로드하는 현상은 이미 ‘트렌드’가 된 듯하다. 방송·영상 산업 분야에서 언제부터 이러한 제작 형태가 자리 잡았는지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2018년 KBS 스포츠국에서 88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방영한 <88/18> 이후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영상자료’, 다른 말로는 ‘아카이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점차 커졌다. 학술연구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은 뉴스 영상으로 보도되었던 크고 작은 사건사고부터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뉴스로 기록된 우리의 과거 모습을 ‘다시보기’하고자 방송사 유튜브 채널이나 국가기록원 등의 공공기록관을 찾는다. 일반적으로 현대사 영상자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로 <대한뉴스>와 같은 공공 부문에서 제작한 뉴스영화를 참고하지만, 최근 학술연구·전시·출판·교육 등에서 현대사 영상자료가 필요한 사업에서 공영방송의 뉴스는 물론 지역 민영방송에서 제공한 뉴스 또한 중요한 ‘공공기록’으로 활용된다.
‘공공기록’, 해당 기록이 사회구성원 공동의 기억을 구성하는지에 따라 정의
그렇다면 ‘공공기록’의 개념은 뭘까? 먼저 국내 『공공기록물법』에서 규정하는 ‘기록물’은 ‘공공기관이 생산 또는 소장한 기록’으로 정의(제2조)되며, 동법 제46조에 따라 방송·영상콘텐츠는 영화와 함께 국가적 차원의 보존이 필요한 ‘민간기록물’에 속하는 개념이다. 국내에서 법적 개념에 따르면 ‘공공기록’은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 등이 행정업무를 위해 생산하거나 접수한 기록물 정도에 속하는 개념으로 매우 제한적인 개념이다. 1990년대 이후 네덜란드 기록학자 케틀라르(Eric Ketelaar), 캐나다 기록학자 쿡(Terry Cook) 등 기록학 분야에서는 ‘공공기록’을 이처럼 기록의 생산주체 또는 소장주체의 성격에 따라 규정하지 않고, 해당 기록이 생산·공유된 사회의 ‘공동체성’에 따라 ‘공공기록’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져 왔다. 특히 콕스(Richard Cox)는 ‘대중문화는 사람들이 사회적 권위, 제도와 상호작용하는 일상생활에서 발전시킨 다양한 전망의 집합(오항녕 역, pp.365-366)’으로 정의하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대중문화의 공공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공공기록’의 개념은 해당 기록의 생산 또는 소장 주체에 의해서가 아닌 해당 기록이 사회구성원 공동의 기억을 구성하는지에 따라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의 뒤집힌 선박 영상이나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의 영상 등은 생산주체가 ‘공공’이든 ‘민간’이든 해당 시기 이후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시민들의 공동의 기억을 재구성할 매개체로서 ‘공공기록’의 가치를 지닌다.
보도영상, 동시대 뉴스 시청자가 해당 사건사고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시각내포
2010년대 이후 유튜버 또는 크리에이터 등을 비롯하여 영상 생산자의 범위가 매우 넓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뉴스를 만드는 영상기자의 보도영상은 ‘공공기록’으로서 시민들에게 오래 기억될, 그리고 오래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영상기자 대부분이 이미 현장에서 취재 원칙으로 숙지하고 있는 보도영상의 ‘사실성·객관성·의미의 정확성·시각의 함축성(양용철, 2010)’ 외에도 보도영상은 동시대 뉴스 시청자가 해당 사건사고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시각을 담고 있다. 영상기자가 현장에서 취재하여 리포트 등으로 전달되는 보도영상은 이처럼 촬영 단계부터 시청자에 사건사고 진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영상기자의 ‘의도’가 영상으로 표현된 기록으로서 기록 생산 시점부터 ‘공공기록’으로서의 요건을 지닌다.
하지만 디지털 뉴스제작시스템에서 영상기자의 보도영상이 영상취재 그 행위로 ‘공공기록’의 요건을 갖추기는 어렵다. 현장에서 취재한 영상기자가 어떤 취재원과 만났고, 어떤 장소에서 촬영하였으며, 취재한 맥락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정리하여 이를 ‘메타데이터’로 기술(Description)하고 기술된 정보가 사실관계를 반영하는지 끊임없는 검수 과정을 거쳐야 ‘공공기록’의 가치를 갖는 보도영상으로 보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지상파 방송사와 보도전문채널 등 주요 방송사들이 HD제작시스템 구축을 전후하여 ‘디지털자산관리시스템(Digital Asset Management, MAM)’, 즉 ‘맴’을 구축하여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영상취재 후 인제스트, 취재원본 관리 및 사후 재활용 체계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지만, 이와 같은 정확한 메타데이터 기술과 검수 체계를 갖춘 방송사는 매우 드물다.
지난 5월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과 공동개최한 <5.18당시 보도영상자료의 체계화와 영상기자 활동 규명의 위한 세미나>에서 국내 방송사에 보관된 5.18 영상의 메타데이터 기술 상황에 대한 현황을 분석했다. 해당 세미나의 한 발제에서 국내 방송사에서는 외신영상은 물론 자사 취재영상까지도 취재자, 취재일자, 취재장소, 취재상황 등 중요한 정보가 누락된 채 보관해온 점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과연 ‘1980년’이라는 아주 오래된 시점의 보도영상이기에 누적된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방송사‘디지털자산관리시스템(Digital Asset Management, MAM)’, 자산개념 넘어 사회적 ‘공공기록’이라는 고민으로 확대되어야
필자는 지난해 한 방송사 보도영상국의 ‘맴 시스템 활용’ 컨설팅을 수행했다. 해당 방송사 보도영상국의 인제스트 요원들이 영상을 인제스트하여 이후 편집에 활용된 영상이 정리되어 보관되는 과정을 일정 기간 모니터링 하였다. 인제스트하는 단계에서 어떤 정보가 입력되는지, 인제스트된 영상의 메타데이터가 어떻게 기술되는지 살펴보고, 보도영상 관리와 관련된 주요 직군인 인제스트 요원, 영상편집자, 아카이브매니저를 인터뷰했다. 그 결과 보도영상 관리에 있어 핵심적인 정보인 생산일자, 취재진 이름, 영상 유형(인터뷰, 스케치, 녹취 등) 등의 표기가 누락된 클립이 축적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취재영상을 인제스트 하는 단계에서 취재 주요 인력인 영상기자와 취재기자는 메타데이터 관리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즉, 영상 인제스트를 담당하는 인제스트 요원들과 영상취재 현장에서 영상기자를 보조한 오디오맨의 빠른 업무처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메타데이터 입력 규칙이 ‘맴’ 주요 이용자, 즉 보도영상국 구성원과 공유되어 있지 않아 인제스트 요원과 영상편집자의 입력 방식이 서로 다른 점도 확인했다.
이러한 현상은 해당 방송사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방송사에 따라 보도영상 메타데이터 관리에 효율적인 체계를 갖춘 경우도 있지만(YTN 메타데이터 매니저, MBC 영상데이터팀 등), 이러한 체계 또한 해당 방송사에서는 현장에서 영상취재에 참여한 영상기자의 메타데이터 입력 역할이 뒷받침되었을 때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사마다 보도영상 관리체계의 편차는 있는 편이지만, 특히 취재원본영상, 즉 ‘소재자료’를 관리하는 체계가 가장 취약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영상기자들이 2022년에 취재하여 뉴스로 보도된 보도영상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또는 20년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 사후 재활용(Reuse) 단계에서 취재된 당시의 사실관계 그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려면 취재 현장에서 ENG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는 영상기자가 취재 이후의 보도영상 정보관리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각 사의 보도영상이 ‘공공기록’의 가치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영상기자 개인의 의지나 업무스타일에 의존하면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각 사의 보도영상 메타데이터 항목은 물론 항목별 주요 정보(취재담당자, 취재장소, 취재원, 인터뷰 내용, 취재 맥락 등)가 메타데이터에 정확히 반영되어 기술되고 있는지 기술현황을 재점검해야 한다. 또한, 한국영상기자협회와 회원사가 함께 보도영상이 갖추어야 할 ‘공공기록’ 요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를 반영한 가이드라인 또한 마련해야 한다. 각 사가 구축한 ‘맴’은 해당 방송사의 뉴스프로그램을 좀더 빠르고 편리하게 만드는 업무관리시스템이기도 하지만, 향후 우리 사회의 ‘공공기록’을 제공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취재에 임하는 영상기자들이 좀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담은 보도영상을 우리 사회의 ‘공공기록’으로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 고〉
리차드 콕스. 도큐멘테이션 전략과 사초 평가 원칙 (Cox, Richard (1994). The Documentation Strategy and Archival Appraisal Principles: A Different Perspective”. Archivaria, 38).
오항녕 역 (2005). <기 록학의 평가론: 사초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서울:진리탐구출판사.
양용철 (2010). <보도영상 현장매뉴얼>. 서울: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최효진 (2021). <‘공공영상문화유산’아카이브 구축방안 연구:방송·영상 컬렉션 수집 및 활용방향>. 한국외대 일반대학원 정보·기록학과 박사학위논문.
최효진 (2013.12.5.). 메타데이터의 질이 보도영상의 가치를 결정할 것 -메타매니저 YTN보도국 아카이브팀 유영식 인터뷰. 한국영상기자협회 미디어아이 제93호(2013년 12월호).
http://tvnews.or.kr/board_CyEd37/28396
최효진 / 한국외대 정보·기록학연구소 연구원, 새공공영상문화유산정책포럼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