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광주민주포럼 발표문 요약2]
영상을 통한 공감과 연결, 더 나은 미래의 모색
브루노 페데리코 (Bruno Federico,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자)
권력과 자본이 저지른 폭력과 범죄의 고발을 위해 시작한 영상기자로서의 삶
저는 영상저널리즘 영역에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가끔은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경력을 쌓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겠지만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형성한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지식의 상업화와 노동자의 권리 파괴에 반대하는 학생단체와 함께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후 전쟁 중인 콜롬비아에서 저는 인권활동가, 노동조합, 농민단체와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언론인으로서 가끔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찾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좋은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전달할지 물어왔습니다. 2008년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이 지역과 주민을 압박하는 거대 석유 회사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와 농민을 지원하는 노동조합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외딴 지역에서 노동쟁의를 다루는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살인, 실종, 준군사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범죄의 배후에 우리가 노조로서 상대하고 있던 석유회사의 지원을 받는 준군사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범죄와 폭력을 콜롬비아 안팎에 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저는 미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서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사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그 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4개 언어로 번역했고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다른 투쟁이 제 관심을 끌었고 더 많은 뉴스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 끝없는 탐욕을 가진 소수가 저지르는 폭력에 고통 받고 저항하는 다양한 인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언론이 어두운 방의 위태로운 성냥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더 커질 것
그 속에서 제게 계속되는 질문은: 언론이 사회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인권침해, 불평등, 환경파괴에 맞서 펜, 카메라, 녹음기로 싸울 수 있을까요?
언론이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부패와 부정행위를 폭로한 중요한 사례가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의 취재로 미국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워터게이트 스캔들(Watergate scandal)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진압을 위르겐 힌츠페터(Juergen Hinzpeter)가 촬영한 영상이 미친 영향도 있습니다.
2018년, 프로 퍼블리카(Pro Publica)는 부모와 헤어진 후 이민자 보호시설에 갇힌 아이들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울부짖는 음성 녹음을 공개했습니다. 이 절규는 미국 대중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트럼프 행정부가 가족 분리 정책을 중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언론이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수천 가지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언론의 전반적 노력을 얼마나 대표할 수 있을까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미미한지 매우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날로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전쟁, 이주, 불평등에 대해 보도하고 이미 폭력적인 이미지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인간의 비극을 담은 사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언론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작고 위태로운 성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핵심적인 무언가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교육, 공감
어릴 때 우리는 학교에 갑니다. 거기에서 수학, 문학, 역사, 생물학 등을 배웁니다. 이러한 지식은 평생 세상을 이해하는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이며 범위와 시간 면에서 제한적입니다. 때때로 그 내용은 건국, 현재 또는 과거의 분쟁, 종교에 대한 국가의 서술에 왜곡됩니다. 학교를 떠난 후에도 우리의 교육은 계속됩니다. 우리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디서 알게 되었나요? 기후 변화는 어디서 배웠나요?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요?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주민에 대한 반발에 대해서는요? 뉴스, 다큐멘터리, 라디오로부터입니다.
매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알려주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처리하고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퍼즐을 맞추면서 스스로 학습합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사건에 대해 알게 됩니다. 또한 뉴스를 접하는 매체가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해당 사건의 맥락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매체의 첫 번째 기능입니다.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여러 판본을 나란히 놓고 가짜 뉴스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해석을 반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정보 출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체와 소셜 네트워크 간의 역할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에티켓, 관점, 편집자 및 사실검증을 신뢰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문이 더 신뢰할 만한 정보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바로 볼 수 있거나 뉴스를 게시하는 사람이 공식 언론에 접근할 수 없을 때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따금씩 우리는 그곳에서 최고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뉴스 게시자는 공식 매체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거나 매체가 해당 사건에 관심이 없거나 그 이야기가 소유주나 정부의 영향을 받는 매체의 서사에 맞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내용을 해석하고 출처를 확인하는 역량도 중요합니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하지만, 정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를 해석하고 다양한 요소를 이해할 역량을 제공하는 지식 체계입니다.
다리엔 갭(Darien Gap)에서 이주민들의 험난한 여정을 담은 “연결은 인간적인 상호작용의 순간을 의미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적인 부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언론사를 통해 우리는 A에서 B로 향하려는 특정수의 사람들, 이주민 혹은 망명 신청자에 대한 정보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A에서 B로 가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B에서 A로 가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매체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얻은 정보와 학교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이 합쳐져 인류의 발전에 이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어느 시점에 이동을 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가족의 역사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또한 이전의 다른 정보와도 일치합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폭력, 빈곤, 기후 관련 재난을 피해 떠나 온 사람들인가요?
우리 국가들 – 저는 여기서 특히 미국과 유럽을 말하고자 합니다 -은 사람들이 탈출하는 상황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요?
왜 이 사람들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A에서 B로 이동하지 않았을까요? 합법적인 경로를 이용할 수 있었을까요? 실제로 그들에게 그것이 선택지였을까요?
그리고 이주민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결국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연민은 현재 각국이 이주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인종차별적이고 착취적이며 냉소적인 정책에서 탈피하도록 우리의 행동을 이끌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주민의 투쟁을 알리고 교육하고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 2019년 동료인 나자 드로스트(Nadja Drost), 카를로스 비야론(Carlos Villalon).과 함께 다리엔 갭(역자 주: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열대우림 늪지대)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미국PBS-TV 뉴스아워(News Hour)에 방송된 ‘험난한 여정(Desperate Journey)’ 보도로 2021년,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을 수상했고,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럽과 미국이 국경을 닫으면서 폭력과 전쟁, 견딜 수 없는 빈곤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이자 가장 긴 이주 경로 중 하나인 남미를 경유하는 육로를 택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파나마의 폐쇄된 국경을 넘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 중 하나인 다리엔 갭(Darien Gap)이라고 불리는 울창한 산악 정글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미국의 PBS 뉴스아워에서 <필사적인 여정> 시리즈를 취재하는 동안 카메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이티 등 전 세계에서 온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들이 다리엔 갭을 건너는 과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밀수업자에게 버림받은 사람들, 남성, 임산부, 아이들은 위험한 지형과 가슴 높이의 강을 혼자서 헤쳐가야 합니다. 길을 잃거나 식량이 떨어지거나 무장한 강도에게 돈과 텐트, 옷가지 등을 강탈 당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폭력을 경험합니다. 강변에 널려 있는 뼈와 시신에서 알 수 있듯이 익사하거나 부상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위험과 장벽은 엄청났지만 그에 맞서는 용기, 끈기, 인간애 또한 대단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약 3만 명의 이주민이 이 정글을 건너왔습니다. 작년에는 이 숫자가 25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보도를 통해 이주민의 힘겨운 여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들이 떠나온 상황, 미국에 도착하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각국 정부가 이주민에 대해 제한적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 구실이지만 한 카메룬 망명 신청자는 “안전을 위해 도망칠 때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죠. 그저 안전한 곳을 원할 뿐입니다.”
전쟁의 폭력에서 탈출한 망명 신청자들은 여정을 계획할 방도가 없습니다. 누군가 집 앞에서 총을 쏘는 상황에서는 대사관에서 약속을 잡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릴 수가 없으며 나중에 망명 신청을 뒷받침할 서류를 수집할 기회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주의 이유가 굶주림일 때 비자를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굶주림은 사람을 총알보다도 더 자주 죽이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합니다.
이주민들은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 삶을 뒤로 한 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나란히 걸으면서 취재의 주인공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이는 언론인과 피사체 사이의 빠른 상호작용 이상의 것을 보게 했습니다.
연결은 텔레비전 저널리즘이 흔히 의미하는 정보 수집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적인 상호작용의 순간을 의미하는 언론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 뒤에는 책임의 문제도 있습니다. 왜 이 사람들, 아동, 여성, 남성은 정글을 건너고 있을까요? 이것이 그들에게 더 나은 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멕시코 북부의 사막처럼 다리엔 갭을 건너는 것은 유럽의 정책으로 지중해의 목숨을 건 횡단이 강요된 것처럼 미국이 부과한 경로입니다.
이러한 경로는 항상 국경을 폐쇄하고 북쪽 국가의 결정에 따라야 했던 남쪽 국가에 이주 통제를 외부화한 산물입니다. 이들 국가는 더 빠르고 안전하고 쉬운 경로를 폐쇄함으로써 이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여정을 떠나도록 강요하는 동시에 밀입국 범죄 조직의 사업을 조장합니다.
우리의 영상보도, 다큐멘터리, 뉴스기사로 각국 정부가 이주민의 미국 혹은 유럽행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글의 길에서, 사막 또는 지중해 해변에서 이주민의 시신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의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이주민 개개인의 이야기에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경에서의 범죄를 지속적으로 폭로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도록 만드는 폭력과 굶주림에 대해 교육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공감을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