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커뮤니케이션과 TV뉴스 영상
얼마 전 신문을 뒤적이다가, 사람을 만나 첫인상이 어떻다는 결정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0.1초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읽으면서 한편으로 그럴 법하다고도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론 글쎄. 정말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 연구팀이 실험자 200명을 대상으로 여러 장의 얼굴 사진을 보여 준 뒤 매력, 호감도, 신뢰도, 능력, 공격성 등을 평가해보라고 한 결과 놀랍게도 0.1초 뒤의 판단과 0.5초, 1초 뒤에 내린 결론에 별 차이가 없었다! .”라는 것이다.
0.1초든 1초든 순간에 불과하므로 수치에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싶지만 첫 대면에서야 0.1초보다 그의 10배인 1초가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0.1초 만에 내린 결정을 고수하고, 찰나에 느낀 인상이 단지 매력뿐 아니라 신뢰도와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외모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분류된 정보는 웬만해서는 달라지지 않는데,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 만남에서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라는 정의를 내려, 왜 그토록 부모들이 자식에게 단정한 옷차림과 깔끔한 매무새를 입에 달고 사는지 이유를 알 듯하다.
의사결정구조를 단순화시켜 재빨리 필요한 첫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관찰기간 내내 지렛대로 삼는 인간의 행동양식은 실생활에서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일일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분류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정보 처리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판단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우리는 첫인상에 일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가 하면, 직감적으로 물러설 때를 알아 크나큰 사고를 예방하기도 한다. 바로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인 예다.
언뜻 생각하면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의 사고체계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즉흥적인 것으로 비치지만 사고의 기저에는 스키마(scheme: 이전에 학습하고 훈련했던 경험을 통해 사물을 어떻게 경험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마음의 모델)가 작용하고 있어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봤는데.”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그래? 나는 그렇게 안보이던데?”라는 반응을 낳기도 한다.
성장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환경 자체가 다르니 개인별 지각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어 특정 사물과 현상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기도 하나, 일반적인 문화나 관습, 사회현상 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속성이 있는 스키마는 비언어적인 수단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일반적으로 언어 메시지와 비언어 메시지가 서로 충돌할 때,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비언어적 메시지라고 한다. 언어 속에 감춰진 송신자(sender)의 무의식 세계까지 엿볼 수 있으니 정보의 신뢰도가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한 일선의 수많은 취재현장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떨림에서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취재원을 만났을 때 우리는 경험상 어느 정보를 더 신뢰해왔을까?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시키는 내공의 소유자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메시지 전달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며 이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살아가며 때로는 이것에 더 의지하게 된다.
기쁨이나 슬픔, 분노 등 감정이 도를 넘어서게 되면 말보다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몸짓으로 담아내는 이런 감정의 표현은 언어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정도의 감정 상태인지 알아채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터뷰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몸으로 감정을 삭이는 침묵의 시간에 우리의 한 손은 벌써 줌 인(zoom in)에 들어가고 있지 않았나?
감정의 몰입을 유도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결국 말 없는 순간에도 쉴 사이 없이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잡아내기 위함이며 전달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감각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취재 현장에서 내츄럴 사운드(natural sound)를 놓치지 말라고 하는 이유 역시 자연음향에 담긴 비언어적 요소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며 편집 시 언어적 요소와 적절한 조합을 통해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은 점차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 이면에는 물론 보편성, 전달속도, 전달정보의 양에서 우수하다는 비언어 매체의 효율성이 자리하고 있다.
영상을 보고 이해하는 데는 언어와 같이 약속된 기호체계를 배울 필요가 없어, 국경을 초월한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메시지를 전달받고 이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 대해 같은 내용을 담은 1분 내외의 영상과 몇 십 매의 원고를 각 각의 사람에게 주고 얼마만 한 정보를 얼마나 빠른 시간에 취할 수 있는지를 비교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은 정보의 정확성을 함축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현장 그림은 없고 앵커의 긴장된 모습과 취재기자의 긴박한 오디오만 전해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럴 것이라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궁금증만을 더할 뿐이다.
재난보도 등 현장성이 강한 주제의 경우 TV뉴스에서는 톱(top) 아이템으로 헬기 스케치를 주로 배치한다. 이것은 조망을 할 수 있다는 부감의 장점과 함께 전체적인 상황파악을 위한 대량의 정보제공에 목적이 있으며, 여기에 미디어 기술의 발달에 기초한 TV뉴스의 즉시성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이다.
톱 아이템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 시청자는 세부 아이템으로 단락화 된 뉴스를 통해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며 신문 등을 통해 정보를 보완하게 되는 것이 재난보도를 통한 일반적인 메시지 습득과정이라고 하겠다.
한편 누구나 이해하기 쉬우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상의 속성은, 언어의 간접적이고 조작적인 속성과 달리 특정 상황에 대해 사람의 사고(思考)를 가두는 특징이 있다. 재연(再演)화면이라는 자막을 올렸다 하더라도 ‘그래. 이건 재연 화면일 뿐이지’라는 인식을 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가까운 그래서 실제의 상황과 다름없는 것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시청자가 재연 화면을 실제 상황과 다름없이 인식한다는 사실은 일반 교양프로그램이나 오락프로그램과 달리 TV뉴스를 제작하는 카메라기자들이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현장이 사라진 아이템을 어떡하든 만들어 보겠다고 재연을 시도하고, 회사로 돌아와서는 그럴듯하게 만들었다는 칭찬에 우쭐했던 적이 있다.
아이템 제작에만 온 신경을 쏟던 잔바리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 속에 당시 총 맞고 나온 동료 취재기자의 근심스런 표정도 함께 떠오르니 문제의식도 없었고 모질지도 못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서의 영상은 촬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줄거리를 가질 수는 있으나 상황에 담긴 그림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렇게 찍으나 저렇게 찍어도 그 상황 안에서 관점만을 달리할 뿐이다.
반면 언어는 동일한 상황을 단순 묘사한 글이라고 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양한 표현과 언어를 구사하므로 십인십색(十人十色)의 글이 나오고, 이를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해석자(수신자)는 동일한 상황에 대해 제각기 해석을 달리한다.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온 종일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만들어 낸 리포트 한 꼭지.
앵커 멘트를 포함한 1분 30초의 리포트 한 꼭지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기사의 내용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TV뉴스의 비언어적 요소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부장 김영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