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동휠체어 끌고 2시간 이동… 고생한 시간만큼 책임감 커진 작품"
편견을 깨부수는 영상으로 소수자들의 현실,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김기태 (KBS부산 영상기자, 제37회 한국영상기자상 대상 수상자)
적은 수의 사람, 국어사전은 그들을 ‘소수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는 수의 열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와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사람들, 그들이 ‘소수자’다. 올해 한국영상기자상 심사위원들은 ‘표준’ 또는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선과 제도가 밀어내는 사람들을 카메라 ‘안에’ 담은 작품에 주목했다. 부산KBS 김기태 기자의 연속기획 <목소리>가 그것이다. 올해 영상기자상 대상을 수상한 김 기자를 지난 13일 전화 인터뷰했다.
Q. 지난해에는 대상 수상작이 없었는데, 이렇게 대상을 수상하시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 수상 소감을 말씀해 달라.
A. “소수자의 목소리를 다룬 아이템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수자에 대해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획을 만들 때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소수자의 수 자체가 수도권보다 절대적으로 적어 조직도 작을 수박에 없고, 그러다 보니 기자들이 이슈를 다룰 기회도 적었다. 또, 이번 작품이 뉴스로 나갔는데, 뉴스에서 소수자 관련 기획을 내보낸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수상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언론에 대한 기대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제작팀의 책임감을 높게 사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Q. 연속기획 <목소리>는 성소수자, 비혼 공동체, 학교 밖 청소년, 타투이스트,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목소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이이슬 취재기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 공모에 당선되면서 합류하게 되었다. 소수자에 대한 기획을 만들 거고, 5~6분 정도 되는 미니 다큐를 만들자는 정도의 개괄적 상황만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맡은 영상 부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다.
2023년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가 논란이 커서 우선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고, 비혼 공동체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이성 비혼 공동체도 있어 성소수자와는 분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밖 청소년은 취재기자가 평소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분야고,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직업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타투이스트들과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인의 목소리도 담아내고 싶었다.”
Q. 데일리 뉴스 제작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나.
A. “인력이 부족한 지역의 여건상 어떤 기획이 나왔을 때 전념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 있다. 나는 우선 기획에 집중하고, 촬영이나 편집이 없는 날 데일리 뉴스를 할 수 있도록 데스크가 최대한 시간을 배려해 줬다. 그러다 보니 데일리 뉴스를 촬영하는 팀에서 평소보다 편집 물량을 더 많이 제작해 줬다. 구성원들이 많이 희생하고 도와주어서 기획에 전념할 수 있었다.
Q. 심사 과정에서 심시위원들은 <목소리>에 대해 “너무 무겁지도 않게, 하지만 감각적이고 따뜻한 영상과 편집으로 감동과 재미를 함께 주었다”고 평가했다. 주제가 무거운데, 어떤 방향으로 촬영하려고 했나.
A. “제일 큰 기준은 소수자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깰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었다. 5부작을 만들면서 20여 명을 인터뷰했는데, 직접 만나 보니 생각보다 훨씬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거기서 든 생각이 나처럼 평소 소수자 이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차별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사람조차도 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모습에 놀라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소수자라면 주류에서 벗어나 있어 뭔가 내면의 우울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런 편견을 깨부술 수 있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야 현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데일리 뉴스와는 다르게 작은 카메라를 여러 대 쓰고, 랙타임을 길게 가져가면서 말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고 했다.
두 번째로는 밝은 에너지 속에서도 가슴 속 답답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걸 보여주려면 익숙한 리드룸보다 리드룸을 적게 가져가는 것을 통해 사회를 향한 답답함에 대한 감정을 좀 더 보여주려고 했다. 각도를 비틀거나 로 앵글로 바라보거나 인터뷰 대상자 앞에 무언가를 걸쳐 소수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컷 하나하나, 고민
Q. <목소리>를 하면서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주제 자체가 추상적이고 제도적 차원까지 끌고 가려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있어 근본적 어려움이 많았다. 비혼 공동체의 경우엔 섭외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소수자 이슈를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화면에 얼굴을 노출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비혼 공동체는 더 심해서 비혼 공동체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일상을 담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더 빈약해짐을 느꼈고, 이미지컷 하나를 찍는데도 많은 고민을 하고 공을 들였다. 취재원 집의 냉장고에 가족사진이 붙어있었는데, 그런 모습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과 비혼 공동체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Q. 제작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
A. “장애인 이동권 편을 촬영할 때 변재원 작가가 “이동권은 모든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지하철역에 놓인 휠체어를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꼭 담고 싶었다. 모두가 누리는 권리를 장애인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를 차량에 실을 수 없어 전철역까지 가져오는 게 난관이었다. 결국 휠체어를 끌고 인터뷰 대상자 집에서 촬영 장소인 서면역까지 장애인들이 이동하는 루트대로 이동하는 상황이 됐다. 완전히 평탄한 길만 찾아야 하고, 돌부리가 있으면 안 되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안 되고, 가다가 길이 잘못돼서 돌아가고, 가다보니 길이 없고, 어떤 길은 위험하고, 미세한 턱도 넘을 수 없고…평소 같으면 30분이면 갈 거리가 2시간가량 걸렸다. 휠체어를 가져오면서 동행 취재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분들의 이동권에 대해 직접 겪으면서 그 시간 만큼 책임감을 더 많이 가지게 된 작품이다.”
돌봄노동자의 실태를 담은 다큐 고민 중
Q. 5부작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은 없었나.
A. “개인적으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방송된 분량은 5분 내외로 적었지만, 취재량은 결코 적지 않았다. 촬영에 세 달, 편집 한 달 등 제작 기간이 네 달 정도 걸렸다.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는데, 워낙 많은 얘기를 해주셨고 그분들이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담아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긴 호흡으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까지 다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짧지만 우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을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하다.”
Q.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A.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가 돌봄 노동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요양 병원의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가 드러났는데, 아직도 돌봄 노동을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돌아본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 같다. 의료계가 폐쇄적이어서 취재에 어려움이 많긴 하겠지만, 좋은 다큐들을 보면서 차근차근 공부하고 취재해서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영상기자가 기획 단계부터 모든 제작 과정을 혼자 다 하는 것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생각한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동료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조직의 양해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내가 관심 있는 주제라면 영상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영상기자다. 아직은 그런 경험이 없지만, 역량을 쌓기 위해 노력하겠다.”
안경숙 (cat1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