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순회특파원을 다녀와서

by 나준영 posted Apr 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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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순회특파원을 다녀와서>

지난 6개월이 나에게 준 것들

 지난 해 9월 MBC순회특파원제도의 첫 바통이 나에게 건네졌다. 타사의 아이템 중심의 순회특파원제도와 달리 해외의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 곳에 거점을 두고 주변국가들을 취재하는 우리 회사의 순회특파원제도는 나의 첫 발걸음부터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첫 번째 결과물들이 이 제도의 유지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시할 거라.’는 생각. 그것 때문에 작년 9월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의 좌석은 너무나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부담과 우리 부문구성원들의 많은 관심 덕분에 좀 더 진지하게 6개월을 생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큰 과오 없이, 후텁지근한 열대의 뜨거운 하늘을 뒤로하고,  봄기운의 상쾌함을 느끼며 다시 서울의 취재현장에서 가벼운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서울을 떠나며 함께 가는 취재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동남아뉴스는 지금까지 TV에서 보아왔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는 가난하고 낯선 나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우리와 많은 관련이 있는 동남아 나라들의 현실들을 제대로 알려주는 뉴스로 만들어 봅시다!’

 그래서 순회특파원 기간 동안 ‘놀라운 세상’식의 볼거리성 뉴스보다는 동남아 국가들이 이뤄내고 있는 빠른 정치경제적 발전과 사회 변화,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도 자기 문화를 지켜 나가는 동남아시아적 독자성이 갖는 한국과의 연관성들을 우리 뉴스에 소개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또, 나에게는 1997년 IMF사태 이후 경제적 이유로 많은 방송사들이 영상기자특파원을 대폭 감축했고, 이후로 복원이나 신설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 되고 있는데, 과연, 영상기자특파원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내 스스로 경험하고, 실증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조금은 피곤한 길을 택했다. 최근 많은 특파원의 취재물들이 현지방송사의 방송화면을 그대로 카피해 기자의 크레딧화면 (스텐드 업)만을 삽입해 리포트하는 방식을 아예 배제하고 힘들어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10여 시간 걸리는 비포장도로의 차량여행도 감수하며 현장을 직접 취재해 나갔다.

 그 결과, 급한 속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서울에서 외신화면을 사용한 한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제작한 리포트 중 중 거의 100% 가까운 영상이 한국 기자의 시각으로 내 자신이 현장에서, 영상취재한 화면으로 채워졌다.  또, 메인뉴스에서부터 아침뉴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아이템을 직접 영상편집하고 인터넷으로 송출했다.

 이런 제작 방식에 속도가 붙으면서, 지난 6개월 동안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돌며 취재, 제작한 아이템을 따져 보니 60여개에 이르렀다. 전체 기간을 따져 보면, 3일에 한 개씩 리포트를 제작해 송출, 방송한 것 인데, 동남아지역의 교통사정과 취재사정을 감안해 보아도, 이 리포트의 숫자는 동일한 지역을 취재권역으로 하는 타사 특파원들의 리포트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고 리포트 품질에 대한 평가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순회특파원기간 중 발생한 몇 건의 사건사고도 현지 카메라맨을 고용해 뉴스를 제작하는 타사의 특파원들 보다 좀 더 빨리 대응하고, 우리 방송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장의 영상을 갖고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취재, 보도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도 해보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6개월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소중한 성과는 내가 속한 보도영상부문과 영상기자들의 현실과 미래를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따져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뉴스현장에서 다양한 현실들과 마주칠 때마다, 외신화면을 그대로 카피한 화면과 방송사고에 가까운 영상과 오디오가 방송되어도 보도영상분야의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조직적인 모니터와 공식적 비판의 피드백이 없는 영상기자들의 현실이 눈앞에 떠올랐다.

 편집기 앞에 앉아, 버튼을 누를 때마다, 편집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며, 어느 순간부터 영상편집을 회피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이제는 날아갈 능력을 상실한 거리의 비둘기와 오버랩 되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부문의 선후배들이 노력해 구축한 인터넷 송출 시스템을 사용해  인터넷송출을 할 때 마다, 20만원하는 작은 영상전환장치 하나가 노트북과 연결되어  인터넷선을 통하면 전 세계 하늘을 돌고 있는 수백억짜리 위성들의 엄청난 위력을 대체하고 10분에 몇 백반원이나 하는 송출요금을 절감하는 놀라운 현실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 결과물들이 과연, 우리부문에서 어떻게 축적되고 있고, 알려지고 있으며, 영상기자와 보도영상분야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지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들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현실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도 뉴스의 공정성과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직업군 개개인의 경제적, 경영적 효율성과 이익을 높이기 위해 뉴스의 마지막 제작단계까지 영상기자들이 좀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도록 요구할 것이다. 또, 자기 혁신의 구체적 증거와 결과물들을 제시할 것도 요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비판과 자기혁신에 소홀하고,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의 축적을 통해 사람들이 영상기자의 경제, 경영적 효율성과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실증에 실패한다면, 우리 영상기자들이 수시로 자신의 회사와 협회보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보도영상의 독립성, 인원증원이나 특파원의 신설 등의 주장들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큰 스트레스이자 공허한 집단이기주의로 보여 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많은 방송사들에서 순회특파원이나 영상기자특파원의 신설, 증원을 위해 많은 노력들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물들이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나 조직 이기주의를 해소하는 출구가 되어 버리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꾸준한 자기 혁신과 자기 평가가 철저하게 이뤄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영상기자의 도약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축적물과 결과물들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나준영 / MBC 탐사스포츠영상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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