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정신과에 가보셨나요?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

by 안양수 posted Jul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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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

정신과에 가보셨나요?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

 더운 열기가 미간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지만 내 살갗은 돋아난 소름으로 덮혀 있다. 손은 뒤로 묶이고 눈은 무언가로 가려져있다. 등에 바짝 붙은 총구는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길을 재촉한다. 얼마를 걸어갔는지 가늠할 수 없게 되었을 때쯤 그들은 나를 멈추게 했다. 무릎이 꿇리고 등 뒤에 있던 총구는 어느새 관자놀이로 와있다. 사막의 열기에 달구어진 총구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를 조롱한다. 30년이 조금 넘는 내 삶이 10프레임씩 지나간다. 나는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장면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때 지나치게 강한 이펙트와 함께 겨우 10년을 넘기고 있는 내 삶의 영상들이 끊기며 페이드 아웃된다.

 다행스럽게 꿈일 뿐이었다. 몇 년 전에 이라크에 출장을 갔었다. 바그다드가 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요르단에 있었던 취재팀에게 날아왔다. 각국의 취재팀과 한국의 취재팀은 일렬로 바그다드를 향해갔다. 곳곳이 화염에 휩싸인 바그다드 시내가 눈에 들어오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그다드 시내로 진입하면서 소형화기를 어깨에 메고 죽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촬영을 하면서도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협에 내가 레코드 버튼을 눌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깊숙하게 시내에 진입하자 쇠몽둥이와 커다란 돌을 든 군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열해서 지나가는 차량에게 쇠몽둥이와 돌이 날아들었다. 우리 차도 예외가 되지못했다. 몸을 차 바닥으로 최대한 웅크리며 그들 옆을 지나가는 순간 와장창하며 커다란 돌이 조수석으로 날아들었다. 돌이 아니라 바위란 표현이 맞을 만큼 컸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폭도로 돌변한 그들에게서 벗어나긴 했지만 얼마못가서 도로에 떨어져있는 파편 때문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총을 든 사람들이 주위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제발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한없이 여유롭게 보이던 요르단 운전기사도 이때만큼은 식은땀을 흘리며 타이어를 교체하고 우리는 차 안에서 ‘혹시나 이라크 사람들이 폭도로 돌변해서 우리에게 오면 어쩌나’하고 걱정하며 맘을 졸였다. 타이어를 교체하는 그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다행이도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해 출장 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출장을 다녀온 후, 몇 개월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도 떨어지고 회사에 출근해도 생활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내가 다녀온 전쟁지역과 관련된 보도는 지금도 피하게 된다.

 얼마 전에 캄보디아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곳으로 취재를 간 기자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헬기를 타고 사고현장에 들어가 참혹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소지품들, 종이조각처럼 찢겨진 비행기 잔해들 그리고 정말 외면하고 싶은 희생자들. 앵글에 신경 쓸 틈은 없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뷰파인더를 바라본다. 사고현장에서 나와 촬영한 영상을 무사히 송출하고 한숨을 돌리지만 현장의 참혹한 모습들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고현장을 취재하고 막 회사로 돌아온 후배는 몹시 지쳐보였다. 며칠 전, 그 후배와 술자리를 같이 했다. 사고를 예견한 듯한 메모와 눅눅하고 습한 비닐에 싸인 희생자들의 모습들을 얘기하던 후배는 그 순간을 잊고 싶었는지 연신 술잔을 입에 갔다댔다. 출장을 다녀온 후 바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싶었다. 쉽게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정신과 상담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전쟁,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 자동차·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에 의해 발생한다. 신체적인 손상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일정기간동안 지속되는 질병을 말한다.

 카메라기자는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끔찍한 순간들을 목격한다. 현장에서는 속보 경쟁에 내던져져 정신없이 취재를 한다. 내가 취재하고 있는 ‘무엇’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하나씩 만들어진 기억의 상처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은 취재가 끝나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회사 차원에서든 협회 차원에서든 이러한 마음의 상처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 사고, 재난, 재해 등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동료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정신과 병원을 지정해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캄보디아 사고 현장에서 고생하고 취재경쟁에 내몰렸던 우리 동료들부터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