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별세미나-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 분쟁저널리즘과 언론 자유’
이스라엘, 폭격·취재 봉쇄로 ‘목격자 없는 전쟁’ 이어가...
한국 언론은 여권법에 묶여 ‘이중봉쇄’유례없는 언론인 희생자 속출에 “기자 안전 대책 마련 시급”
▲지난 11월 5일 서울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개최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별행사 2부 세미나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분쟁저널리즘과 언론자유>의 한 장면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을 앞둔 지난 11월 5일, 올해 수상자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한국의 언론인과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취재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이어 서울 상암동 MBC에서 국제 분쟁 보도의 현장을 직접 취재한 국내외 언론인과 언론학자가 함께하는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이번 특별 행사는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 주한독일대사관, 에스토니아대사관, MFC(Media Freedom Coalition)이 공동주최하고 MBC와 방송저널리즘연구회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 분쟁저널리즘과 언론 자유’ 세미나에서 첫 번째 주제 발표를 맡은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목격자 없는 전쟁과 임베드 저널리즘의 최악의 조합”이라고 비판했다. 2009년 스리랑카 내전 당시 정부가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며 ‘목격자 없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을 이스라엘이 적극 수용했다는 게 이 기자의 생각이다.
이 기자는 1년 동안 130~180여 명의 언론인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해 “전쟁 수행자들이 자기들이 저지르는 전쟁 범죄를 감추기 위해 목격자들(언론인)을 제거하고 있다”며 “이는 역사상 두 번째로 언론인 사상자가 많았던 2006년 이라크전의 56명보다 2~3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자 지역에 외신 기자들의 접근이 사실상 차단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종군기자가 동행취재하는 ‘임베드 프로그램’에 대해 “분쟁 취재에 임베드가 주요 (취재) 수단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전쟁 상황에 대한 내러티브가 수행자들이 주도하는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분쟁 저널리즘의 키는 독립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독일 슈피겔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특파원인 토레 슈뢰더 기자도 임베드 취재의 문제점에 동의했다. 슈뢰더 기자는 “지난 10월 말 지상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임베드 방식으로 기자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때는 (기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며 “기자들은 북쪽에서 수십만 명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접근하거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저널리즘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서방 기자로서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점”이라며 이스라엘의 취재 봉쇄를 비판한 뒤 “우리 기자들은 (현장에서) 그 상황을 세상에 전하고 이스라엘이 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미 분쟁전문PD는 “한국 언론은 이스라엘의 봉쇄에 한국 여권법까지 더해져 (현장 취재가) 이중 봉쇄를 당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개전 초기 현장에 들어가지 못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프로파간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는데, 한국 언론이 지금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를 증명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하지만 마틴 레인 기자는 러시아에 가지 않고 러시아 부패를 폭로하는 데 성공한 경험담을 들어 “공개 정보를 사용하거나, 위성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현지 기자들이 만든 자료를 사용하거나, 현지 기자를 고용”하는 등 “먼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슈뢰더 기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의 시민들을 살해한 사건이 뒤늦게 기자들에 의해 현장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드러난 점을 들어 “우리가 하는 일은 서로를 보완한다”며 “(현장 기자가 하는 일은) 먼 거리에서 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므로 둘 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분쟁보도의 역할: 전쟁과 갈등 지역에서 겪는 고통과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
‘전쟁 보도와 저널리즘: 현장성, 선정성, 편향성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종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7일부터 2024년 10월 7일까지 1년 동안 국내외 주요 방송사인 CNN, FOX, BBC, 알 자지라, CCTV, NHK, KBS의 가자 전쟁 관련 보도 영상 2,373건을 수집해 171,922 건의 아이프레임을 추출, 분석했다.
이 교수는 현장성을 분석한 결과 알 자지라는 피해자에 대한 클로즈업 영상을 강조하는 반면 CNN과 FOX는 해설 중심 보도에 집중했고, 내용 프레임을 분석해 보니 파괴와 이주 관련 프레임의 비율이 높은 반면 인도적 지원이나 재건에 대한 보도는 낮았다고 밝혔다. 또, 주요 인물 29명의 등장 빈도를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과 미국 인물이 많이 등장하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인물의 보도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CNN과 FOX는 이스라엘 관점에 집중하는 반면 알 자지라는 중동 인물과 인도적 위기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MBC 영상뉴스국 현기택 기자는 언론의 선정 보도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한 참혹한 학살 현장을 보여줘서 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평화를 염원하는 여론을 조성해 전쟁 상황을 빨리 종료하도록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너무 정제된 이미지만 보도한다면 과연 전쟁의 참혹함을 전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슈뢰더 기자도 “전쟁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매우 이례적이어서 본질적으로 선정적이기 마련”이라며 “우리가 이런 이미지를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선정주의일 수 있지만, 그것은 평화와 번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과 갈등 지역에서 겪는 고통과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터에서 보도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못된 정보와 정보 전쟁에 대한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에스토니아 분쟁전문기자 마틴 레인은 “거짓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쉽지만, 진실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여러분이 가자에 접근할 수 없을지라도, 외국 기자로서 우리는 진실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레인 기자는 소셜 미디어가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가짜 뉴스’ 현상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계정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시리아의 영상을 올리는 등의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실을 말하는 기자들이 있는 한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외신이 현장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자 지구 내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에 대한 안전 문제도 논의됐다. 김영미 PD는 “로컬 기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장치가 없다”며 “이번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계기로 현지 기자들의 안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홍성필 전 UN자의적구금 워킹그룹의장은 “자의적으로 갇힌 분들의 유형을 5개로 나눴는데, 언론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인한 구금이 놀랍게도 증가하고 있고, 특히 여성 저널리스트가 구금되는 증가 추세가 확연하다”며 “지금은 (언론사 소속)언론인과 개인 저널리스트, 개인 미디어 종사자, 내용을 송출하지 않아도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어 보호 범위도 포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은 민간인과 전투원, 전시와 평시의 구분이 없어지는 등 그동안 국제법에 의한 전통적 보호 체계를 다 무너뜨리고 있다”며 “우리나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UN과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은 것은 여성 인권을 보호하자는 모멘텀이 생겨 가능했던 것처럼 이번 사태가 분쟁지역 저널리즘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모멘텀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이유경 기자는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은 완전히 다른 경우”라며 “전쟁을 끝내는 것만이 기자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일침했다.
<지금 가자에선>으로 뉴스상을 수상한 유세프 함마쉬는 “우리(팔레스타인) 언론을 의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의심할 권리를 드리겠다. 그러니 외신 기자들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실을) 목격할 수 있도록 (현장 취재를) 허용해 달라”며 “우리는 살아남고 싶다. 국제 사회와 세계 지도자들이 책임을 지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