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프리미어리그가 주는 교훈
예전에 어느 시인이 축구를 보러 영국에 간다는 말을 듣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축구를 하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축구를 보려고 영국까지 간다고? 월드컵 때나 텔레비전 앞에서 손에 땀을 쥐고 대표팀을 응원하던 내게 그 시인의 말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가 프리미어리그 취재로 영국에 가서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그 시인이 왜 영국까지 가서 축구를 보는지 이해가 되었다. 모든 관중이 하나가 되어 응원을 하는데 그 열기에 내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 아마도 시인은 그 심장의 떨림을 잊지 못해서 계속 영국을 찾는 거라고 짐작해 본다. 다른 나라의 축구와 다른 점이 분명히 많겠지만 내 눈에는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게 한 가지가 있다. 경기를 하는 90분 내내 모든 축구 선수들이 쉼 없이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90분 동안 그라운드 곳곳을 누빌 수 있는 강철 체력일 것이다.
요즘 프리미어리그에서 화재가 되고 있는 팀이 있다. 챔피언 십 리그인 2부 리그에서 올라온 헐 시티란 팀인데 강팀을 꺾기도 하고 대등한 경기를 해 리그 초반이긴 하지만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팀이다. 얼마 전에 헐 시티의 경기를 보았는데 왜 이 팀이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유심히 보았다.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팀들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90분간 11명이 쉼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다. 11명의 박지성이 있는 팀이었다.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는 없었지만 11명의 선수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준비된 팀인 것이다.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과연 우리는 시청자라는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한 가수를 취재하러 연습실에 간적이 있다. 연습실에 세션맨들이 꽤 많이 있었다. 젊은 피아니스트, 트럼펫을 부는 관록이 묻어나는 노신사, 북을 치는 타악주자 그리고 코러스를 담당하고 있는 아카펠라 그룹까지 모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한 동안의 준비가 끝나고 리허설을 하는데 장난기가 가득했던 피아니스트는 환상적인 손놀림으로 건반을 주무르듯 했고 복덕방에서 장기나 두면 딱 어울릴 것 같았던 트럼페터에게선 수 십 년 동안의 세월이 선율을 타고 나왔다. 북치는 타악주자는 또 어떠랴. 가수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와는 다르게 나이에 비해 완숙미가 묻어나오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배나온 아저씨들로 구성되어 있는 화음을 넣는 아카펠라 그룹은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화음이 아닌 그들 각각의 노래실력으로 모두 훌륭했다. 그들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실력에 감탄을 하고 있다가 문득 그럼 나는 어떤가? 그들에게도 나는 한 명의 프로페셔널리스트일텐데… 그들의 눈에도 내가 전문가처럼 보일까? 순간 얼굴이 후끈 달라 올랐다. 저들처럼 눈을 감고도 연주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텐데 과연 나는 시청자들에게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관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강력한 체력과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연주력은 모두 땀의 결실인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열정과 그 열정의 결실로 숙련미까지 갖출 수 있다면 어떤 현장에 있던지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열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상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누구랄 것도 없다. 나부터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