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과 전문성의 지침서 "포토저널리즘"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포토저널리즘 과정의 디렉터인 케네스 코브레의 역서인 “포토저널리즘”은 몇 년전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후 저널리즘 종사자들에게는 교과서로 통해왔다. 이 책은 사진기자에 대한 일종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지만, TV카메라기자에게도 역시 매우 유익한 책이라고 봅니다.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제가 흥미를 가지는 몇 가지 부분을 발취하고 얘기하고자 합니다.
*독립성에 대하여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는 각기 독립적일 필요가 있는 반면, 또한 두 사람 모두 그 사건을 같은 방향과 주제로 취재하고 있는지 서로 확인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접촉해야 한다."
여러분은 취재기자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저는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 라는 개념으로 두 직종의 관계를 보고자합니다. 취재의 시작과 끝에서 취재기자의 지시로만 움직이는 것은 수동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수동적인 자세는 단순히 취재기자의 지시에 수긍하는 종속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고민에 대한 번거러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목적이겠지만 결코 바람직한 카메라기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각자 독립적일 필요가 있는 것은 뉴스에 대한 제작자들의 편견을 감쇄하는 기능이라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현장의 관찰자들의 다양한 시각들이 시청자에게 이롭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카메라기자는 현장에서 질문하기를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취재과정에서는 서로 경쟁적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치밀함이 필요합니다. 사실확인 과정은 저널리즘의 본질이자 사명감이기 때문입니다. 카메라기자의 현장 취재에 제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독립성은 편집에서도 적용됩니다. 취재기자가 대략적인 콘티를 구상하지만 그 시각적인 전달의 시작과 끝은 카메라기자의 전문성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카메라기자의 영상구성의 노력은 각별히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카메라기자만의 시각이 없다면 카메라기자는 저널리즘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독립성의 필요성은 카메라기자의 존폐를 좌우하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진부함을 피하라
"대부분 사람들은 앉아서 혹은 서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사진가가 독특한 높이에서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사진에 즉각적인 흥미를 더하게 된다. 170cm의 눈높이 신드롬을 피해야 한다."
진부함의 탈피, 즉 다른 앵글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전혀 볼 수 없었던 화면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촬영 시각은 흔히 정치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근원은 우선 정치 기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적당한 양비론과 균형주의식 기사는 카메라기자의 진부한 시각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적인 균형을 추구하다보면 가장 안전한 앵글을 카메라 기자들은 추구합니다. 진부함의 탈피는 취재기자의 시각변화와 카메라기자의 공동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껍질을 깨지 않으려는 부동의 자세가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과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참신함을 더 할 수 있는 Carol Guzy 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처음 본 것처럼 대하고 정말 열린 마음으로 기다린다."
*자체검열
"책임감 있는 사진 기자면 극히 미묘한 편견의 조짐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만일 편견이 소속 신문사에서 나타나는 사내문화의 한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면 세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즉, 그것을 수용하든지,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다. 각 의견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사를 치러야 한다."
카메라기자는 각자의 회사의 방향에 충실한 업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떨 때는 공익을 위한다는 것이 무책임한 구호일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현장취재와 편집에서 우리는 자체검열을 경험하고 인위적인 진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의 통념, 회사, 간부로부터 카메라기자는 검열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기자들은 자신과 소속사의 편견에 대해 반드시 비판적으로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리터칭은 진실을 조작하는 것인가?
"우선 절대주의자들은 사진에 절대로 다시 손을 보거나 조작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원본이 진실이며 어떠한 변화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온건주의자들은 오직 전체적인 변화만을 시도해야한다고 합니다. 즉 현장에 있는 사진기자들이 카메라의 필터를 바꾸는 것과 같이 사진의 전체적인 것에 대해서만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디지털 리터칭에서 카메라기자도 지금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합의된 표준이 만들어 지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가공하는 과정을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카메라기자가 현장에서 사실을 재구성하는 "재현" 과 편집과정에서 "변화주기"입니다. 현장에서 카메라기자가 사실을 재현한 부분에서 우리의 뉴스가 픽션인가 넌 픽션인가를 정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즉 픽션 속에 넌픽션이 존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또한 디지털 편집에서 변화주기는 과연 어떤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가?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드려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카메라기자가 행하는 ‘재현’과 편집 중 ‘변화주기’는 사실에 대한 "훼손" 이라는 질타를 피하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