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백승대 톱 프로덕션 대표이사]

by TVNEWS posted Mar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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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정신을 가지고 여전히 현장에 계시는 톱 프로덕션 백승대 대표이사를 만나다

극영화 촬영감독 출신의 카메라기자로서 대한민국 보도영상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렸던 백승대 전 KBS 카메라기자를 만났다. 서울 목동 방송회관 9층에 위치한 <(주)톱 프로덕션>은 백승대 선배께서 94년도 KBS를 퇴직하시며 설립한 프로덕션 사무실이다. 현재 66세(44년생)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사업을 계속하시며, ENG 카메라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카메라기자가 되셨나요?
이십대에 극영화 다섯 편을 찍었다. 그리고 군생활 중 베트남에 종군하여 국방부 제작의 월남전선 문화영화를 제작하던 중, 당시 베트남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KBS 취재팀을 만난 인연으로, 1974년에 KBS 보도국에 특채로 입사했다. 입사 당시에는 보도영상만을 담당하는 카메라기자가 따로 없었다. 뉴스, 드라마,다큐멘터리 등 종합적으로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카메라기자 인원이 3~40명 정도 였던걸로 기억된다.

개성 강한 백 선배로 기억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성이 있다고 평가를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극영화를 하다가 카메라기자가 되었던 만큼 다른 동료들에 비해 시작한 나이가 늦은 감이 있다. 극영화를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뉴스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 적어도 영상에 대해서는 정통적으로 배웠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송은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보도영상과 극영화를 접목시켜 한 차원 높은 영상세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과 녹음을 분리하여 방송하던 시대였다. 필름과 녹음된 테입을 동시에 플레이 하면 말하는 모습(싱크)이 영상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필름과 녹음된 테입에 플레이를 조정하여 방송하면 영상과 소리가 딱 맞아 떨어졌다. 욕심일수도 있고 간과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정확한 뉴스전달을 위한 노력이었다. 영화를 하면서 터득한 것을 뉴스에 접목시켜보게 된 것이다. 또 한편 영화에서 효과라는 것을 배웠기에 보도에서 그것을 사용했다. 모아둔 NG필름을 손으로 만진 소리를 녹음기에 담아 스치는 영상에 믹싱을 시켰다. 때론 너무 잘난체 한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필이 되기도 했다. 피디나 기자들 중 나와 일했던 사람들 중에 프로그램에 애착이 있는사람은 좋아했고,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기도 했다. 취재차량에 타서는 잠을 자면 카메라기자 자격이 없다. 자는 사이에 놓친 피사체는 다시는 볼 수 없다. 뜨는해를 봐야했고, 지는 해를 봐야만했다. 그래야 양이 차니까 말이다.

뉴스 파노라마 등 KBS의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으셨던 기억이 나는데요, 특히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만들었던 유명한 프로그램들은 어떤것이었나요?

뉴스 파노라마가 처음 생겼을 즈음 헬기를 타고 제주도를 촬영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곡명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어떤 음악이 들어가면 좋을지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대에는 뉴스에 유행가를 넣을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는데도 과감하게 당시 유행하던 혜은이의 <감수광>을 넣었다. 뉴스 파노라마에 관심이 크신 사장께서 보도국에 와서 <감수광>을 듣고는 '바로 저거다’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KBS에 근무하면서 약 50여 편을 제작했는데, 내가 잘했다기 보다 시작의 단추가 잘 끼워진 것이었다. 이후 ‘카메라 발길 따라’ 등 뉴스 파노라마 영역들이 발전하게 됐다.

또한 코란도 차량 두 대에 망원렌즈, 방진대 등 당시로서는 회사의 엄청난 취재지원으로 <신왕후천축국전>을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프로듀서와 기자의 벽이 없었다. 보도국에서 많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당시의 <월요기획>이 <일요스페셜>의 전신이다. 지금도 옛날 프로그램을 틀어도 될만큼 괜찮은 영상들이다. <세계를 달린다-북남미대륙 횡단>, <월요기획>, <신라의 신비>, <전쟁과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 <전승자를 찾아서> 등을 제작했다. 나는 운이 참 좋았다. 지금 프로덕션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그때 프로듀서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선배님께서 당시에도 멀티기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셨는데요. 특히 <시민정신>을 만드시던 생각이 나네요?
당시 MBC에 <카메라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꽤 인기가 있었다. <카메라출동>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생긴 프로그램인데 <시민정신>의 경우 촬영기자들이 기획부터 촬영, 영상편집까지 참여했었다. KBS에 재직중인 김민수, 이중완 촬영기자 후배들과 함께 만들면서 수많은 고민과 함께 많은 특종을 했던 기억이 난다.

94년에 KBS를 나오셔서 프로덕션을 17년째 운영하고 계신데, 현재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명찰>, <한국의 장인>, <한국의 보물>, <이벤트 인 코리아>, <우리 땅 속살보기>, <우리시대의 장인>등 KBS, MBC, 불교방송 등 공중파 및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300여 편을 제작했다. 현재는 직접 촬영해서 TBS?? 에서 목요일마다 방송이 나가고 있다. 재방송도 물론하고 있다. 이젠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백선배께서는 제5대 한국TV카메라기자회 회장을 역임하셨는데 후배 카메라기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9시 뉴스를 보고 놀라곤 한다. 정말 잘한다. 다만 장비기술의 발달로 하여금 자기 노력이 적어져 프로 정신이 약해질까 우려스럽다. 카메라 기능이 좋아져 취재현장에서 영상을 지우는 그런 상황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러면 절대 안 된다. 현장을 그대로 수록해야 한다. 현장은 바로 역사이기 떄문이다. 프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 프로정신이 쇠퇴할 수 있기에 시간을 두고 끈질긴 노력을 해야 한다. 난 지금도 현장에 나가는 것이 행복하다. 주책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나간다. 매일매일 새로움을 느낀다.

백승대 수상경력
국민훈장 수상 (88올림픽 유치),
대통령 표창 (신라의 신비 / 신왕오천축국전)
문공부장관상 (21세기를 겨냥한다)
KIPA 촬영상 (2004년 세월이 가면)

대담 : 양용철 협회장

※ <미디어아이> 제72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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