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사업은 잘 되셨습니까?"

by 정민욱 posted Jun 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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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사업은 잘되셨습니까?”

  ‘금강산 역’을 출발해 ‘제진 역’으로 향하는 열차 안 북측 마지막 역인 ‘감호 역’에서 통관검사가 있었다. 북한 군인들이 열차를 타고 인원점검을 했다. 하지만 객차를 섞어 탄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휴전선 통과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졌다. 이때 한 여군이 내게 다가와 촬영한 것을 보자고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상황. 하지만 여긴 어디인가? 아직 북한이다. 아이피스까지 제거해가며 뒤로 돌려 보여주었다.

 이 때 이 여군의 질문. “취재사업은 잘되셨습니까?”

 ‘취재사업?’ 무척 생소한 단어. ‘취재+사업’ 하니까 왠지 장난스러운 표현으로 들렸다. 잠시 어색한 단어에 적응하고 “예, 도와주신 덕분에 잘 되었습니다” - 현?문?현?답. 나는 매일 취재를 하지만 항상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바로 어제 취재 한 것도 잊어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날의 취재는 단 한 컷도 잊을 수 없는 오래 기억에 남는 ‘취재사업’이었다.

 ‘남북 철도 연결’ 취재를 위해 우리는 새벽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MBC 박지민, SBS 이병주 기자와 나로 꾸려진 방송사 pool 기자단, 좌석에 제한이 있어 방송사 취재기자는 동행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우리 측 CIQ를 통과해 20분쯤 달려 금강산 ‘청년 역’에 도착했다. 금강산을 형상화 했다는 뾰족 지붕의 금강산 ‘청년 역’은 남한에서 지어준 것으로 이미 역 안에는 오와 열을 맞춘 수십 명의 학생들이 환송 나와 있었다. 깨끗하게 정비된 열차 열차는 ‘68년 위대한 김일성 동지가 몸소 탔던 열차’라는 빨간 명패가 붙어 있고, 객차엔 좌석마다 음료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간단한 환송회가 끝나고 바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경의선 열차와 휴전선 통과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30여 분간 기다렸다. 그 동안 참석자들은 북측 여성 안내원과 또는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북측 안내원들은 웃거나 인터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사진촬영에 잘 응해주는 등 어색함 가운데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하지만 기적이 울리고 커다란 팡파레가 있었을 것이었다고 상상하면 금물. 학생들의 손 인사로 출발했다. 아주 천천히 열차는 철로를 달렸다. 아니 달린다고 하기 보다는 살살 미끄러져 나갔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한마디로 삭막했다. 바깥의 풍경 촬영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당연히 금지. 남북 교류가 한창일 때 스포츠취재팀에 있었던 나에게는 첫 북한행, 해야 할 일 보다 하지 말아야 일들을 더 되 뇌였다. 잠시 후에 고운 북한식 한복을 입은 여성접대원들이 과일 접시를 돌렸다. 객차서비스였다. 날이 서지 않은 과도, 이건 정치적 이유 때문인가? 잘 안 깎이기도 했지만, 왠지 무공해 과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껍질째 먹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팠다. 휴전선에 다가 갈수록 삭막함은 더해갔고, 철로 바로 옆에 포대엔 섬뜩함 마저 느껴졌다.

 ‘우린 아직 전쟁 중이구나’

 북측의 마지막 역인 ‘감호 역’에 도착했다. 금강산역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남한에서 지어준 역이다. ‘감호 역’이란 표지는 없다. 다만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만 크게 붙어 있었다. 이제 슬슬 일을 해야 할 시간, 열차 안에서도 할 일이 너무 많았는데 아무 것도 못한 상태였다. 할 일은 못한 이유는 열차 안에 우리 측 인사뿐 아니라 북측 인사가 많이 탑승을 해, 촬영을 감시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 측 통문 통과! 하지만 벅찬 감정 보다는 이제부터는 촬영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더 좋았다. 서둘러 열차 안 스케치 탑승객 인터뷰, 물론 북측 탑승객은 인터뷰가 안 되었다. 통문 통과 후 10분도 안 되서 ‘제진 역’에 도착했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달렸지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메텔이 인간이냐 기계인간이냐 논란이 아직도 그치지 않는 ‘은하철도 999’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공상과학 만화이면서 왜 은하철도인가? 우주선도 아니고 왜 열차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열차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미지 때문이지 않을까? 열차는 ‘꿈’, ‘희망’, ‘낭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등을 상상하게 된다. 2007년 5월 17일, 드디어 남과 북의 열차길이 열렸다. 해로, 항로, 육로에 이어 교통수단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철로가 열렸다. 수 백 명이 타는 2층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시절이지만, 열차는 아직도 육상 운송으로 큰 역할을 차지한다. 열차는 인류에게 개척과 대량 수송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황무지 개척에서도,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도 철도의 역사는 일본의 수탈 역사와 일치한다. 그래서 어쩌면 통일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철도일 것이고, 그런 의미로 북한은 철도 연결에 더 소극적이지 않았을까?

 한차례 봄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분명 그 바람은 통일이라는 태풍을 불어줄 것이다. 그래서 훗날 통일특집 방송이 방송될 때 통일의 과정을 보여주는 리포트에서 열차운행은 분명 통일을 위한 작지만 큰 기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다. 아빠가 카메라기자로서 저 기차에 타고 있었노라고…

정민욱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