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전쟁취재기-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했다

by KBS 민창호 posted May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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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배로부터 리비아 취재기에 대해 글을 써줄 것을 요청받았다. 다녀온 지 두 달이 넘어가고 갑작스런 일이어서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중동 출장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길게 출장은 다녀왔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루하루에 대해 일기처럼 써온다면 쉽겠지만 지면을 낭비할 것이고, 리비아 상황에 대해서 쓴다면 얄팍한 나의 지식보다 인터넷이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투적으로 출장 시 뭘 했고 뭘 했고 줄줄이 나열하는 것도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민 고민하다가 이렇게 글을 써보려 한다.  

왜 우리는 리비아로 갔는가?

사실 처음부터 리비아로 가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전역으로 불어올 때 우리의 목적지는 이란이었다. 성인현 선배와 함께. 출발당일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았다. 내일 이란으로 가라고. 그러나 당시 성인현 선배와 나는 ‘이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나라 아니다. 우리 가기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이란 생각 외로 불편 없이 갈 수 있는 나라였다. 이렇게 우리의 기나긴 출장은 빗나간 예상을 시작으로 기나긴 여정이 펼쳐지게 된다. 이런 식의 연속되는 빗나간 우리의 예상들이 의지와 우연이 겹치며 이란을 시작으로 마지막 도착지인 리비아까지 발길을 놔주었다.

리비아 오래 있을만한가?

출장은 모든 시간을 포함해서 장장 31일간 다녀왔다. 정확히 한 달. 그것도 꽉~~~ 채웠다. 이란에서 일주일을 시작으로 짧게는 4일 길게는 10일 이상으로 각 나라에 머물렀다. 참 우리의 경로는 이란을 시작으로 두바이 이집트 마지막 리비아다. 결국 리비아에 머문 시간은 11일. 전체 출장의 삼분의 일이다. 이 말의 행간은 곧...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집 떠나면 고생이다. 게다가 말도 안통하고 먹을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다른 환경에 관한 호기심과 관심도 5일 이상을 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은 후라이드 치킨과 감자뿐이었다. 다른 것은 권하지 않는다. 심지어 햄버거도. (우리가 말하는 체인점은 물론 콜라조차도 코카콜라가 없다. 미국에 대한 중동의 심리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주변은 모래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고 밤이고 낮이고 심심하면 들려오는 한방의 총성. 주변에 보이는 여자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얼굴뿐이다. 나처럼 혈기왕성한 건장한 청년에게 이러한 상황은 실망과 더 나아가 절망이다. 중동 미인이 진정한 미인이라지만 난 잘 모르겠다. 상대 여자에게 건네는 눈빛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힐끔거림을 제외하고는 나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긴 여정을 달래기 위한 필수 아이템 술. 구할 길이 없었다. 매주 금요일 우리의 축구 응원전을 방불케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삶인 이슬람 국가에서, 금기시되는 술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아니 죄의식마저 느끼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다. 달리 간간이 보이는 맥주가 있기는 했다. 한 잔의 맥주 노 알콜. 마신다면 기분에 취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11일 동안만 리비아에 있었던 것이다.  

리비아 어떻게 들어갔나?

두바이에서 이집트로 들어오면서 선배들 모두 리비아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리비아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으며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갈 수 있는 루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조차도 위험지역이라는 부담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언제 다시 분위기가 역전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가 선택한 길은 맨땅에 헤딩. 우선 국경까지 가보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 샬렘으로 도착하고 우리는 무작정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PC방, 호텔, 식당. 그 결과 며칠 전 외신기자들을 데리고 리비아로 들어갔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때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우리를 데리고 갈 사람 중 물망에 올랐던 사람들이 셋 정도는 됐다. 이중 우리가 선택한 사람의 기준은 외모였다. 우리가 리비아로 들어가는 중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안전이다. 그것을 담보할 만한 사람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정보는 거의 없다 생각하면 된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얼굴. 어찌 보면 무모했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외모를 속일 수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드라이버와 5시간을 조용히 앉아있었다.
우리가 언제 리비아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모른체...

위험하지는 않았나?

위험이라 함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보도에 대한 위험, 환경에 대한 위험, 예상치 못한 발생. 그 중 환경적 위험은 어느 지역으로 가더라도 다 같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단지 그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경험이다. 이는 무엇보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다. 이번 출장에서는 움직이는 동안 여러 가지의 상황들이 발생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 했다. 어디론가 이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리비아 도착과 동시에 1시간여 만에 보도를, 전기를 가로등에서 빼올 수 있는 재치도, 위험시에는 어느 것이 위험한지 판단도 해야 했다. 카메라만 들면 이성이 흐려지는 우리들에게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경험은 우리의 안전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판단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난 선배와 함께 갔다. 이 말은 직접적으로 내게 오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판단력의 무게를 실감한 일이었다. 출장을 가서도 다른 선배들을 만나며 선배들의 마음가짐과 생활방법들을 엿볼 수 있었다. 단지 밖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선배들로부터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야 사소해 보이지만 다들 부담이라는 무게를 혼자서 이겨내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세상 오지, 어떠한 곳으로라도 가야하는 촬영기자들에게 꼭 필요로 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지만 차곡차곡 하나씩 경험이 쌓이다 보면 혼자서도 책임지는 위험 지 출장뿐만 아니라 후배를 데리고 출장을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때까지 더욱 부지런히 나를 만들어가야,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민창호 KBS 보도영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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