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2년, 후쿠시마를 가다.

by TVNEWS posted Mar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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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2년, 후쿠시마를 가다.

2011년 3월 11일 모처럼 휴가를 내서 가족들과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갔다. 긴 시간 자동차를 타느라 지겨웠는지 아들 녀석들은 콘도에 들어가자마자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난리를 쳤고 나와 아내는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댄 체 습관적으로TV를 틀었다.
그 순간 화면을 통해 보여 지는 장면을 보며 “저게 뭐지? 정말 잘 만든 CG인가?”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장면은 실제 화면이었다. 리히터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된 쓰나미가 마을과 사람들을 덮치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날 3월12일 오후3시30분경.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원자로를 둘러싼 콘크리트 벽이 폭발 하였다. 이틀 뒤인 3월 14일에는 3호기 수소폭발, 15일에는 2호기 수소폭발 및 4호기 수소폭발과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 화재 등이 발생해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외부로 누출됐다. 이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현재까지 사망과 실종자를 포함해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33만 명에 이르는 피난 주민들이 생겼다.

후쿠시마(福島), 후쿠시마 현의 현청소재지이기도 하고 일본 제일의 오징어 어획량을 자랑하며 산업과 어업이 활발한 곳이다. 그러나 원자로 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은 한순간에 이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취재를 위해 후쿠시마를 찾았다.
도심에는 유달리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마스크 착용이지만 아직도 방사능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여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음날,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 원전 반경 20KM안에 포한된 지역의 촌장을 만났다. 지금은 집을 버린 채 부인과 후쿠시마 시내의 한 연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저 시골에서 농업과 축산업을 하며 살던 촌부가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생각하며 나날이 지쳐가고 있는 모습은 마음 한편을 답답하게 했다.
그와 동행하여 어렵게 전에 살던 집으로 가 보았다. 우리네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전원적인 곳. 그곳은 삼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집이였다. 그러나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기 저기 그날의 처참함이 눈에 들어왔다.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벽과 지금은 살 처분 되어 사라진 소들이 살던 축사, 사람의 손길이 닿질 않아 녹슬어 가는 농기계들이 2년이란 세월의 무상함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눈앞에 정든 집을 놔두고 객지 생활을 해야 하는 그의 처치가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던 중  들린 식당에서는 길을 묻던 취재진에게 ‘그곳은 들어갈 수 없다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마라’는 충고를 들었다.
조심히 방사선 설량계로 측정해가며 이동 하던 중 마을 이곳저곳을 순찰하는 경찰차량의 모습이 보였고, 점점 원전사고 지역 깊숙이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통제구역을 만들어 경찰들이 지키고,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마을은 2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방사능 피해가 쉽게 회복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와규 농장. 와규는 일본식 화(和), 소 우(牛)로 일본소라는 의미로 세계 최고 수준의 쇠고기를 말한다. 품종을 지키기 위해 수출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관리도 엄격하다. 그러나 1500두 가까이 사육을 하던 이곳 농장도 방사능 오염을 피해갈수 없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300여 마리를 제외하곤 모두 살 처분 하였다. 살아있는 300여 마리의 소도 농장주인의 반대로 인해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사고 현장에 근접해 있어 내다 팔 수 도 없는 처지. 농장주인은 인터뷰에서 소들은 원전사고로 오염되었고 그 소가 방사능 오염의 표본이면서 산 증인이 된다고 했다.
인근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이미 오래 살아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했지만 노인 몇 명만 남아있는 마을에  피난 떠난 후손들이 돌아오질 못하고 있다며 마을 전체가 유령 마을로 변해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씩 안정을 찾고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후쿠시마.
한때 안전만큼은 절대적이라고 내세웠던 일본의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하게 보였다. 거대한 자연에 맞선 인간의 오만이 불러일으킨 재앙의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했다. 하루빨리  피난 나온 일본인들이 집으로 돌아 가 예전처럼 살 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현석 KBS 보도영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