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취재기 - 진정한 축제가 간절하다

by TVNEWS posted Nov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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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축제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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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지금 축제를 축제답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인가 

  스포츠팀에 오자마자 인천 아시안게임 취재명단에 이름이 들어갔을 때 설렘이나 기대는 크지 않았다. 폐막 이후의 끔찍한 그림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에. 경기장, 시설들은 대회가 끝나면 처치곤란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잔뜩 끌어다쓴 대회비용에 대한 빚이 남을 것이다. 끔직하다.
  대한민국이 과연 그런 국제적 축제를 열고 즐길 만한 여유가 있는 사회인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는 나라가 아니었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을 1년에 한번 보는 것도 어려운, 아들딸 데리고 놀이공원 한번 가는 게 힘든, 몸 부서져라 일해도 병만 생기고 빚만 늘어가는, 그래서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 숫자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OECD기준) 나라가 아니었나? 상황이 이런데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면 ‘어머니, 여보, 아들아, 맥주 한잔 하면서 북한하고 인도 선수들이 맞붙는 축구 경기 한번 보러갑시다!’라고 말하게 될까? 아니다. 여기는 엄연히, 그럴 시간 있으면 얼른 씻고 잠이나 십 분 더 자고 싶은 사람들의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축제를 즐길 여유가 없다. 자조적이지만 그렇다. (여담인데, 국민건강증진 대책이라면서 담뱃값을 인상한다는데 정치인들이여,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올려라! 노동시간과 노동조건, 여가와 임금 수준 등이 국민보건과 가장 밀접한 요인들 아닌가요? 유럽사람들, 담배 안 펴서 건강한 건가요?)

빈곤 속에 더 큰 빈곤,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이 시작됐을 때 그러한 자조는 사실로 입증됐다. 관중석은 몇몇 빅경기를 제외하고는 대개 텅텅 비었다. 주최측은 안 팔리는 표를 공무원 조직에 강매해야만 했다. 아니, 연금도 깎을 거라면서 왜 이런 일엔 애꿎은 공무원을 동원해? 나는 매일 두 경기 혹은 세 경기씩 맡았는데 어떤 날은 관중이 너무 없어서 취재를 마치고 남아 (피곤함을 무릅쓰고) 기꺼이 한 명의 관객이 돼야 하곤 했다. 개최국 시민으로서 민망하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해서. 시상식은 더했다. 태권도 경기에 갔을 때, 대한민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그나마 관중의 3분의 1정도는 시상식까지 남아 있는데 대한민국의 메달이 없는 날은 관객 없는 시상식을 거행해야 했다. 이런.
  그리고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이 시작됐다. 정기휴가 때문에 대회 일부만 취재하긴 했지만, 내가 목격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한마디로 빈곤 속의 더 큰 빈곤함 그 자체였다. 아시안게임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관객에게도 언론에도 장애인아시안게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축제였다. 아시안게임 때 촬영포인트를 두고 정말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었던 (그 사람은 나더러 ‘아저씨 여기서 나가세요. 아저씨가 KBS든 뭐든 여기 들어올 권리는 없어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사람이다) 보안담당자가 장애인아시안게임 때 보니 보안 일은 제쳐두고 관객이 되어 한쪽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있을 정도였으니! 상황이 그러니 분위기가 무척 가족적(?)이긴 했다.

삶의 여가 회복이 먼저, 축제는 그 다음에 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 취재를 통해서 나는 다시금 스포츠라는 인간의 행위에서 느껴지는 희열, 육체의 사점이 주는 극적인 감동을 소멸시키는 자본주의의 기계성과 냉혈을 보았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분명 열심히 사는데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여가도 돈도 없다. 물론 일부는 충분히 행복하다. 지나칠 정도로. 그게 오늘 우리사회 비극의 본질이다.
  우리는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위해, 행복한 삶의 회복을 위해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 현재를 옹호하고 미화시키는 모든 이즘과 권력, 관습, 그리고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 좋은 사회와 나쁜 사회의 간극은 바로 거기에 있다. 소비주의와 효율성, 시장 만능의 이기주의와 차가움에 반기를 들 줄 아는 교양과 지성, 인간애가 필요하다. 충분히 싸우고 나서, 반인간과 반민주주의, 몰여가, 낮은 임금과 같은 질기고 막강한 상대와 싸워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놓고 나서, 아시안게임 다시 한번 했으면 좋겠다. 진정한 축제를! 물론 새것 말고 새로 단장한 헌 경기장에서. 그렇지만 관중석은 꽉 채우고. 비인기 종목 경기에 몰려가서 선수들이 깜짝 놀라게. ‘이 나라는 정말 살 만한 나라구나! 부럽다!’




김정은 / KBS 보도영상국 영상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