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by TVNEWS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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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2007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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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서 왼쪽부터 KBS 이홍우, KBS 홍병국(필자)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2차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했던 영상기자로서 이번 4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 우리 민족의 통일과 공동 번영으로 가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
   20006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은 200710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102일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에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615 남북공동선언의 적극 구현,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추진,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적극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하는 2007 남북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200788일 오전, 남북은 동시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2007828일부터 830일에 걸쳐 개최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2007818일 북한은 수해로 인해 회담 일정을 연기할 것을 요청했고 구체적인 회담 일자 지정을 남측에 일임했다. 이에 남측은 2007102일에서 104일 동안 회담을 개최하기로 제안했다.

   남북정상회담 계획이 발표되자 청와대 춘추관의 출입 기자들은 분주해졌다. 약간의 긴장감과 동시에 역사적 현장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뜨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회담 취재 인원을 최소한으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하자 나는 혹시 이런 역사적 현장에 동참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도 느꼈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영상취재기자는 6개 방송사였다. 이 중에 YTN과 공중파 3사는 각사 2명씩, MBNKTV는 각사 1명씩, 송출담당을 맡은 KBS1명이 추가되어 총 11명이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취재단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2000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1, 2진이 취재에 동행했다. 그러나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1진과 3진이 동행 취재하기로 되었다. 당시 KBS 3진이었던 나는 1진 이홍우 부장을 모시고 역사적인 현장을 취재하게 되었다.

남북정상회담 취재에서 카메라 기종 선택도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당시 SD급인 소니SX카메라를 사용하던 시기였는데 각 방송사들은 HD 전환을 고민하던 때였다.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니 HD카메라로 취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최종적으로 테이프 방식의 HD카메라로 취재하기로 했다. 일부 방송사 중에는 HD카메라가 없어서 급히 구입하거나 리스하기도 했다. 당시 HD카메라는 초기 형태로 현재의 카메라보다 노출이나 포커스에서 관용도가 낮아 역사적으로 정말 중요한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영상취재기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사실 당시 취재된 영상을 보면 HD카메라에 적응이 안 되었는지 아웃포커스와 노출 문제 등 조그만 오류들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낯선 장비로 엄청난 긴장감을 이겨내며 촬영한 영상취재기자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당시의 영상을 지금도 HD화질로 볼 수 있게 되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과는 달리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양 개성 고속도로를 통한 육로 방문을 하기로 합의되었다. 나를 포함해 KBS, MBC 영상기자 4명은 선발대로 대통령보다 하루 먼저 평양에 들어가서 노무현 대통령 도착 이전의 환영 인파와 대통령의 도착 모습을 현지에서 취재했다. 선발대는 육로를 통해 남북출입 사무소를 거쳐 개성과 평양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평양에 들어갔다. 남북 출입 사무소 통과는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고 북측 지역에는 우리를 안내할 민족화해 협의회(민화협) 소속 안내원들이 승합차를 타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전에 북한 취재 경험이라고는 금강산 취재 밖에 없었다. 그때 딱딱하고 경계하던 안내원들과는 달리 비교적 친절하고 부드럽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민화협에서 제공된 승합차를 타고 개성 시내를 통과할 때는 방북단 환영하기 위해 분주한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도로를 정비하고 집들을 수리하는 사람들과 아이를 업고 힘겹게 유리창을 닦는 모습의 광경을 바라보며 개성시내를 통과했다. 2시간 이상 도로를 달려 평양에 도착했지만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차량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놀라웠다. 평양에 도착하자 남측 취재진의 프레스센터는 고려호텔에 마련되었다. 대통령은 백화원 초대소, 수행원들은 유경호텔에 묵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정 첫 날인 10295분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는 최초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왔고 평양과 개성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평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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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에서 영상취재기자 풀단 왼쪽부터 MBC송록필 MBN정선호 KTV채영민 YTN김태형 MBC최세훈 KBS이홍우 SBS변영우 KBS김태산 YTN김영욱 KBS홍병국 SBS주범

 

   우리 선발 취재진은 북측에서 제공한 무게 차에 나눠 타고 역사적인 만남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했으나 먼저 북한에 들어온 선발대는 남북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멀리서 그냥 쳐다봐야만 했다.

   북측은 경호를 이유로 첫 만남의 장소를 세 번씩이나 바꿨고 최종적으로 4·25 문화회관 앞에서 두 정상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은 대통령과 동행한 본대가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선발대는 대통령 일행이 평양 시내로 들어오는 모습과 환영인파를 취재하며 계속 바뀌는 만남의 장소를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뒤에도 백화원 초대소에서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는데 취재인원을 극소수로 제한해 영상 풀 취재단 한 팀이 청와대 전속과 함께 들어가서 취재를 했다. 영상 송출은 프레스센터가 있는 고려호텔의 조그만 방에서 민화협 관계자들이 모니터 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조선 중앙텔레비전방송과 KBS가 송출 키사가 되어 망을 구축했고 서울에 있는 프레스센터에서 영상을 수신했다.

   북측에서는 평양시내의 스케치도 못하게 할 정도로 취재를 극도로 제한했고 취재 기자들의 스탠딩도 호텔 앞 인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통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남쪽의 프레스센터에서는 들어오는 영상으로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HD로 취재된 영상은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방송을 거쳐 송출되면서 화질이 SP급으로 다운되어 송출되었다. 회담 23일 동안 영상기자 3진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여섯 벌의 HD 카피본을 만드는 것이었다. 남한에 복귀하자마자 각사는 특집 뉴스를 계획하고 있었고 송출된 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아 각사에 원본을 나누어 주어야 했다. 나를 포함해 3진들은 23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정상회담 외에도 대통령은 남포 갑문과 평화자동차를 방문했다.

   둘째 날 점심엔 수행원과 기자단을 옥류관에 초대해 오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옥류관 냉면은 평소 평양냉면을 좋아했던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맛을 안겨 주었다. 옥류관의 접대원들은 장군님 방식이라며 면발에 식초를 두르고 육수에 겨자를 푸는 방식을 알려 주었다. 옥류관은 대동강 변에 자리 잡고 있어 아름답게 흐르는 대동강의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저녁에는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위한 아리랑 공연 관람이 있었다. 정말 운 좋게도 취재 풀 순번에 포함되어 수만 명이 동원되는 대집단체조 예술 공연인 아리랑을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아리랑은 집단체조를 기반으로 예술 공연의 성격을 가미한 종합 공연이다. 민족의 고난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소재로 하면서 아리랑 민족의 고난을 희망의 아리랑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수만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퍼포먼스도 놀랍지만 기예에 가까운 묘기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복귀하는 길에 귀가하는 학생과 주민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보면서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공연을 위해 수만 명이 고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일정 마지막 날인 2007104일 오후 1, 평양 백화원 초대소 영빈관에서 남북 정상은 6·15 남북 공동선언에 기초한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한 ‘2007 남북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그리고 평양시민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다시 한번 육로를 통해 남한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통령과 수행원, 취재진은 중간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개성공단을 돌아보고 북한의 노동자들과 파견 나온 남한 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임진각에 마련된 무대에서 대국민보고 형식의 발표를 하고 난 뒤 청와대로 돌아왔다.

   북한의 평양에서 보낸 34일은 영상기자로써 보낸 20년 그 어느 순간보다 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생소한 광경이나 사람들 그리고 역사적 순간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석양을 보면서 통일의 태양으로 떠오를 것 같은 기대감이 들 정도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이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두 번의 정상회담의 성과는 멈추어졌다.

   이번엔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속적으로 만나고 대화해서 결국에 통일의 초석을 다져가는 정상회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병국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