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유람선 사고 취재기] 화려함 아래 잠긴 슬픔

by KVJA posted Sep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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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아래 잠긴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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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뉴브강의 야경<사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의 알람을 끈다. 자연스레 화면의 연합뉴스 속보 알림을 읽는다. 지난 5월 30일 아침, 헝가리 다뉴브 강의 유람선 사고, 승객은 모두 한국인들임을 알리는 속보가 떴다. 기사를 읽고 나는 무거운 맘으로 눈을 떴다. 선박 사고, 하면 으레 세월호가 생각난다. 당시 긴 시간 팽목항에 머물며 많은 슬픔을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떠나간 아이들, 그 위에 겹치는 유족들의 모습. 다뉴브 강 소식을 듣자마자 내 뇌리에 먼저 스친 것이다.

 

 헝가리는 직항이 없어 언론사 대부분이 한 군데씩은 경유해 헝가리로 입국했다. MBN 취재진은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서 들어갔다. 헝가리에 입국하기 전, 적은 취재인원으로 어떤 사안을 우선에 두고 취재해야 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론은 역시 현장에 답이 있으리라, 하는 것뿐이었다.

 

 헝가리에 도착해 사고 피해자 가족들의 입국 영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공항에는 내외신의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 중이었다. 가족들이 입국하는 상황에서 가장 신경쓴 것은 거리였다. 가급적 근접 취재는 피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이동 중에 얼굴을 가렸다. 현지에서 이미 취재진으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국은 유족 취재 시 조심해 달라는 브리핑을 했다. 우리 취재진은 유족에 대한 취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서도 유족에 대한 취재지시가 전혀 없었다. 대신 침몰 사고 현장 속보, 수색 상황, 피해 선사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취재 관행 상 큰 변화라고 할 만한 부분이었다.

 

 사고 현장은 실종자 수색 작업과 허블레니아호 인양 준비에 한창이었다. 헝가리 군함을 모선으로, 작은 보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MNG 현장 연결 모습이 포착되었다. 머르기트 다리 위에는 검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헝가리 시민들은 꽃과 촛불로 추모를 이어갔다.

 

 침몰 사고의 초기 주요 취재 포인트는 수색이 이루어지는 침몰현장과 정례 브리핑이 이루어지는 신속대응 본부 2곳이었다. 그 이외에 하류 수색 현장과, 실종자들이 발견돼 현장감식이 이루어지는 곳 등이 더 있었다.

 

 우리는 사고 현장을 우선적으로 커버하고 현재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실종자들이 발견된 하류 지역을 집중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당국의 수색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실종자 수색 현장을 커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아도니 지역과 굴츠라는 지명이 사고 현장에서 55km가 떨어져 있다는 것. 취재진은 현지인 코디와 함께 물어물어 어렵게 실종자들이 발견돼 현장 감식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실종자들은 인양 후 현장 감식이 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착 직후 감식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후 부다페스트로 복귀하려다가 아직 당국에서 브리핑하지 않은 추가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입수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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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자가 발견된 아도니-굴츠 지역<사진>

 

 한참 수색이 이루어지는 동안 선박 인양 시점은 주요 관심사였다. 현장과 언론에서는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 했지만 기약이 없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양을 위한 클라크 아담호는 수심이 내려가지 않아 다뉴브강의 다리를 통과하지 못해 현장 도착이 미뤄졌다. 유속이 빨라 잠수사들의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클라크 아담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제 곧 인양이 시작될 터였다. 인양을 앞두고 헝가리 대테러청에서 인양 현장이 잘 보이는 곳을 언론사에 개방하되 출입인원 제약을 두겠다고 했다. 인양 취재를 위한 협회사 간 풀 구성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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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블레니아호 인양 위치풀<사진>

 

 각사가 인양 시간대 특보를 준비 중이었다. 결론은 인양 장소를 둘러싼 위치 풀이었다. 또 허블레니아호 인양 시 MNG송출로 5개 사가 모든 영상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인양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이 짧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배터리, MNG의 전원, MNG 유심 용량 등이 문제였다. 배터리 문제나 유심 교체로 인해 송출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생방송 중 인 화면이 블랙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 취재팀과 서울 제작진 간 충분한 협의와 약속이 필요했다. (실제로 인양은 8시간 가까이 걸렸다.)

 

 풀 구성을 논의하고 인양을 앞두고 서울에서 출발한 교대팀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인양을 지켜보고 취재하고 싶었지만 선발대에게 예정된 취재는 여기까지였다.

 

 귀국을 앞두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사고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풍경이었을지 모르는 풍경이다. 통행금지가 풀린 다뉴브강에는 유람선들이 유유히 떠 있었다. 세체니 다리와 부다성,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역설적이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다뉴브강 아래 잠긴 슬픔이 너무 컸다.

 

 

임채웅 / MBN    임채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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