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74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Ⅰ>

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우리가 하는 일,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어야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대형 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장에서도, 또 사건 유가족 취재와 같은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픈 현장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일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커다란 사건사고의 현장을 정신없이 취재하는 동안 마음에 슬그머니 떠오르는 생각, 내가 저 사람들의 슬픔을 이렇게 한 발 물러나서 카메라에 담고, 저렇게 안타까운 사건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내가 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도 매순간 떠오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너무 큰 비약이지만, 항상 터지는 일들과 각종 사연들 속에서 냉정하고 공정하게 영상취재를 함으로써 우리의 존재가치를 종종 느끼게 되곤 하니 마음이 굳세지 않고는 자칫 회의감에 상습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일이 바로 우리의 일이다.

 설 명절의 끝자락에 주간 근무와 야근이었다. 다행히 연휴 중간에는 근무가 없었기에 고향에 다녀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근무를 섰다. 연휴 마지막에 큰 사건이야 있겠냐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급히 장비를 챙겨서 나가는 동안에도 숭례문 일대 어딘가에서 그리 크지 않은 불이 났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향해 올라가는데 정말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어.. 하는 동시에 차에서 내려 현장을 영상취재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래도 그나마 연기만 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스케치를 했다. 수많은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이 쉬지 않고 물을 뿌렸다. 연기가 잠잠해질 즈음 숭례문 안쪽으로 소방관들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진화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얼어서 미끄러운 계단을 올라가서 내부 모습을 잠시 스케치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현장이 흘러가더니 이제 불이 곧 잡힐 듯 보였다. 연기도 잦아들고 있었다. 내심 그래도 정말 이만하기를 다행이라며 이후 어떤 그림을 취재해야 좋을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근근이 끊이지 않던 연기가 점점 심해지고 결국 크레인에 올라탄 소방관들이 숭례문 현판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지붕 내부에 있던 불을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숭례문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을 보존하기 위해 떼어내기로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작업하는 소방관들과 현판을 주시했다. 크레인이 좌우로 움직이며 작업한 지 오래지 않아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숭례문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인들의 현장 접근을 막던 의경들도 깜짝 놀라 떨어진 현판을 쳐다봤다. 나 역시 레코딩 불빛이 들어온 뷰파인더를 보면서도 아- 하는 소리를 낮게나마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얼마 후부터 시뻘건 불길이 2층 누각 틈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낼름거리는 뱀의 혀에 비유한 불길의 모습 그대로였다. 흰 연기가 아니라 짙은 회색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외곽에서 취재를 하면서 정확한 진화 상황을 그때그때 알 수 는 없었지만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숭례문 지붕의 구조를 당시 자세히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많은 물을 뿌려대는데도 안쪽의 불길을 잡지 못하는 모습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 많은 소방관들의 노력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과 마음 졸이며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센 불길은 숭례문 2층 누각을 집어삼켰다.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이게 정말 현실에서,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한참을 타던 숭례문은 결국 한 귀퉁이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기의 얼굴 같은 현판을 떼어낸 숭례문이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없던 화재현장에서 숭례문 현판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덕분에 회사에 입사한 이 후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많은 선배, 후배들이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다. 운이 좋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받았음에도 현장에서 화재를 취재할 때도 회사에 들어와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움이 조금 남아 있었다. 숭례문이 전소되는 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뉴스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그 아픈 현장을 마음속으로만 걱정하며 지켜봐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밤 내내 나는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직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단단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허무함 또한 그 안에 함께 있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슬프고 아쉽고 힘든 현장들을 취재하는 일들이 있기에 항상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숭례문은 그렇게 아쉽게 보냈지만 그 마지막 모습을 내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줬다는 뿌듯한 마음 때문이다. 숭례문의 현판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비통한 모습을 나의 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동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


  1. 4.11 총선 취재기- 12월 대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4.11 총선 취재기 12월 대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4.11 총선은 새누리당 승리, 민주통합당 참패, 통합진보당 중간성적표, 자유선진당 몰락, 무소속 부진, 국민생각/진보신당 국회입성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야권의 두축이라 할 수 있는 민주통합당...
    Date2012.05.04 Views10722
    Read More
  2. No Image

    4.11 총선 취재기 - 국회 4진

    411 총선 취재기 -OBS 김영길<국회 4진>- 갑자기, 모든 소음은 사라진채 3! 2! 1! 의 카운트가 끝나고, 탄성과 탄식이 들려왔다. 19대 총선의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들고 고된 총선을 마치며 마음 한편으로는 시원함과 아쉬...
    Date2012.04.28 Views4128
    Read More
  3. 남극,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남극 취재기 남극,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한국을 떠나 순수 비행시간으로만 33시간 만에 칠레 최남단의 도시인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했다. 정말 멀고도 먼 곳이었다. 푼타아레나스는 남극대륙으로 향하는 여행자나 취재진들이 대부분 경유하는 칠레의 작은 ...
    Date2012.02.22 Views11360
    Read More
  4. 브라질 칠레 취재기 - 무역 1조원시대 취재기

    브라질 칠레 취재기 - 무역 1조원시대 취재기 1월 9일 저녁 19시, 몸이 안 좋았던 나는 퇴근길 버스에 올라 아내에게 오늘 저녁은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약 10분이 지난 후 부장으로부터 현 위치와 전자 여권이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
    Date2012.02.18 Views11148
    Read More
  5. 한국시리즈 취재기 - 삼성 vs SK

    지난 10월23일 부산 사직구장 전날 내린 비로 인해 하루 연기되었던 2011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5차전, 정규리그 2위팀 롯데와 준플레이오프에서 기아를 물리치고 올라온 SK의, 한국시리즈를 위한 막판 승부. 이 두 팀 중 이기는 팀만이 대구행 티켓을 받겠지...
    Date2011.12.27 Views10704
    Read More
  6. 서울시장선거취재기 - ‘시민이 시장이다’ 박원순 시민단체에서 시청으로

    서울시장 선거 취재기 ‘시민이 시장이다’ 박원순 시민단체에서 시청으로 세종문화회관 한 카페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교수가 들어왔다. 서울시장 후보 물망에 오르던 안철수 교수는 이날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박...
    Date2011.12.27 Views11965
    Read More
  7.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달구벌 뜨거운 열기에도 나의 열정은 식어있었다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달구벌 뜨거운 열기에도 나의 열정은 식어있었다. A, “야! 가지고 있는 카메라, 망원렌즈, 트라이포드, 스트로보 모두 꺼내고 짐이 많은 것 처럼하고 뛰어 들어가자.” B, “입구는 한 곳인데 경찰이 저렇게 열을 지어 있는데 저기로?...
    Date2011.11.18 Views11445
    Read More
  8. 북극취재기 - 가장 신선한 경험은 '반복'에서 나왔다

    북극취재기 어린이들에게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뽀통령’ 뽀로로 못지않게, 그 만화의 다른 캐릭터들-크롱, 루피, 에디-의 인기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5살짜리 우리 꼬마에게는 포비가 그러하다. 워낙에 매니악한 수준이라 인형, 장남감 등은 거의 컬렉션 급...
    Date2011.11.18 Views10709
    Read More
  9. 춘천 산사태 취재후기 - 여기서 먹고살아야지 어디를 가나?

    춘천 산사태 취재후기 7월 27일 AM 12:40 늦은 시간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불길한 예감에 전화기를 들여다본다. 취재기자의 전화. 심상치 않게 내리던 비에 깨어있던 터라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별 피해도 없는데 괜히 가는 것 아냐?” 볼멘소리를 해보지만...
    Date2011.11.18 Views11321
    Read More
  10. "태풍 무이파" 영상 취재 24시

    "태풍 무이파" 영상 취재 24시 무이파 (태풍 번호: 1109, 국제 명: MUIFA)는 마카오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서양자두 꽃을 의미한다. 이 아름다운 꽃말의 태풍은 클레오파트라의 치명적 매력만큼 위력은 엄청났다. 2011년 서태평양에서 발생한 9번째 태풍으로, ...
    Date2011.11.17 Views10864
    Read More
  11. No Image

    유비무환 (有備無患), 위험지역 취재 문제없다!!

    유비무환 (有備無患), 위험지역 취재 문제없다!! KBS 위험지역 취재·제작 연수를 다녀와서 “임마! 일하러 나가면 항상 몸 조심하구! 알았지?”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듣는 말이다. 걱정 마시라며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편...
    Date2011.11.17 Views4246
    Read More
  12.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취재 후기

    돌잡이로 ‘초심’을 잡아본다!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취재 후기- 뜻밖의 만남 “형!” 누군가 날 형이라 부르며 내 팔을 건드렸다. 집회 현장에서 날 형이라 부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웬걸. 대학교 후배였다. 반값 등...
    Date2011.08.05 Views11950
    Read More
  13. 평창올림픽 유치 취재기(남아공 더반)

    감격의 순간을 담느라 감격을 억눌러야 했다 평창,,,, 자크로케 IOC위원장의 발표순간 모든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평창 서포터스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기자단 숙소인 리버사이드 호텔에 마련된 야외 응원 장소에서 취재중이던 나...
    Date2011.07.22 Views11100
    Read More
  14. No Image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취재기(평창) 꿈은 현실이 되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이 열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쿨러닝> 혹은 800만 이상의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국가대표>를 관통하는 주제는 동계 스포츠에 소외된 이들의 현실 극복이다. 대한민국 평창이라는 곳 역시 그간 동계올림픽에 소외되었다. 하...
    Date2011.07.22 Views4629
    Read More
  15.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 우리는 행복한 곳에서 산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2011년 3월11일 15시30분쯤,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 “지금 인터뷰하러 서강대에.....” “너 지금 일본가야 하니깐 그냥 빨리 들어와...
    Date2011.05.21 Views11211
    Read More
  16. 중계차 줄행랑사건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동북부 지역 취재를 마치고 영상송출을 위해 영사관이 있는 센다이 시내로 복귀하는 길. 로밍서비스를 통해 휴대폰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다. “현지 중계차 철수로 송출 불가. 각자 현 위치에서 가능한 인터넷 송출 방법 강구 바...
    Date2011.05.21 Views10596
    Read More
  17. No Image

    리비아 전쟁취재기-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했다

    인트로 얼마 전 선배로부터 리비아 취재기에 대해 글을 써줄 것을 요청받았다. 다녀온 지 두 달이 넘어가고 갑작스런 일이어서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중동 출장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길게 출장은 다녀왔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
    Date2011.05.21 Views4982
    Read More
  18. 이집트 출장 지원자를 받습니다.

    이집트 출장 지원자를 받습니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일상의 아침은 짧은 문자와 함께 요동쳤다. 무라바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그 시점이었다. 기자로서 이런 역사적 순간에 국제적 수준에서 취재할 수 있다는 것...
    Date2011.03.26 Views11967
    Read More
  19. 아덴만 여명 작전 -삼호주얼리호 취재

    이국의 바다에서 삼호주얼리호를 만나다 오만의 바닷가는 ‘클린스테이트’를 지향한다는 그들의 말 만큼이나 푸르고 깨끗했다. 한국대사관과 무스카트항을 몇 번씩 오가며 삼호주얼리호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사살된 해적들의 시신처리와 생포된 해적들의 인도...
    Date2011.03.22 Views10807
    Read More
  20. 아프리카를 가다

    마지막 기회의 땅 - 아프리카를 가다 설레고 긴장하며 아프리카 취재를 준비했다. 남아공, 콩고, 우간다, 에티오피아, 카메룬, 케냐, 빠듯한 17일간의 여정이 시작된다.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는 깨어나고 있었다. 나의 첫 번째 목적지는 남아...
    Date2011.03.22 Views10449
    Read More
  21. 맷값 폭행사건과 재벌2세

    ‘chaebol’ 위키피디아 영영사전에서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땐 단어의 뜻을 잠시 고민 했었다. 발음그대로 읽으면‘채볼(?)’이라고 발음되어지는데, 한글을 영어로 고유명사화 시켰다는 정보로 단어를 유추한 필자는‘체벌을 한국의 교육방식 중 하나’라고 여긴...
    Date2010.12.16 Views1232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