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예성여고 여섯시간의 인질극

by 김준수 posted Feb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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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 인간 터미네이터 그들을 보았다. 검은색 방탄조끼에 소형무전기, 한 손엔 가스총, 다른 손엔 방망이. 세상 어떤 범죄와의 싸움에서 이길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터미테이터 들이 충주예성여고 인질 사건에 투입된 것이다.
3월17일 토요일 화창한 날씨였다. 퇴근 후에 여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전 10시쯤 전화가 왔다. 예성여고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쉽지가 않은 취재라 생각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과의 싸움이 시작됐고 조금이라도 정확하고 좋은 그림을 촬영하기 위해 기자들 또한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 또한 인질 사건은 처음 경험이라 분주하게 움직일 뿐 제대로 된 그림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긴장이 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멍청이가 된 것이다. KBS가 움직이면 같이 그리로, MBC가 가면 또 그리로. 냉철하고 판단력 빠르다는 나로서도 그 이상한 분위기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방송 3사 TV기자들은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나 또한 어차피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는 물 건너간 것이고 내가 이기나 인질범 네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뚝심밖엔 안 생겼다.
경찰관, 부모, 친지 등 많은 사람들에 오랜 설득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네 명의 여학생과 한 명의 여교사를 인질로 자신의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500만원을 사기 당했다는 것이고 그 사기범을 당장 잡아서 자신 앞에 보여 달라는 황당한 조건이었다.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과정이야 어쨌든 500만원 때문에 이런 짓을 한 27세의 젊은 청년을 몹시 미워했고 빨리 상황을 종료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교실밖엔 KBS, MBC 중계차가 출동하여 만약에 있을 상황에 대비하여 생방송 준비에 한참이었다. 이렇게 까지 해도 되는 건가. 뭐 그리 큰 사건이라고 기자인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교실 밖 상황들은 나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여섯시간 오랜 설득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인질범을 그대로 볼 수 없다는 현장 경찰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네 명의 인간 터미네이터(경찰특공대) 그들이 투입된 것이다. 사전에 꼼꼼한 계획과 치밀한 작전이 기습작전 5분만에 인질극을 종료하게 했다. 범인은 즉시 경찰서로 이송됐고 공포에 떨었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아무사고 없이 부모의 품에 안겨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나는 인질극을 벌인 범인의 이면을 알 수 있었다. 평상시 효자로서 순박하게 생활하는 시골 청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분명 그가 지은 죄는 나쁜 것이다. 하지만 순박한 청년이 왜 그런 짓을 해야 했느냐에 대해선 우리는 어느 누구도 그의 이면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그를 사기 쳐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을 세상과 우리들은 욕할 뿐이다.
인명 피해 없이 여섯 시간 만에 모든 일은 끝났다. 허무한 생각도 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작년에 구제역에 이어서 올해는 인질극으로 충주 지역은 전국적인 관심을 보였다. TV카메라 기자로서 일년에 한번씩 굵직한 뉴스를 경험하는 것도 복 받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는 아직도 멀었는데 내년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편집 끝내고 뉴스 잘 나가고 21시가 넘었다. 골난 여자친구에게 전화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