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러브호텔

by 유민철 posted Feb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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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러브호텔을 돌아보고 ( 2000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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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영상 취재부 유민철 기자



지금 고양시에서는 러브호텔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시에서는 화들짝 놀라 이미 내 준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하고 주민들은 그걸로는 안 된다며 납세거부운동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일본 러브호텔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정확히 러브호텔 '규제실태'를 취재하고 왔습니다. 짧은 시간 설명과 화면만으로는 비교가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보충설명을 적겠습니다.

KBS 뉴스 홈페이지 오프더레코드에도 올려놨으니까, 그쪽이 읽기 편하실 겁니다.

= 단칼에 없애지 않는다 =

뉴스에서 보셨겠지만 (일본 신주쿠나 시부야에서) 학교, 주택가와 러브호텔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 직선거리로 2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일산의 경우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이차선 차도 하나를 사이로 주택가와 상업지구로 나뉘어져 있고 주택가에서 이백미터도 안 떨어진 상업지구에는 러브호텔이 들어서도 됩니다. 서울보다 훨씬 복잡, 조밀하고 땅값이 훨씬 비싼 동경과 서울, 일산을 물리적인 거리로 비교하는 것은 러브호텔 규제실태를 파악하는 데에 소용이 없습니다.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러브호텔의 사회적 기능이 한국과 다르다는 점도 일대일 비교가 곤란한 점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일단 러브호텔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일반여관과 '러브호텔'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와 다른 점입니다. 우리 뉴스에서 '러브호텔을 허가해준...', '러브호텔 허가 취소를 요구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엄연히 잘못된 문장입니다. 왜냐면 우리나라엔 애당초 러브호텔이 없기 때문입니다. 외부 장식도 다르고 - 안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 일반 숙박객이 머물기엔 좀 이상한 장소에 들어선 여관들이 '러브호텔'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러브호텔 취재를 하면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일산의 초등학교 앞 러브호텔 소동과 똑같은 일이 일본에서는 이미 1957년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40년이나 뒤진 게 하필이면 러브호텔이라니...
1957년 도쿄시내 '하토모리'라는 초등학교 앞에 러브호텔 10여개가 들어섰습니다.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그 러브호텔들은 일년을 못 가서 문을 닫고 맙니다. 이후 시민들은 시위등 지속적인 영업방해를 펼치고 관공서, 경찰등은 끊임없는 감시로 새로이 들어서는 러브호텔을 견제합니다. 이렇게 40여년을 지나는동안 러브호텔에 관한 법률은 추가와 수정을 거듭하면서 아주 세련되게 다듬어집니다.
일본에서 러브호텔이란 풍송영업법의 규제를 받는 숙박업소를 말합니다. 일반여관과 소위 '러브호텔'이 분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와 다른 점입니다. 천장에 거울이 붙어있다거나 회전하는 침대가 있다거나 길에서 현관이 안보이는 등의 호텔들은 풍속영업법의 규제를 받는 소위 '러브호텔'로 분류가 되고 일반 호텔/여관과는 다른 규제를 받게 됩니다. 외관에는 간접조명시설만 사용해야 하고 경찰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 동의나 영장 없이 검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경찰에서는 러브호텔을 필요악 같은 걸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러브호텔이 대략 유부남, 유부녀들의 불륜의 장소로 인식되어 있는데에 비해서 일본에서는 그 기능말고도 젊은 남녀들의 만남의 장소, 일부 매춘의 기능까지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우리 나라와 달리 공개적인 매춘장소가 없는 일본에서 러브호텔이 각종 범죄를 줄이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에 철저히 경찰의 통제권안에 놓겠다는 겁니다. 경찰은 러브호텔 업주를 6개월 마다 경찰서로 혼자 불러 각서를 받습니다. 풍속영업법의 테두리로 정해진 사항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지만 매춘을 안하겠다는 등의 법으로 정해진 불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합니다. 엄정하기로 이름난 일본 경찰과 독대를 하는 것 자체가 업주들에겐 대단한 부담이라고 합니다. 이 각서는 나중에 법정시비가 되었을 때 업주를 꼼짝 못하게 하는 단서가 됩니다.
일단 주택가에 러브호텔이 들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시민이나 공무원이나 한결같이 말합니다. 지도를 펴놓고 학교와 직선거리로 100미터면 100미터 - 학교의 운동장 중심부터가 아니라 학교의 담벼락 모서리에서부터 호텔의 담벼락 모서리까지를 말합니다. 겹치면 허가가 안나옵니다. 심지어 시전체에 러브호텔을 불허하고 있는 도시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업지구에라도 문을 연 러브호텔들은 위에서 얘기한대로 귀찮을 정도로 지속적인 견제를 받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때마다 조례를 바꾸던지 시행령을 바꾸던지 S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러브호텔을 새로운 법규로 규제합니다.
일본의 러브호텔 관련법이 세련되게 다듬어졌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만큼 시정할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도 되는 것입니다. 외국인 매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고 혼자 들어와서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골치를 썩기도 한답니다. 담당공무원의 얘기는 '한 칼에 치려고 하지마라. 불가능하다. 지속적인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허가를 취소한 한국의 예를 얘기해주자 반색을 하며 '그걸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검토해 보았지만 법정으로 갈 경우엔 100% 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는 할 수 없다'
40년전 시위에 참가했던 마을 노인의 얘기도 '쉽게 안 없어진다.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반대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심스러운 일본인들의 성격과 맥을 같이하는 얘깁니다. 주택가에 들어서 있는 기존의 러브호텔들은 새로이 개정되는 풍속영업법에서 규제를 받습니다. 합법적으로 영업을 계속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 자체가 매우 피곤한 일이 됩니다. 결국 많은 러브호텔들이 문을 닫고 전문학교, 노상주차장등으로 용도전환을 했습니다. 존재를 인정해주고 법적인 테두리도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사실은 철저히 통제권 안에 놓고 지속적으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업주가 제풀에 지쳐 떨어지게 하는 어찌 보면 더 무서운 방법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배경조건이 공무원과 경찰의 거의 완전한 청렴입니다. 과자 한 조각도 안받는 다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법에 정해진 권한 안에서는 최대한으로 법을 행사합니다. 경찰과 업주와의 유착관계는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면서 러브호텔을 규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지금 일산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교를 마주보는 아파트 주택단지에 '이상한' 여관이 들어선 것은 일단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업주 입장에서는 사유재산 침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나 러브호텔 전업을 희망하는 여관들이 생겨날 텐데 그 때 마다 시위와 납세거부 운동으로 그 여관들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은 러브호텔을 당장이라도 부술 듯이 시민들도 반대운동을 하고 있고 언론도 동참하고 있습니다만 이게 언제까지 계속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때 그 때 마다 분노의 정서에 바탕을 둔 반대시위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합법적인 규제 - 업주가 꼼짝 못하는 - 방법이 생기고 공무원, 시민들의 '지속적인' - 이게 중요합니다 - 반대운동과 규제가 있어야만 우리가 우려하는 러브호텔의 문제점을 막을 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러브호텔이라는 막연한 개념이 구체적인 실체로 자기 자리를 잡게 된다는 또 다른 문제 - 법적이라기 보다는 사회통념, 윤리상의 문제 - 가 새로이 생겨나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