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취재기2

by 김상하 posted Feb 24, 200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No Attached Image

칠레는 12월 12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현 대통령은 프레이. 후보는 좌파계열의 리까르도 라고스와 우파계열의 호와낀 라빈 두명이었다. 주선생으로부터 들으니 서민층에서는 라빈을, 중산층 이상에서는 라고스를 지지한다고 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산티아고의 시민 운동장이었다. 그곳은 라고스의 선거 유세가 예정돼있었다.



< 라고스의 유세 선전물 : 거의 실제 크기 >

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몇시간 전부터 유권자들은 자리를 매우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구성된 유세원들이 전통음악에 맞춰 살사 춤을 추며 입장하는 유권자들을 맞았다. 유세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마을의 축제 같았다. 질서정연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원봉사자들의 자신의 임무에 따라 분위기를 돋우고, 물품을 팔고, 전단을 나누어줬다. 우리가 취재의사를 밝히자 흔쾌히 도와주며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우리가 취재하려 한 것은 세계의 선거 모습이었다. 남극 취재 프로그램에 사용할 것은 아니었고, 1999년 말 세계 각지에서 실시된 선거의 모습을 취재해 보도하려는 또 다른 특집 프로그램을 위해 칠레쪽을 맡아 취재하는 것이었다.

유세장에서도 남미인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그대로 표출되었다. '아메리칸 사운드'라고 하는 칠레 최고의 밴드가 유세 전에 나와 남미 특유의 음악으로 청중의 흥을 돋구자 모두 일어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하고 라고스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한 시간 여의 사전 공연이 환호 속에 끝나자 각계 인사들의 지지 연설이 이어졌다. 칠레의 유세와 우리 나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 단위의 청중들이 많았다는 것. 자원봉사도 가족 단위 참여가 많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참가하여 한바탕 축제를 만끽했다. 지지자들의 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라고스가 등장. 관중은 열광했고 후보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환호했다. 세시간 여의 행사 내내 라고스를 지지하는 열정으로 청중들은 하나가 되었다. 행사중 선관위 직원들을 인터뷰했는데 전통적으로 유세에 선관위는 별로 개입을 안하며 와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산티아고 거리 곳곳에는 두 후보의 선전물이 경쟁하듯 널려있고 개인 집의 담벼락에도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크게 써놓기도 했다.

한바탕 유세가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사람들은 한차례 재밌는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선관위 직원들과 인터뷰하고 있는데 칠레의 방송 취재팀이 우리를 취재하기도 했다.

세시간여의 취재로 얼굴, 이마는 벌겋게 타버렸다. 산티아고의 전경을 위해 산크리스또발(St. Columbus) 산에 올랐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산같은 산인데 산티아고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빌딩과 아파트가 숲을 이룬 신도시와 개발이 필요해 보이는 구도시의 차이는 뚜렷했고 멀리 안데스의 만년설도 보였다.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는 한 칠레인은 예전에 비해 안데스의 만년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고 우리는 만년설을 배경으로 그를 인터뷰했다.

저녁에는 세종기지 13차 월동대원들과 함께 칠레 전통 음식을 먹기로 하고 주선생이 예약해놓은 '로스 아도베스 데 아르고메도(아르고메도의 기와집)'라는 음식점으로 갔다. 넓직한 것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전문으로 맞는 음식점 같았다. 우리는 '빠리자다'라는 칠레 전통음식을 주문했다. 소고기의 각 부분을 신선로 같은 그릇에 담아, 데우면서 먹는 독특한 음식이었다. 우리는 삐스코 샤워라는 술로 목을 축였다. 잠시후 사회자가 나와 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소개하며 그 나라의 말로 간단하게 환영인사 해 주었다. 주선생이 사회자에게 미리 얘기해 뒀는지 사회자는 우리 팀을 부르더니 꼬레아의 월동대라고 소개하고 곧 남극으로 간다고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잠시후 칠레 전통 춤이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춤이라고 해봐야 짝을 이룬 남녀 10쌍 정도가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빙글빙글 돌면서 박수 치고 손수건을 머리위로 돌리고 하는 것이었다. 간단한 공연이 끝나자 무용수들이 무대 밑으로 내려와 손님들을 무대위로 끌고 올라갔다. 전통의상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다시 음악이 흐르면서 아까와 같은 춤을 추었다. 간단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에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들 흥겨워하며 춤을 추는 사이 같은 공연이 몇 번은 반복되었다. 식사 후 월동대원들은 곧있을 1년간의 연금 생활을 의식했는지 모두가 한마음이되어 술집으로 향했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다음날 오전 11시 우리는 산티아고 공항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의 땅끝 마을 푼타 아레나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