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촬영장비 준비

by 이승준 posted Jul 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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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촬영장비 준비

■ 강의제목에 대한 소고


먼저 이 방북 취재기의 제목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할까 합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이것이 이번 연강의 제목인데 제가 평양에 7박 8일 동안 머무르면서 본 수많은 구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시다시피 평양은 구호의 도시라 할만큼 각종 구호들이 온 거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몇 가지 생각나는 걸 들어보면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다"는 소위, 영생구호가 가장 많이 눈에 띄고 다음으로는 "혁명의 심장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등등...


그 중에서도 특히 제 시선을 사로잡은 구호가 바로 이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였습니다. 최근의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집단주의적 성격을 잘 나타낸 구호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딱딱하고 강성일변도의 구호들 중에서 유독 그 구호만이 여유가 있어 보여서 눈길을 끌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마 그 구호의 효험을 가장 크게 본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취재팀일겁니다. 사실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만큼 일이 잘 안 풀려서 고전을 했거든요. 일이 꽉 막혀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갑자기 그 구호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그래, 가는 길 험해도 이들처럼 웃으며 가자, 그러다 보면 뭔가 돌파구가 보이겠지... 정말 겉으로는 희망이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지금까지 이렇게 꾸려가고 있지를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마음을 좀 편하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구호는 그들의 자존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북한사람들의 자존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자존심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고르바쵸프의 등장과 소련의 개방정책,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주의 맹주인 구 소련의 붕괴, 그리고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동구 공산권의 붕괴에도 굳건히 사회주의 체제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는데서 오는 자존심입니다. 중국마저도 시장경제체제로 편입되고있는 이 시점에서는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가지는 자존심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평양에서 일을 할 때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선물을 주거나 금전적인 지원을 할 때도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잘 찾아서 해야지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남북간의 일은 상대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자존심 강하고 어떨 때는 막무가내며 또 까다롭기까지 한 상대 말이죠.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사고구조를 가진 사람들하고의 일에는 "이해와 인내" 말고는 달리 무기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방북취재를 계획하는 방송인들에게 이 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말은 꼭 해주고 싶었기에 이번 강좌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 ENG카메라 기종 선택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장비, 특히 그 중에서도 카메라 준비 이야기부터 해야지요. 우선 제가 실패한 경험담부터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물론 이건 작년 8월의 상황입니다만 아마도 그사이 북한의 사정이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 때의 경험이 아직 유효할 것입니다. 작년 8월에 MBC에서는 이미 DIGITAL BETACAM ENG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취재팀도 당연히 일본 SONY사의 NTSC방식 DIGI-BETA CAMERA를 주 카메라로 챙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평양에서 일이 생겼습니다. 북한에서 촬영한 모든 화면은 그날그날 북측 안내원의 검열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편해 하는 장면은 아예 삭제를 하고 돌려줍니다. 주로 삭제 당하는 화면의 종류와 또 우리가 촬영한 화면을 일일이 검열을 해야하는 그들 나름의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떤 때는 해도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30분 TAPE 한 권이 몽땅 다 지워져 돌아올 경우도 있다하니 알만 하시겠지요. 그만큼 남쪽에서 촬영한 화면에 대해서 평양사람들은 민감하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평양에는 DIGITAL BETACAM ENG장비가 없다는 겁니다. 즉 우리가 촬영한 화면을 그들이 전혀 검열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은 그들에게는 상상도 못하는 일인데 그게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겁니다. 안내원들이 매우 당황해한 것은 물론이고 당장 우리 취재팀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디지털 ENG카메라가 북측 안내원들과 취재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신을 조장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취재팀의 몫으로 돌아왔지요. 곧바로 취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돌아선 안내원들에게서 그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북한의 사정상 가끔 한번씩 있는 남쪽 취재팀 검열을 위해 그런 고가의 장비를 구입한다는 게 무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팀이 디지털 ENG를 최초로 평양에 가지고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도 아무런 준비를 못했던 겁니다. 화질에 대한 작은 욕심만 앞섰지 상대방의 사정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겁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신뢰가 시작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평양 갈 때는 반드시 아날로그 베타캄 ENG를 가지고 가시라는 말씀! 아니면 사전에 장비에 대해서 충분한 협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시 그 사이에 평양에서 디지털 장비를 마련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리고 예비로 6MM디지털 카메라도 SONY사의 PD150으로 한 대를 준비했습니다. 6MM카메라는 북경공항을 통과하기가 쉽기 때문에 중국 공항에서 촬영거리가 생기면 요긴합니다. 또 평양에서도 여러 가지로 요긴하게 쓰입니다.


■ 북경공항 장비 통과


이제 북경공항에서의 ENG카메라 처리문제입니다. 당연히 관광비자를 소지하고서는 ENG CAMERA를 가지고 북경 공항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북경 공항을 통해서 중국에 들어갈 때 공항 세관원에게 평양으로 출국할 때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ENG를 맡기면 됩니다. 다행히 서울에서 도착하는 비행기와 평양의 고려민항이 같은 청사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보관증을 받아두는 일과 보관을 하는 담당세관원의 이름 정도는 만약을 위해 반드시 알아 두어야합니다.


그리고 평양으로 떠날 때 공항으로 미리 여유 있게 나와서 공항세관원에게 보관증을 제시하고 카메라를 찾으면 됩니다. 이때 출국하는 비행기 티켓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평양행 고려민항을 미리 티켓팅을 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다시 돌려 받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입니까? 중국 아닙니까? 그건 우리 취재팀의 경우였고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그 시간도 충분히 여유 있게 계산해서 공항에 미리 도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돌려 받은 즉시 그 현장에서 파워를 켜서 작동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마셔야합니다.


나머지 장비는 여타의 다른 해외출장과 같이 챙기시면 됩니다. 단지 소모품들은 조금 더 여유 있게 챙겨두시는 게 좋습니다. 가령 마이크용 건전지 같은 경우도 급하게 아무 곳에서나 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오지를 간다고 생각하고 장비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 평양사람들은 까뮈XO와 던힐, 그리고 사진을 좋아한다


이제는 선물이야긴데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선물은 일반 평양사람들을 위한 선물이야기는 아닙니다. 취재진과 항상 접촉하는 북측 안내원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취재도중에 직접 평양의 인민을 만나서 선물은 주고받고 할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측에서도 남쪽 취재진이 인민을 집적 접촉하거나 남쪽의 선물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안내원들에게 전달하는 선물은 물론 그들이 다 차지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의 상급자에게 대부분이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물은 북한의 고위인사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거죠. 그게 바로 꼬냑인데요, 꼬냑 중에서도 특히 까뮈를 좋아하고 또 XO급의 최고급만을 찾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XO급이라면 반드시 까뮈가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는 유명 상표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담배 이야기인데요, 양담배는 던힐을 특히 좋아합니다. 우리가 평양에 도착해서 안내원들과 첫 대면을 했을 때 그들은 당당하게 우리 앞에서 던힐 담배 새 것을 꺼내서 취재팀에게 권했습니다. 아마 이런 것쯤은 우리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줄려면 이런걸 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물어봤더니 실제로도 던힐을 가장 좋아들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간 선물은 한번에 다 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머무는 기간이 8일이니까 적당히 두어번에 걸쳐 나누어주는 것이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만찬을 주최해야하기에 그때 헤어질 때도 적당한 선물이 필요합니다.


아, 그리고 평양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까다롭고 사사건건 우리 행동에 제약을 가하던 안내원들도 사진이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하는 바람에 나는 사진을 찍어주고 카메라맨은 그 사이 슬쩍 촬영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즉석에서 사진이 나오는 폴라로이드형이 더 좋습니다. 가끔은 길거리에서 만난 평양사람들과도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는데 바로 뽑아서 주어야지 언제 우리가 다시 가서 사진을 전해줄 기회가 있겠습니까? 서글프게도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폴라로이드 필름은 서울에서 출국할 때 공항 면세점에서 충분히 여유 있게 구입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10통을 가져갔는데 3일만에 동이나버렸습니다. 그 대부분은 안내원들이 찍었지요.(여기서 말하는 안내원은 민화협 소속 사람들을 말하는데 실제로는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들입니다) 그래서 폴라로이드 필름을 구하느라 덤으로 평양의 백화점을 두 곳이나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파는데 필름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상점에서 서울보다 서너 배는 비싸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카메라의 필름도 충분히 가져가셔야 합니다. 쓰다가 남으면 나중에 가벼운 선물로도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