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2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차량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jpg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3월 11일,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은 전두환 씨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벽부터 연희동 사저의 취재 열기는 극에 달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그를 따라가며 취재할 이른바 ‘추격조’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전두환 씨의 차를 쉽게 따라붙을 수 있을지 위치와 간격, 경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카메라 기자라면 이런 추격 임무가 낯설지 않다. 15년 차인 내 기억에도 전임 대통령의 신상에 주요한 변화가 생겼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추격조가 편성됐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도로 위 차량(혹은 오토바이) 팔로우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반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카메라 기자의 안전 문제(때로 이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취재 윤리, 법 위반 등의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날 내 취재 차량은 타사 차량에 추돌을 당했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복기해 보면, 내가 탄 차량은 연희동을 나와 강변북로, 경부고속도로를 연이어 달렸다. 그리고 천안 - 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쳐 광주에 도착했다. 도로 위 팔로우 경쟁은 연희동을 떠나는 순간부터 불붙었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신문사에 이르기까지 10대가 넘는 차량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위험한 질주를 벌였다. 전두환 씨의 차량 역시 취재진 차량을 피해 거침없이 달렸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서 머무르려고 하다 포기하고 다시 백수십 킬로의 시속으로 곧장 달아나기도 했다.

 

 사달은 광주 시내에서 일어났다. 법원 근처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있는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며 추돌이 벌어졌다. 탑승자 전원이 매우 강한 충격을 느꼈다. 문제는, 그런 사고 상황에서도 한가롭게 차를 세우고 사고 수습을 할 형편이 못됐다는 데 있다. 협회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중 누가 한가롭게 사고 수습을 하고 있을까? 전 씨의 법원 출두 현장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에야 추돌 가해자, 피해자 양측이 만났다.

 

 그날의 피해자는 우리 차량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언제든 가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현재까지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사실은 도로 위 위험한 질주를 해야 하는 한 우리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들이다. 서글픈 일이다.
 

 나중에 차를 세우고 보니 우리 차에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수십여 차례 브레이크를 밟아 패드가 타 버린 것이다. 실제로 광주에 도착할 무렵 제동하려고 할 때 차가 밀리는 현상이 지속됐다.

 

 차량 추적에는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선루프를 열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고 찍을 때 혹여나 브레이크를 밟거나 요철 구간에서 차량이 흔들리면 허리에 강한 충격을 직접 받는다. 규정 속도를 무시한 질주 경쟁은 어느 누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사고는 이제껏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 회사 내에서만 해도 차량 추적으로 인한 사고가 이미 두 차례 있었다. 사고를 당한 후배 기자들은 입원을 했다. 후유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보다, 모두가 간과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런 추격전에서 가장 극도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한 사람, 바로 운전기사다. 우리가 흔히‘ 형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기 일이란 이유 때문에 위험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거의 강제에 가깝게.) 취재 차량들의 선두 경쟁 질주 속에서 급제동, 급가속이 수시로 일어난다. 영상기자가 좋은 앵글을 잡고, 돌발상황을 포착하는 데 충실한 조력자가 되려 이들이 싫든 좋든 과격한 방식의 운전을 하고 있다.

 

 영상취재 자체가 우리 일이고 우리 중 누구도 어느 현장, 어느 상황에서든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험한 차량 추적, 도로 위 팔로윙을 사명감이나 의무감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쯤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무책임하며 비도덕적이다.

 

 이번 전 씨 차량 팔로윙 과정에서 내가 탄 차량의 추돌 사고가 각사에서 꽤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고 점점 더 취재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목숨을 건 외줄타기는 멈춰져야 한다. 사람이 하나 불구가 되거나 죽어야 멈추겠는가? 적어도 우리 협회원사들만이라도 도로 위 불법 추적 취재는 금지하자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언론사 차량의 사고가 일반시민 차량의 2차, 혹은 3차 피해를 부를 수도 있다. 언론사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취재 방식은 하루 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각사의 논의와 합의가 절실하다. 협회원들의 중지, 과감한 결단을 제안 드린다. 

 

 

양두원 / SBS    양두원 증명사진.jpg

 

 


  1.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지난 11월 28일. 가나전이 열렸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 거리 응원 취재를 위해서였다. 광장은 추웠다. 저녁 무렵부터 한두 방울씩 떨어지...
    Date2022.12.28 Views191
    Read More
  2.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다른 언론인의 피해, 나의 취재자유와 안전이 침해 당하는 위기로 공감해야 더 안전하고 좋은 준비와 자원을 가진 언론인들이 더 좋은 품질의 뉴스보도 올해 2월,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제 ...
    Date2022.11.01 Views174
    Read More
  3. “속도보다는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다면적 보도해야… 한·일 저널리즘, 세계적 영향력 갖추길”

    “속도보다는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다면적 보도해야… 한·일 저널리즘, 세계적 영향력 갖추길” 영상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시에, 영상은 매우 위험한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
    Date2022.11.01 Views286
    Read More
  4. “한국 언론인으로서 힌츠페터 정신 인정받아 감사 여권법 개정 통해, 전쟁터, 재난국가에서 한국 언론인 취재 권한 보장되길”

    “한국 언론인으로서 힌츠페터 정신 인정받아 감사 여권법 개정 통해, 전쟁터, 재난국가에서 한국 언론인 취재 권한 보장되길” ▲ 라이펜슈톨 주한독일대사로부터 특집부문 상을 받는 윤재완 독립PD. 2021년에 콜롬비아의 다리엔 갭을 통해 파나마, 멕시코, 미...
    Date2022.11.01 Views255
    Read More
  5.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수상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게 된 건 알 자지라의 도하 본부와 예루살렘 지부를 통해서였고, 한국인 언론인 동료도 수...
    Date2022.11.01 Views202
    Read More
  6. [현장에서] 여전히, 오늘도, ENG. 다시 생각하는 ENG카메라의 미래

    여전히, 오늘도, ENG. 다시 생각하는 ENG카메라의 미래 “ENG 이걸 꼭 써야 되나요?” 영상기자가 장래 희망이라는 한 지망생이 내게 직접 했던 말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들의 눈에 비춰진 ENG는 크고 무겁고 이제는 성능조차 백만원짜리 미러리스에 비해 한...
    Date2022.08.31 Views1771
    Read More
  7. [현장에서] 카메라와 아이디어로 담아낸 현실의 부당함과 저항, 인간의 투쟁이 세상의 조명을 받도록

    카메라와 아이디어로 담아낸 현실의 부당함과 저항, 인간의 투쟁이 세상의 조명을 받도록 저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다 10여 년 전 영상기자가 되었습니다. 콜롬비아 외딴 지역에서 노조와 농민단체들과 일했는데, 엘리트 계층과 외국 회사들에 의한 살인, 살...
    Date2022.07.01 Views265
    Read More
  8. [현장에서]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2021힌츠페터국제보도상’에 참여하게 된 건 동료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제 다큐멘터리를 출품한 적이 없어 수상 경력이 없었습니다. 저는 동료가 요청한 대로 출품 양식을 작성했고, ‘힌...
    Date2022.07.01 Views234
    Read More
  9.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폴란드 국경지역 취재기] 전쟁 속에서 꿈꾼 자유와 평화 (2022.2.17.~3.13)

    전쟁 속에서 꿈꾼 자유와 평화 (2022.2.17.~3.13) 엇갈린 전쟁예측, 다시 역사의 현장 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임박해지면서 위험지역 출장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국경지역 요르단과 쿠웨이트에서 취재 경험이 있는 나...
    Date2022.05.03 Views395
    Read More
  10. [현장에서] 역대 최악의 울진 산불 현장을 취재하며

    역대 최악의 울진 산불 현장을 취재하며 거대한 산불의 화마 앞에 사람도 동물도 모두 아비규환 3월 4일, 동료 취재기자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울진에 산불이 났다는 소방본부 문자를 받았다. 곧이어 전화가 울리자마자 우리는 본능적으로 밥을 신속히 입에 ...
    Date2022.05.03 Views1078
    Read More
  11. 방역올림픽 속 무색해진 ‘꿈의 무대’

    방역올림픽 속 무색해진 ‘꿈의 무대’ ▲베이징 겨울 올림픽의 취재 현장은 주최측이 정한 폐쇄루프를 벗어날수가 없었다. ‘오미크로 변이’ 확산 속에 올림픽 취재 위해 계속 된 검사, 검사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은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라고 한다. 처...
    Date2022.03.08 Views375
    Read More
  12.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깨닫게 한 나의 첫 올림픽취재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깨닫게 한 나의 첫 올림픽취재 ▲장영근 기자가 취재한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경기도중 미끄러지는 모습.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동시에 취재·방송하는 사람들에겐 경기장에 펼쳐지는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s)의 ...
    Date2022.03.08 Views350
    Read More
  13.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뽑은 2021년 10대뉴스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뽑은 2021년 10대뉴스 코로나19와 싸움 속에서도 새로운 이슈들로 치열했던 2021년의 뉴스현장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12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전 회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영상기...
    Date2022.01.07 Views463
    Read More
  14.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 “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 “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시대의 올림픽 취재 올림픽 취재의 첫 단계는 5월 초 코로나19백신 접종이었다. 5월 중순부터는 코로나 관련 입출국 및 취재 유의점에 대한 이메일 자료, 교육 등을 받았다. 올림픽 취재 한 달 전...
    Date2021.09.24 Views797
    Read More
  15.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가운데 개최 강행이냐, 취소냐 이야기가 많았지만 일본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행을 선택했다. 개최가 결졍되고 선수와 임원, 올림픽 지원인력?등 각국...
    Date2021.09.24 Views842
    Read More
  16. Olympics, Enjoy the Moment!

    Olympics, Enjoy the Moment! ‘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만큼 ‘전례 없는’ 올림픽. 그리고 영상기자로서 ‘첫’ 종합대회 출장. 평소 같으면 기대가 앞섰을 출장이지만 이번엔 출발 전부터 각종 악재와 우려로 마음이 천근만근이었...
    Date2021.09.24 Views765
    Read More
  17. 코로나19 시대의 청와대 영상기자단 미국 순방기

    코로나19 시대의 청와대 영상기자단 미국 순방기 빗 장 2019년 12월 중국 청두 순방 이후 한동안 해외를 나가지 못할 것이란 현실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2020년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19의 여파는 삼청동에 자리 잡은 청와대 춘추관에도 미...
    Date2021.07.06 Views370
    Read More
  18.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 대구카톨릭대학병원에서 확진자 병동 촬영 준비 중인 필자 (MBN 김형성 기자) 어느새 코로나와 맞는 두 번째 봄. 여전히 하루 300~400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KF94 마스크를 쓴 채이지만 기나긴 겨울을 견...
    Date2021.05.06 Views463
    Read More
  19. 멈춰있는 시간의 현장

    멈춰있는 시간의 현장 ▲지난 1월 20일, 서울의료원 음압병동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방역복을 입고 있는 필자 우리 직업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수많은 제한구역과 여러 나라를 경험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하...
    Date2021.03.11 Views431
    Read More
  20. 코로나19, 1년… 영상기자의 소회

    코로나19, 1년… 영상기자의 소회 코로나19가 국내에 발병한 지 1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한 해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마스크없이 살 수 있는 일상부터, 자영업 경제 그리고 지...
    Date2021.03.11 Views557
    Read More
  21. 익숙함, 설렘

    익숙함, 설렘 ▲보신각 앞에서 취재하는 필자 2021년, 조용한 새해가 밝았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해가 바뀌는 그 순간, 보신각 제야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지난 1953년부터 한 차례 중단 없이 계속 이어져 왔지만, 이번에는 ...
    Date2021.03.11 Views41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