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96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1월 31일 오전 9시. 공판이 열리는 법정 출입구 앞, 취재진들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주요 포인트에 자리를 잡기 위해 트라이포드와 사다리를 뻗쳐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날 오후 2시, 취재 대상은 최태원 SK회장이다. 회삿돈 횡령 투자 혐의로 1심 선고에 맞춰 법정 출두하는 그는 모든 언론사의 관심 1순위이다. 법정 입구를 통과하는 피의자 스케치와 싱크를 확보해야하는 취재는 찰라의 과정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간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기에 출입구가 여러 곳인 상황에서 언론의 시선을 피해보려는 취재원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재진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더해지면 그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그래서 장소를 제공해주는 법원과 취재원, 취재진 모두 사전에 합의를 통해 포토라인을 만들고 서로가 만족할 만한 룰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후 1시 30분.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최태원 회장이 지나가는 곳마다 아비규환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토라인에 맞춰 일렬로 세워 놓았던 트라이포드는 쓰러진다. 뒷걸음치며 셔터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는 사진기자가 넘어지고 뒤에 있는 계단을 보지 못한 영상기자는 엉덩방아를 찧을 뻔 한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최태원 회장의 싱크를 따보려고 두 팔을 올려 육중한 ENG카메라를 머리위에 든 채 까치발을 위태롭게 디디며 쫓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이 순간 초등학생 때 받았던 벌이 생각나는 사람은 나뿐이었을까?
약속했던 포토라인을 깨고 수행원을 대동한 채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최태원 회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취재진은 한명도 없기에 결국 이리가지고 못하고 저리가지도 못한 채 법원 정문 로비에서 꼼짝없이 얼마간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일이 마무리되고 홍보팀에게 강하게 항의를 한다. 선고 후 나올 때는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을 다짐 받는다. 이번엔 홍보팀과 법원에서 언급한 출구에 포토라인을 믿고 설치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출입구에 자리 잡은 몇 명의 취재진들 빼고는 모두들 선고 공판이 확정되길 기다리면서 그 곳 유리 현관문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결과는 최태원 회장 징역 4년,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된다.
모두들 선고 이후 최재원 부회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포토라인에 있던 취재진들이 뒷문으로 뛰기 시작한다. 아차 싶은 마음에 너도 달리고 나도 달린다.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간 곳에서 최재원 부회장이 탄 차가 보인다. 취재진과 수행원들이 뒤엉켜 악을 쓰며 실랑이는 벌이는 그 곳.‘두 번의 불신’이라는 씨앗이 어느새 자라 서로에 대한 분노로 증폭되어 있다. 형의 구형에 충격을 받은 듯한 동생이라지만 공인으로서 약속을 저버리고 언론을 회피하는 모습은 당당하게 자신의 소명을 밝히고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는 CEO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KBS 정환욱 기자는 불특정 수행원에게 발등이 밟혀 골절되는 불미스런 사고까지 발생해 더욱 더 불신감만 커져갔다. SK가 주연인 한 편의 블랙코미디 작품에 조연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우리 카메라기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보여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런 후진적인 취재 관행이 바뀌기 위해서는 재계 총수이자 공인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언론 앞에 당당하게 나서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하려고 하는 책임감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배문산 SBS 영상취재팀

  1. KBS 전문가 파견교육 후기 -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연변에서의 강의

    KBS 전문가 파견교육 후기 촬영기자 생활을 하면서 출장을 많이 다녔지만 늘 출장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가게 되죠. 이번에도, 여러번 갔던 중국으로의 출장명령을 받았습니다. 북한 일차 핵실험 때 북 중 국경에서 중국 측에 억류 됐던 좋지 않은 추억이 있...
    Date2014.11.18 Views7276
    Read More
  2. [특별기획-브라질 월드컵] 응원석 태극기가 펼쳐질 때의 뭉클함을 잊을 수 없어

    브라질은 멀다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한국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브라질이 아닐까합니다. 서울에서 땅을 끝까지 파면 반대쪽에 나오는 나라가 브라질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요. 시차도 정확히 12시간...
    Date2014.08.13 Views7690
    Read More
  3. [특별기획-브라질월드컵] 4년 후 승리의 포효를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또 다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다. 한국이 벨기에를 상대로 대략득점을 한다면 알제리 러시아전의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도 가능한 상황이었다.한국 선수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혼신을 다했다. 결과는 0 대 1 패배. 경기가 끝나고 대표팀 막내 손흥...
    Date2014.08.13 Views7426
    Read More
  4. [특별기획-브라질월드컵] 포르투알레그리에서의 3일

    월드컵 대표팀이 러시아와 비긴 후 포스 두 이구아수의 대표팀 훈련장에서는 웃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이구아수의 한국 대표팀 미디어센터인 코리아 하우스에서 대표팀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알제리 전에 대한 희망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Date2014.08.13 Views7349
    Read More
  5. <진도 팽목항 취재후기>치유의 밀물, 우리의 역할이다

    세월호 참사, 비상식적인 사고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잃었다. 300여명에 이르는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허술한 안전시스템에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지지부진한 세월호 법안처리에 국민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론의...
    Date2014.08.13 Views7499
    Read More
  6. <7.30 재보궐선거> 20년 이상 지속되어온 지역구도의 벽 무너져

    전국 15개 지역에서 치러진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개표 결과 가운데 최대이변은 역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으로 지목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박(朴)의 남자'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친노'로 분류되는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Date2014.08.13 Views7624
    Read More
  7. No Image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지방 선거

    지난 1991년 지방의회 구성으로 시작된 지방자치가 2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6월 4일 지방선거는 민선단체장이 이번으로 6번째 배출되는데, 그동안 여당의 텃밭이던 부산*경남은 이번 선거에서는 어느때보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
    Date2014.08.13 Views1813
    Read More
  8.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취재후기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취재후기 먼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당한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4월 16일 오전, 평상시와 똑같이 수원지국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오늘의 촬영 일정을 위해 전화를 하고 있는데,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갑자기...
    Date2014.05.21 Views8563
    Read More
  9. 세월호 침몰 사고가 언론에 준 숙제

    세월호 침몰 사고가 언론에 준 숙제.. “기자들이랑 얘기해봤자 말도 안 통해!” 실종자 가족들이 거세게 항의를 하고 갔다. 뉴스 보도 때문이다. 난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곳이 어딘지 다시금 되새겼다. 실종자 가족의 애끓는 외침이 메아리치는 곳, 진도 팽목...
    Date2014.05.21 Views8362
    Read More
  10. 모두를 잃어버린 세월호 참사 현장

    모두를 잃어버린 세월호 참사 현장 #참사, 그 곳 4월 16일 오전 11시, 단원고 학생 325명이 전원 구조됐다는 낭보가 날아든다. “희소식이었다.” 4월 17일 세월호 침몰 이튿날, 애타게 기다리던 내 아들, 딸과 연락이 닿았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스며든다. “간...
    Date2014.05.21 Views8123
    Read More
  11. 진도 팽목항 그 곳은...

     <진도 팽목항 취재후기> 진도 팽목항 그곳은... 세월호 사고해역에서 정반대편에 위치한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그 참사의 아픔이 가장 큰 곳, 도시 전체가 슬픔에 빠져버린 경기도 안산에서 병원·장례식장 취재를 다니길 1주일째... 그들을 지켜보던 마음...
    Date2014.05.21 Views7915
    Read More
  12. 참혹했던 베트남 쓸개즙 관광

    “찍지 마세요.” 마취된 채 끌려온 곰 앞에서 농장 주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 망했다. 어떡하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옷을 잔뜩 껴입고 출근한 어느 날. “따뜻한 동남아. 좋겠네. 잘 다녀와.” 영문을 몰라 멍하게 있으니 선배가 출장이 잡혔...
    Date2014.03.21 Views10599
    Read More
  13. 초보 카메라기자의 제주 적응기

    서울 촌놈 제주로 이직하다 나는 작년에 처음으로 제주 땅을 밟았다. 여행으로라도 한번쯤 다녀왔을 법도 한데 서른이 넘도록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제주도 한번 못 가봤다’는 말에 ‘서울 촌놈’이라며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제주에 정착하리라...
    Date2014.03.21 Views8722
    Read More
  14. 잠 못 드는 취재 288시간

    수습 취재기자 동기들과 함께 서울지역 경찰서로 투입된 지 3일차, 나는 강남라인 배치 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시간마다 라인 선배에게 특이사항과 경찰서를 돌며 알아낸 정보를 보고한다. 혼자서 ‘형님’이라 불리는 취재원 경찰들과 부딪치며 하루 1...
    Date2014.03.21 Views8900
    Read More
  15. 폭설취재기 -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예요'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에요'> - 2월 6일.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진다. 원주를 떠나 강릉에 발령난 지 불과 사흘째. 좀처럼 볼 수 없던 탐스러운 눈발에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든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솜털 같은 하얀 눈이 도로 위에 쌓여간다. ...
    Date2014.03.21 Views9313
    Read More
  16. 이산가족 상봉취재기 - 60년만에 허락된 만남

    11년 만이다. 다시 금강산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2003년, 우연치 않은 기회로 금강산을 다녀 올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 되고 경색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언제 한번 다시 금강산을 가보나 했다. 그런데 11년 만에 기회는 찾아왔다...
    Date2014.03.20 Views8674
    Read More
  17. 마우나리조트 취재기 - 대형참사 속 배운 소명의식

    2월 17일,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지난주에 울산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공장은 예상치 못한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안타깝게도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게 바쁘게 1주일을 보내고 휴식을...
    Date2014.03.20 Views8322
    Read More
  18. 소치 동계올림픽 취재기 - 온몸으로 즐기던 축제, 그리고 옥의 티

    처음 취재해 본 종합대회, 22회 소치 동계 올림픽은 내게 ‘함께 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을 배경으로 한 야자수 무리. 우선 그게 첫인상이다. 대회기간 중 종종 추웠던 날도 있었지만, 해상클러스터가 있는 아들러 지역의 날씨 대부분은 ...
    Date2014.03.20 Views8618
    Read More
  19. 필리핀취재기 -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

    탕! 탕! 타클로반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두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향해 긴박한 표정으로 걷던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해서 뛰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차를 돌리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 취재차량도 차를 돌렸다. 길에서 뛰던 ...
    Date2013.12.17 Views10108
    Read More
  20. 필리핀취재기 - 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을 가다.

    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을 가다. 겹쳐 쓴 마스크 사이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라져버린 마을을 멍하게 바라보다 다시 길을 걷는데 거리마다 널브러진 주검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적때기라도 둘러놓은 것은 그나마 참을만했다. 다리를 벌리고 석고...
    Date2013.12.17 Views10099
    Read More
  21. '후쿠시마 그 곳에서 일본을 보다'

    “후쿠시마 그곳에서 일본을 보다“ 다시 갔다. 솔직히 꺼림직 했으나 취재를 위해 7개월 만에 다시 찾아 간 후쿠시마는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이었다. 동일본 대지진 직후 원전 폭발로 인해 발생된 피해와 사회적 두려움이 가득했던 지난 2월과는 사...
    Date2013.12.17 Views980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