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사건 취재기

by 부산KBS 권태일 posted May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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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태다.”

  2010년 3월 10일 15:00경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에서 김길태가 붙잡힌다. 경찰이 이양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김길태를 지목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한지 8일,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지 4일만이다.
김씨의 흔적을 찾아 사상구를 헤매던 기자들이 급히 사상경찰서로 모인다. 이송되는 김씨를 생방송하기 위한 중계차와 분노에 찬 시민들까지 들어선 경찰서는 북새통을 이룬다. 검거현장에서 경찰서까지는 불과 500m정도. 혹시 기자들을 따돌리려 다른 곳으로 갔을까?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40분쯤 지나자 정적을 깨고 김씨를 태운 차가 사상경찰서로 들어온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김씨가 차에서 내리자 분노한 시민은 그를 향해 욕설과 주먹을 휘두르고, 과열된 취재경쟁에 포토라인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분노한 시민과 통제력을 상실한 경찰 그리고 흥분한 기자들... 밀치고 넘어지고 소리 지르는 경찰서 주차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무질서의 현장에서 김씨는 “전 모르는데요, 그냥 라면만 끓여먹었는데요.”라는 말을 남긴 채 조사실로 끌려 들어갔다.

김길태처럼 생각하라

  김길태의 모든 것이 이슈화 되었다. ‘김씨가 주로 자장면을 먹는다’는 기사가 나가자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김길태 자장면’이라는 검색어까지 등장했다. 경찰의 브리핑이나 김씨의 모습, 사상경찰서 스케치는 촬영 후 실시간으로 방송국에 전송되었다.
수많은 방송사의 카메라기자들은 김씨의 행동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찰서에서 낮밤을 보냈다. 타사 선배들 뿐 만 아니라 우리 부서 최고참이신 50대 강상윤 부장님은 김씨가 조사실에서 나오는 단 10초를 촬영하기 위해 반대편 건물 창문에서 4시간을 기다렸다. 사람이면 반드시 한번쯤은 화장실을 갈 것이기 때문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김씨를 잡았다.
범행현장에서는 김씨의 족적을 따라 움직였다. 경찰 못지않은 탐문취재였다. ‘내가 김씨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김씨의 이동경로를 따라 카메라를 들고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김씨의 흔적은 무엇이든지 촬영했다. 김씨가 범행 전 술을 마셨다는 사당에서는 깨진 술병조각이 취재대상이 되었고, 김씨가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을 봤다는 목격자를 찾기 위해 현장 근처의 집집마다 벨을 눌러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검증이 이루어진 날, 경찰은 시민들이 몰려 검증의 어려움이 있다는 핑계로 취재를 거부했지만 근접촬영은 풀 취재단이 맡고, 폴리스라인 외부는 자유롭게 취재한다는 선에서 정리되었다. 현장검증은 10시였지만 취재진과 구경나온 시민들은 보다 일찍 나와 김씨를 기다렸다. 나 역시 김씨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서 카메라를 세웠다. 혹시 돌출행동을 하는 시민을 촬영하기 위해 신경을 썼지만 시민들은 “모자를 벗겨라”며 얼굴공개만 요구할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도시, 재개발 예정지.

  김길태 사건이 발생한 곳은 재개발 예정지역이다. 김씨는 이양을 유괴한 뒤 재개발 예정지 내 한 빈집에서 성폭행 뒤 살해했고, 여러 빈집을 옮겨 다니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했다. 이양의 시신 발견 후 취재를 위해 찾은 현장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도시였다. 한낮이었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수많은 폐가는 조명을 사용해야만 촬영할 수 있었고, ‘범죄하기 좋은 곳’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습하고 어두웠다.
범행현장과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직선거리로 불과 50M이내였지만 길을 따라 움직이면 몇 배 더 긴 거리였다. 특히 미로 같은 골목은 낮에는 물론 밤이 되면 더욱 길 찾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골목으로 접어드는 2명의 여중생을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아이템을 위해 그 학생들을 불특정으로 촬영하며 분향소에서 처음 만났던 이양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재개발 예정지는 부산에서만 200여 곳에 이른다. 경제논리에 의해 생겨난 재개발 예정지가 더 이상 아이들의 희생지역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역시 카메라기자들의 몫이리라.

이제 방송은 얼굴을 원한다.

  김길태 사건은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아동ㆍ청소년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특히 아동ㆍ청소년성범죄와 같이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얼굴공개에 대한 논란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은 김길태의 얼굴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김씨가 차에서 내릴 때 나의 머리는 인권침해와 알권리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몸과 카메라는 김씨의 얼굴을 아무런 여과 없이 게더링(gathering)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카메라기자의 판단은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방송은 좀 더 클로즈업된 김씨의 표정을 원했고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상은 편집을 통해 하루에도 수차례씩 전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흉악범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고민했던 문제였지만 그동안의 논의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영상만 남았다.
앞으로 제2, 제3의 김길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2010년 4월 15일,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는 피의자 얼굴 등 공개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었다.(제8조의2) 흉악범 얼굴공개에 대한 논란 역시 계속 될 것이지만, 한번 공개된 이상 앞으로의 보도 영상은 더욱 그들의 얼굴을 원할 것 같다. 하지만 초상권 공개는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이제 보도 영상에 있어서도 현장에서의 카메라 기자의 판단을 넘어 협회를 중심으로 법적 기준에 상응하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건은 진행형이다

  법원에서는 아직 김길태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졌다. 3월이 지난 이후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나 역시 김씨를 잊었지만 후기를 쓰며 다시 한 번 그때를 떠올렸다. 사건 이후 아동ㆍ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정책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또 재개발 예정지에 대한 계획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울러 인권과 초상권에 대해 더욱 신중해야할 방송의 기준은 마련되었는가? 남은 건 김길태의 얼굴뿐이다.
마지막으로 이양의 명복을 빈다.

권태일/ KBS 부산총국

※ <미디어아이> 제73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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