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 통합운영을 바라보며”

by TVNEWS posted May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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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시청자에게"



[어느 지역 방송사가 있습니다. 열악한 제정상황 때문에 뉴스 제작, 송출, 편성카메라에 대략 두 세 명을 채용합니다. 입사조건으로 간단한 동영상 편집과 카메라작동이 가능한 사람을 뽑습니다. 왜냐면 붙이기(편집)만 어느 정도 한다면 방송은 가능하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주말인데 지역연고 팀이 축구경기를 하는군요. 이번 주 중계에는 뉴스 파트에서 촬영했던 A씨를 부릅니다. 축구공만 놓치지 말라고 담당부장이 지시합니다. 일요일 촬영 나온 고단한 A씨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뉴스 주조에서 테이프 플레이 담당을 하게 되서 담 주는 좀 편하게 보낼거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뉴스촬영에서 편성으로 옮겨온 B씨입니다. B씨가 대학 때 방송부여서 카메라는 좀 할거라고 생각했던 PD들이 교체해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전혀 프로그램의 핵심도 못 짚고 찍어야 할건 대충 찍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자기 맘대로 찍어서 편집이 불가능하단 이유입니다. 여러 번 간부에게 B씨를 교체해 달라고 해도 회사는 인력의 부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그러기 힘들다 는 답변입니다.

뉴스촬영을 담당하는 C씨도 고민이 많습니다. 자기는 대학 때 연극도 좋아하고 자유롭게 사진 찍기도 좋아하는 일명 로맨틱 촬영감독이였는데 뉴스촬영으로 업무를 전환한 후 일주일 동안  몰래 카메라를 들고 유흥업소와 경찰서를 누볐습니다. 항상 카메라와 미학을 따로 생각하지 않았던 그에겐 고통스러운 촬영이었습니다. 몰래 유흥업소에 들어갈 땐  평소 느끼지 못한 두려움도 밀려왔습니다. 이제 오십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인데….

문제는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에서도 밀려옵니다. 기자의 글은 온통 직설적인 내용과 녹취위주고 한 숨 쉴 타이밍도 없는 그림의 연속을 강요합니다. 편집을 끝내고 담배한대 태울 땐  저 쪽에서 부장이 그림을 바꿔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C씨는 담 주부터 주조에서 테이프만 플레이 하는 A씨가 부럽고 빨리 편성프로그램을 하고 푼 마음이지만 아내는 뉴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에게 자기개발을 해야 우리가 먹고 산다고 충고합니다만 C씨의 열정은 어느 순간부터 꺼져가고 있습니다… ]



요즘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의 업무를 통합해서 운영하는 지역방송사가 많다. 통합을 주도하는 측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수입이 감소하고 있고 따라서 경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재정적 어려움을 타파하려는 대안으로 두 개의 전혀 다른 직종을 통합 운영한다. 이미 일부 지역방송사의 경우 오래 전부터 기술국에 엔지니어, 카메라기자, 카메라감독을 포함하는 형태로 통합운영을 해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래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라, 열악한 재정상황을 타파하려는 근시안적 미봉책이였기 때문에 지금의 통합움직임은 과거로의 회귀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다른 지역방송, 그리고 구조조정의 선봉에 서다

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방송은 시청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처방을 제시하면서, 희망을 북돋아주는 것이 언론의 임무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언론은 기업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방패와 같은 역할을 했고 사측의 일방적인 인원감축과 임금삭감이 사회적 부작용을 야기시킨다고 걱정하면서,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지금 지역방송사가 실행하는 통합운영방안은 사실상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보인다.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을 단순 촬영기능인으로 간주하고 있고,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두 집단의 구조를 하나로 통합해서 관리하면 효율적이라는 계산에서 이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말 그럴듯한 방법일진 몰라도 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지역언론이 먼저 나서서 항상 위기가 기회라고 외치고 사회에 용기를 주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 보인다. 위기는 위기일 뿐인데 인사권을 쥔 사측이 먼저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모습은 이제껏 지역언론을 의지했던 시청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다.



통합운영방안은 전문성을 무시한 무식한 돌려 막기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저널리즘은 통합적 저널리스트의 관점이 아닌 기자저널리즘과 PD저널리즘으로 크게 양분된 모양이고 조직의 인적 구성과 재정적 지원도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의 업무적 성격도 기자와 PD 의 차별화된 업무형태에서 나타난다.

그러면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이 단순히 취재기자와 피디를 따라다니면서 카메라조작만 하는 오퍼레이터인가? 조직의 효율성만을 강조한다면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의 업무를 취재기자와 피디를 따라다니면서 카메라만 돌려주는 것일 뿐이라 한다면 그것은 정말 현장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공장의 기계소리가 끊이지 않게 기계조작 스위치만 킬 줄 아는 인부를 밤새도록 돌리면 공장의 수익은 늘어난다는 악덕 사장의 생각과 진배없다. 위에 작문에 그려진 A,B,C 씨의 얘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숱하게 진행되는 슬픈 자화상이다. 업무의 만족도가 떨어지면 아웃풋 또한 추락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의 동료 A,B,C씨는 사측의 일방적 돌려막기의 희생양일 뿐이다.



카메라기자 VS 카메라감독

카메라기자는 속도에 민감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사건에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 뉴스현장에서 속도를 지배하지 못하면 뉴스를 생산할 수 없다. 또 카메라기자는 뉴스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뉴스에 대한 이론적 무장도 필요하다. 지금 다루는 아이템의 정확성, 형평성, 공정성, 사실성, 시의성, 사회적 파급력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과연 카메라기자가 가져야 할 이런 기본적인 소양이 카메라를 단순히 잘 조작할 줄 안다고 해서 또는 현장에서 급박하게 대응하다 보면 저절로 생기는 얄팍한 지적영역인가? 단순히 카메라를 조작할 줄만 아는 수준의 사람과 뉴스에 대한 이론과 전문성으로 무장된 카메라기자의 영상 중 어떤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대개 카메라기자를 지망하는 사람과 카메라감독을 지망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두 분야의 명쾌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바로‘팩트를 지향하는 것’과‘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그 차이 점이다. 저널리즘은 사실을 지향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최종 목적지이다. 카메라기자는 카메라를 도구로 해서 그 목적지에 도전한다. 항상 긴급히 뉴스를 제작하기 때문에 시간에 민감하고 여유를 부릴 수 없이 냉정할 때가 많다.

그러나 미적 추구 작업은 현실을 재해석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시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작가의 시점으로 재구성하고 또 고뇌를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 작업은 필연적으로 사실의 왜곡이 어느 정도 동반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저널리즘의 체득과 미학적 탐구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가? 올바른 저널리즘을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도구로써 카메라에 대한 연구와 응용도 필요하지만 그 근본에 대한 집요한 도전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꾸준히 노력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의 동기는 회사가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카메라기자, 반성과 도전

100여년 전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제작한 이후로 현재까지 방송저널리즘은 내적, 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기존의 영화판을 답습하는 차원을 벗어 난지는 이미 오래 전이고, 현재는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그 최일선에는 카메라기자가 있었다.
현재 지역방송국에서 시행하는 통합운영방안은 우리에게 자존심의 문제이고 위협적인 사안이다. 카메라기자를 단지 오퍼레이터로 폄하시킨 원인들이 우리 내부에서 도래한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들도 있다.



@ 취재 기자가 어떤 단체나 지자체의 공보실을 통해서 받아오는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고 묵인하는 경우

@ 사람이 모자란다는 핑계로 편집요원을 취재현장에 투입하는 경우

@ 경험을 담보삼고 NLE 편집 등 변화에 무관심한 경우

@ 취재기자의 촬영요구에 대해 무비판적이거나 지나치게 수동적인 영상취재 형태

@ 카메라기자 팀 내의 구성원간의 피드백 부족과 내부 소통 부재


위의 내용은 카메라기자로서 듣기 싫은 말일 수도 있고 일부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왜 카메라기자가 단순히 오퍼레이터로 매도 되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방송국 내에서 카메라기자의 역량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상취재기자로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펼치고 있는 기자가 많다고 확실히 자부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카메라기자가 경험만을 먹고 살뿐 기자만의 독자적인 기획, 취재의 영역으로 진입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물론 현실적인 구조의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그림 좋네”라는 찬사로부터 안주할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홀로서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감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한 개인을 떠나 카메라기자라는  전문화된 분야에서의 자리매김은 서로서로의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우리가 바로 세워야 하는 것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선해야 한다. 변화에 민감하기 보다는 카메라기자의 이름을 걸고 원칙을 고수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면 카메라오퍼레이터라는 잘못된 인식들은 수정될 수 있다.



방송사 내부의 일방적 의사결정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

지역방송사는 올바른 뉴스를 생산하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사업적 이윤을 획득하는 두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상호모순적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적 관계라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그런데 지역방송사가 작금의 경제불황을 핑계로 내놓은 이윤극대화의 방안 중 하나가 통합운영 방안이다. 그러나 이 안은 사측에게 이윤을 제공해주는 시청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을 망각한 단순한 상업논리다.
지역방송사의 기본적인 책무는 공정하고 질 좋은 뉴스를 사회에 유통시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방송기업의 정도이다. 방송사가 엄선된 정보를 전달할 때 시청자들, 즉 소비자들도 신뢰를 주고 그 지역방송사의 유, 무형의 상품을 믿고 소비할 수 있다. 지역방송사의 공익적 사명과 방송기업으로서 상도의 첫걸음은 전문화된 인재를 모집하고 개발시키며 적재적소에 배치시키는 것이다. 몇 푼 아끼려고 공적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전문화된 인재들의 독립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역뉴스가 제작될 때 시청자들은 지역언론에 믿음과 격려를 보낼 것이다.

지역방송사가 일방적인 방식으로 카메라기자, 카메라감독의 전문 영역을 뭉퉁거리는 것은 상업논리에 치우쳐 방송 콘텐츠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물에 대한 이해가 근본부터 다른 두 전문가 집단을 섞어찌개로 만들어버리면 그 피해는 누가 받겠는가? 시청자들은 사건보도에 있어서 정확하고 신속한 화면을 원하고, 제작프로그램에서는 영상미학을 보고 싶어 한다. 통합운영방안은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감독에게 적응을 강요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자괴감은 높아지고 업무의 성취도와 만족도는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문제는 이 뒤틀린 구조조정의 피해가 바로 지역 시청자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변성준 / KBS 창원총국 보도팀 기자